1979년 ‘미스지콜렉션’을 론칭한 이래 40년간 패션업에 종사한 지춘희. 청담동 미스지콜렉션과 성수동 생산 공장에서 두 차례 만나 인터뷰했다. 사진 김지호 기자
1979년 ‘미스지콜렉션’을 론칭한 이래 40년간 패션업에 종사한 지춘희. 청담동 미스지콜렉션과 성수동 생산 공장에서 두 차례 만나 인터뷰했다. 사진 김지호 기자

1979년 ‘미스지콜렉션’을 론칭한 이래 40년간 변함없이 동시대 여자들의 마음과 지갑을 열게 하는 ‘지춘희’가 나는 늘 궁금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백화점 판매를 고집하던 그녀가 얼마 전 홈쇼핑 시장에 나와 역대급 히트를 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춘희를 만나러 갔다. 여행을 자주 떠나는 그녀와 스케줄이 엇갈려 봄에 만나기로 한 약속이 어느덧 초가을이 되어 성사됐다.

2018년 8월 CJ 오쇼핑에서 시작한 지춘희의 새로운 브랜드 ‘지스튜디오(g studio)’는 론칭 첫 방송 2시간 만에 45억원, 당해 가을 시즌 다섯 번 방송 만에 누적 판매금액 1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8월엔, 론칭 1년 만에 누적 판매 금액 1000억원이라는 홈쇼핑업계에 기록적인 수치가 나왔다.

인터뷰는 두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한 번은 청담동 미스지콜렉션에서, 또 한 번은 생산 공장이 있는 성수동에서. 붉은 벽돌이 고풍스러운 성수동 건물엔 블루보틀이 입점해 있고,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 사이드에서 트렌드의 최선에 있는 지춘희는 평소 ‘여행, 신문, 유튜브'라는 3개의 눈으로 시대를 읽는다고 했다.


지춘희가 홈쇼핑에 진출하면서 홈쇼핑 시장의 판도가 바뀌었다는 말이 나온다. 프리미엄 콘텐츠 시장이 활짝 열렸다.
“자기 이름 걸고 하는 브랜드로, 내가 CJ오쇼핑 전체 매출 1위일 거다. 그걸로 오프라인을 유지한다(웃음). 그동안 생각했던 지스튜디오라는 젊은 세컨드 브랜드를 홈쇼핑으로 푼 셈이다.”

단번에 소비자를 끌어들인 비결이 뭔가?
“제일 경계하는 말이 ‘홈쇼핑 같아’였다. 피팅부터 라인 검수할 때 옷이 ‘홈쇼핑 제품 같아 보이면’ 다시 처음부터 했다.”

홈쇼핑인데 ‘홈쇼핑 같아 보이는 제품’에서 탈피하는 게 목표였다?
“비슷해지는 걸 경계했다. 소재도 이탈리아 원단 회사에서 수입한다. 손해를 안 보는 선까지 원가를 높인다. 소량으로 하면 그 단가를 못 맞추는데 대량으로 하니까 가능하더라. 가격대가 좋으니, 요즘에 배우들 만나면 그걸 사입고 온다. 홈쇼핑이라도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늦게 들어가 단번에 주도권을 잡았는데 타이밍을 생각했나?
“십수년 동안 제안이 왔어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담당 PD와 MD가 워낙 저돌적으로 밀어붙였다. 거기서 확신을 했다. 브랜드를 선점하려면 그만한 저돌성은 있어야지. 사실 어려운 것도 아닌데 그런 사람이 드물다. 제대로 확신을 갖고 밀어붙이는 사람만 있으면 의외로 일이 쉽게 만들어진다.”

복잡한 분석보다 직관적이고 심플한 답변이 돌아왔다. 온라인·오프라인의 파워게임은 이미 끝났고, 시장은 ‘가성비’ 좋은 프리미엄 상품을 원했다. 하지만 지춘희 프로젝트의 중요한 열쇠는 역시나 사람이었다. CJ오쇼핑의 담당자들은 지춘희와 함께 방송 한 편을 고급스러운 ‘컬렉션’처럼 연출했다. 디테일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니트 티셔츠는 1만8000벌을 한 땀 한 땀 뜯어서 다시 만들어 내놓기도 했다.

70년대 명동 맞춤복 시절에서 90년대 청담동을 거쳐, 이젠 2019년 성수동 시대를 맞았다. 1세대 디자이너 중에 최전선의 소비 시장에 여전히 지춘희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
“명동 시절엔 옷이 많지 않아 귀한 대접을 받았다. 지금은 옷이 쏟아져나오는 시대다. 나는 늘 당대를 즐겁게 사는 사람이니까. 남보다 반발짝만 앞서 걸으려 한다.”

