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면 소파에서 잠만 자던 자신을 바라봐주던 아이, 그 눈길이 아빠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함께 놀아주길 기다리던 아이의 꼭 다문 입술, 그 작은 침묵이 아빠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간절함이었다는 것을 헤아리게 되었을 때,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왼쪽)의 가슴은 미어진다. 사진 IMDB
휴일이면 소파에서 잠만 자던 자신을 바라봐주던 아이, 그 눈길이 아빠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함께 놀아주길 기다리던 아이의 꼭 다문 입술, 그 작은 침묵이 아빠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간절함이었다는 것을 헤아리게 되었을 때,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왼쪽)의 가슴은 미어진다. 사진 IMDB

회사와 가정에서 완벽을 추구하며 열심히 살아가던 료타는 여섯 살 아들 케이타가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통보받는다. 아내 미도리가 출산했던 산부인과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었다는 것. 유전자 감식 결과를 확인하고 돌아가는 길, 료타는 자신과 달리 소심하고 내성적인 케이타가 진짜 자신의 핏줄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기묘한 안도감을 느끼며 중얼거린다. “역시 그랬던 거군.”

친아들 류세이는 지방에서 허름한 전파상을 운영하고 있는 유다이의 아이로 자라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두 아이를 교환해야 하는 게 아닐까, 두 가족은 주말마다 만나 낯을 익힌다. 케이타와 달리 적극적이고 쾌활한 류세이를 보는 료타의 가슴에는 이내 핏줄에 대한 애착이 싹튼다. “닮았겠지. 부모 자식이란 떨어져 살아도 닮기 마련이야.” 완고한 료타의 아버지는 소식을 듣고 아이를 어서 데려와야 한다고 말한다. “류세이는 점점 료타를 닮아갈 것이고 케이타는 원래 아버지인 유다이를 닮아갈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아이들과 똑같이 뒹굴며 놀아주는 유다이의 모습이 료타의 눈에는 나사 빠진 남자처럼 허술하게만 보인다. 가장으로도 무능하고 남편으로도 함량 미달인 사내를 아버지로 알고 내 자식이 자랐구나 싶어 화도 나고 그동안 길러온 아이를 그런 어수선한 집으로 보내야 하는 것도 꺼림칙하다. 위자료를 좀 쥐여 주고 두 아이 모두 키울 수 없을까, 방법을 모색하기도 하지만 류세이를 돌려받고 싶은 마음이 앞섰기 때문일 뿐, 케이타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조차 외면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서툰 변명이었을지 모른다.

이 사건으로 료타는 완전해 보이던 자신의 인생이 흔들리는 걸 깨닫는다. 휴일도 없이 일에만 전념해왔지만 큰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던 회사는 아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생각할 여유를 가지라며 한직으로 밀어낸다. 아내는 너무 쉽게 케이타를 마음에서 저버린 것 같은 남편이 서운하기만 하다. 잃어버렸던 아이를 되찾는다는 기쁨보다 6년간 가슴에 품고 기른 케이타를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에 가슴이 저린 아내는 원망하듯 말한다. “당신은 처음부터 정했어. 케이타와 지낸 6년보다 피를 선택하기로.”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서 기르는 게 순리라고 결정한 건 어른들의 생각일 뿐, 아이들이 상황을 이해해줄 리 없다. 엄마 아빠를 떠나 다른 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현실을 케이타는 게임이나 미션이라고 받아들인다. 울지 않고 몇 밤만 잘 참으면 데리러 와서 칭찬해줄 거라고 믿으며 매일매일 아빠를 기다리지만 조금씩 실망하며 상처가 깊어간다.

“앞으론 아저씨가 아빠야.”

“왜?”

료타를 꼭 닮은 듯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류세이도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왜 아저씨와 아줌마를 아빠, 엄마라고 불러야 하는지, 왜 동생들과 시끌벅적하게 살던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아이는 “왜?”라고 묻는다. 아이를 설득할 수 없는 료타는 “그냥”이라고 답한다. 아이의 ‘왜?’와 어른의 ‘그냥’이 돌림노래처럼 반복되면서 료타 자신도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듯, 더 이상 답을 하지 못한다.

료타는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서 살뜰히 가정을 꾸리며 자신을 키워준 새어머니를 그제야 정면으로 바라본다. ‘내 새끼’라며 끌어안고 물고 빤 적도 없지만 좋으냐, 싫으냐 강요한 적도 없고, 자기 삶을 크게 불평한 적도 없는 것 같은 편안한 사람. 엄마의 빈자리를 무던히 채워주었던 그녀에게 료타는 한 번도 ‘어머니’라고 불러본 적 없다.

부모에게 자식이란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일까. 유전자를 물려받아 겉모습이 꼭 닮은 제2의 나? 성(姓)씨를 이어받아 가풍을 사라지지 않게 해줄 후손? 연약하게 태어나 자립할 때까지 보살핌을 받아야만 하는 생명체? 아니면 함께 배우며 같이 성장해가는 인생의 또 다른 친구.

영화의 영어 제목이 ‘Like Father, Like Son’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료타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에서 아빠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좋아하지도 않고 소질도 없는 피아노를 딩동거리던 케이타를 발견한다. 반면 료타라면 혐오할 법도 한 습관, 주스를 마실 때면 길러준 아버지 유다이와 똑같이 빨대를 잘근잘근 씹는 버릇을 가진 류세이. 대체 료타를 닮은 아이는 누구일까. 아들의 고민을 헤아린 새어머니가 웃으며 말한다. “피가 연결되지 않았어도 같이 살다 보면 정도 생기고 닮아 가기도 하지. 나는 그런 마음으로 너희들을 키웠어.”

휴일이면 소파에서 잠만 자던 자신을 바라봐주던 아이, 그 눈길이 아빠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함께 놀아주길 기다리던 아이의 꼭 다문 입술, 그 작은 침묵이 아빠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간절함이었다는 것을 헤아리게 되었을 때, 료타의 가슴은 미어진다. 그제야 전파상 아빠를 그리워하는 류세이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료타는 류세이를 데리고 유다이의 집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너무 늦은 것일까. “아빠는 이제 아빠가 아니야.” 료타를 보자마자 외면하는 케이타. 료타는 꼭 닫혀버린 아이의 마음을 다시 열 수 있을까. 힘껏 끌어안아 꽁꽁 언 가슴을 녹여줄 수 있을까.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추천했다는 영화, ‘걸어도 걸어도’ ‘진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처럼 작은 이야기를 특별하게 빚어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이다. ‘강한 놈만 내 새끼다’라고 포효하는 사자처럼, 냉정하고 이성적으로만 자식을 대했던 남자가 진짜 아버지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자식을 가슴 깊이 사랑하게 되어서야 어린 시절 부모가 다 채워주지 못했던 결핍의 상처까지 치유하게 되는 남자, 그렇게 아버지의 존재를 넘어 한 인간으로 성숙해가는 모습을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깊이 있게 담아낸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일만 열심히 하던 아버지, 그 밑에서 자라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심장에 새겨진 흉터들. 반복해서 생긴 상처 위에 바위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린 딱지를 떼어내지도 못하고 어느새 아버지로 살아온 날들. ‘나는 절대 아버지 같은 아빠가 되지는 않을 거야’ 하고 맹세했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무표정했던 아버지의 얼굴을 거울 속에서 발견하는 이 땅의 많은 아버지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영화다.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