지난 4월엔 성수동 미스지콜렉션 건물에 블루보틀이 입점했다. 지금도 사람들이 밀려드는데, 이런 반응을 예상했나?
“내 취미가 동네 탐험이다. 사람들 모여 사는 동네에 관심이 많다.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새로운 동네, 골목을 걸을 수 있어서다. 미스지콜렉션 쇼룸은 청담동에 있지만, 생산 공장은 성수동에 있다. 이번엔 디자인실도 성수동 건물로 일부 또 옮겨간다. 내가 좋아한 건 이 동네의 자연, 에너지, 사람들이다. 블루보틀은 아오야마에서 먼저 가봤다. 컵 하나로 간결하게 표현된 상징도 맘에 들고, 어딘가 모르게 브랜드가 지닌 진실성이 보였다. 블루보틀이 오면 동네의 무게를 잡아주고, 재밌어질 것 같았다. 유치하느라 애를 좀 썼다(웃음). 성수동엔 공장도 카페도 많지만, 이후엔 뭔가 이야기가 하나로 정리되는 느낌이다. 새로운 물길이 생겼달까. 그렇게 동네에 들어온 이웃 젊은이들이 나하곤 또 허물없이 친구가 된다.”


모든 대답이 자연스럽고 억지가 없어, 귓바퀴에 힘을 줬던 나는 매번 기운이 빠졌다. 지춘희의 옷에도, 지춘희의 생각에도 특유의 ‘바람구멍’이 있다는 말이 실감 났다. 사진 김지호 기자
모든 대답이 자연스럽고 억지가 없어, 귓바퀴에 힘을 줬던 나는 매번 기운이 빠졌다. 지춘희의 옷에도, 지춘희의 생각에도 특유의 ‘바람구멍’이 있다는 말이 실감 났다. 사진 김지호 기자

모든 대답이 자연스럽고 억지가 없어, 귓바퀴에 힘을 줬던 나는 매번 기운이 빠졌다. 지춘희의 옷에도, 지춘희의 생각에도 특유의 ‘바람구멍’이 있다는 말이 실감 났다. 그것이 변화무쌍한 패션산업계에서 오랜 시간 ‘지춘희다움’을 유지시킨 힘이 아닌가 싶었다. 역설적이게도 힘을 주는 게 아니라 힘을 빼서 나오는 비상한 기운.

그런 아이디어와 추진력은 여행을 통해 몸에 밴 것인가?
“그런 것 같다. 어쩌면 여행이 나를 구원하는 것 같다. 나도 궁금한 게, 내가 어떤 장소에 꼭 가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나 자신도 모른다는 거다(웃음). 그냥 일단 떠난다.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생각이 정체되니까. 낯선 곳에 나를 놓아두는 거다. 그러면 자연스레 가야 할 길이 찾아진다. 나는 예전부터 지도 보는 걸 그렇게 좋아했다. 지금은 구글 지도가 있지만, 예전엔 지도책만 따로 보기도 했다. 요즘엔 여행책을 많이 본다.”

그렇게 쌓인 빅데이터가 상당하겠다.
“좋은 유적, 건축물, 젊은이들이 가는 힙한 곳, 험한 곳, 골목길, 독특한 호텔, 좋은 식당… 다 훤하다. 누가 등 떠밀어 가라고 한 게 아니잖나(웃음). 밤새 야간 비행기를 타고 왔으니 입에 단내가 나도록 발품을 파는 거다. 그곳 토박이들도 혀를 내두른다. 언젠가는 아프리카를 경비행기 다섯 번 갈아타고 다니는 루트도 짰다. 극성이지. 하하. 여행은, 어쨌든 돈과 시간과 체력이 드는 일이잖나. 그 여건을 소중히 써야지.”

여행하는 것과 여행 루트를 짜는 것을 둘다 좋아한다고 했다. 일과 휴식의 동시성, 바쁨과 여유의 동시성, 두 개의 시간이 분리되는 게 아니라 중첩되는 지점이 신선했다.

최근엔 어디를 다녀왔나?
“이번엔 스코틀랜드를 거쳐 아이슬란드까지 갔다. 남들은 오로라 보러 간다던데 난 이끼만 보다 왔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이끼가 덮인 곳은 처음 봤다. 올리브그린부터, 산 밑 그린까지… 빛에 따라 달라지는 그린의 모든 걸, 아이슬란드에서 봤다. 그렇게 저장된 기억이 어느 순간 쑥 디자인으로 풀려나온다.”

여행으로 감각을 업데이트하는 것 외에 시대와 호흡하기 위해 또 무슨 노력을 하나?
“세상을 많이 들여다본다. 종이 신문과 유튜브로. 종이 신문은 예전엔 5종 봤는데, 지금은 종합지, 경제지 합쳐서 4종만 본다. 잉크 냄새도 맡고,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통으로 정제된 이슈를 소화한다. 유튜브에서는 세상의 온갖 아우성, 날것의 정보를 본다. 길거리 패션도 보고, ‘연애의 맛’ 류의 요즘 사람들 연애하는 것도 보고, 연예가십이나 정치 채널도 본다. 세상 돌아가는 걸 다 본다. 옷을 제일 안 찾아보고,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모습을 가장 많이 본다(웃음).”

어쩌면 사랑하는 모습을 담은 유튜브를 많이 보는 것도 지춘희 룩의 본질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한때 지춘희 스타일은 ‘청담동 며느리룩’을 만들어 냈다. 드라마 ‘청춘의 덫’의 심은하, ‘불꽃’의 이영애 의상의 단아함이 기억난다.
“청담동 며느리룩은 사람들이 그냥 갖다 붙인 말이다. 나대는 옷이 아니니까. 내 옷의 특징이 그렇다. 대놓고 들이대질 않잖나. 내 옷은 반듯하지만 관능적이기도 한데, 그게 그 안에 ‘바람구멍'이 있어서다. 아무튼 내숭 떠는 옷은 확실히 아니다(웃음).”

여배우 장진영이 청룡영화제에서 입었던 물방울무늬 드레스나 영화 ‘청연’의 의상을 좋아한다. 장진영과 마지막 드라마까지 같이했는데.
“요즘도 진영이를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영화 ‘소름’ 때부터 봤는데 열정도 감각도 탁월해서, 대본 놓고 같이 머리를 싸맸다.”

최근엔 누가 기억에 남나?
“아이유가 떠오른다. 그 아이가 신인 때 ‘유랑극단’ 콘셉트로 여럿이 우르르 촬영한 적이 있는데, 작아도 또렷하게 빛이 났다. 기회 되면 아이유를 여자답게 다시 입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선생과 이미자 선생의 옷을 해드렸다. 그 위대한 분들이 ‘품위를 유지하게 해줘서 고맙다. 더 일찍 만났어야 했는데…’ 치하해줘서 어찌나 송구하던지. 이나영은 늘 좋다. 유행에 무심한 옷, 태평한 옷을 만드는 데 영감을 준다. 몇 년 전 이나영, 원빈 부부가 부탁해서 밀밭 결혼식 올릴 때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해준 적이 있다. 그 사람들이 참 인성이 무리가 없고 선선하다. 무쇠솥 걸어 놓고 결혼식을 올렸는데, 잔치 끝나고 원빈이 검은 봉지에 집게 들고 청소를 하더라.”

사람을 가까이할 때 무얼 중요한 가치로 보나?
“진실성이다. 나는 당최 그 속을 모르겠는 사람은 불편하다. 명백한 게 좋다. 옷이든 사람이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스타일인가?
“일하는 거 티내면서 수선 떠는 사람이 제일 안쓰럽다. 바빠도 여유 있어 보이려고 한다. 그렇게 보이는 게 쉽진 않다. 일단 정리가 잘돼 있어야 한다. 오거나이저가 중요하다. 수백 가지 액세서리에 1㎜ 디테일에도 달라지는 게 패션쇼고 옷이다. 정리가 안 돼 있으면 카오스다. 그래서 내가 직원들에게 하는 잔소리도 늘 ‘정리해라’다(웃음). 불안해서 설치는 사람을 보면 대개 자기 정리가 안 돼 있다. 여럿이 협력해서 일하려면, 순서를 정하고, 이것저것 조합해서 순식간에 디렉션을 내려야 한다. 평소 훈련이 돼 있으면 연결이 부드럽다(웃음). 막힘이 없어야 즐겁잖나.”

일하는 데 즐거움은 어느 정도 중요한 요소인가?
“가장 중요하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남들은 쇼 하면 직전까지 디자이너가 뭘 자꾸 더하려고 한다는데, 난 쇼 끝나면 뭐 먹을까를 생각한다(웃음). 옥상에서 샴페인 따고 고기 굽는 거, 좋아한다. 작은 잔치를 열어 직원들, 모델들, 고객들, 기자들 다 어울려서 감사를 나눈다. 나더러 늘 당당한 여장부라고들 하는데, 그게 다 먹는 거, 먹이는 거 좋아하는 기질에서 나오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