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니크 스르드 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드리아해. 사진 이우석
두브로브니크 스르드 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드리아해. 사진 이우석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불리는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로 갔다. 이름이 어려운 탓인지 한국인에게 이탈리아 나폴리,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호주 시드니처럼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아름다운 항구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중세 도시는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과 높은 성벽, 그리고 특유의 붉은색 지붕이 비취색 아드리아해를 만나 고운 색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두브로브니크는 원래 이처럼 어려운 이름이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라구사(Ragusa)로 불렸는데 도시 규모가 현재보다 훨씬 작은 해변 마을에 불과했다. 이주 로마인과 토박이 슬라브계가 동화되면서 해상무역을 통해 융성했다. ‘라구사 상인’으로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칠 정도의 무역 중심도시로 부를 축적했다. 17세기까지 인구 4만 명에 배 300척을 보유했을 정도로 당당한 규모였다.

당연히 외침이 잦았다. 거대한 부를 축적한 라구사는 성벽과 도로, 급수 등 공공 부문에 많은 예산을 투자해 현재의 견고한 구도심을 건설했다. 뒤로는 높은 산맥(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령)이 있고 앞에는 달마티아 해변, 그리고 중간에는 20~30m에 이르는 ‘철옹성’ 같은 성벽으로 무장하고 외침에 대비했다.

크로아티아는 독립할 때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해안선 대부분을 독차지함으로써 해양강국이 됐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대표하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면 폰 트라프 대령이 등장하는데 그가 해군 대령이란 사실에 깜짝 놀랐다. 내륙국인 오스트리아에 해군이라니.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당시 크로아티아 출신이었다.

두브로브니크는 길쭉한 크로아티아 최남단에 위치한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성곽 라인과 로브리예나츠 요새는 애초의 용도와 달리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파란 물 앞에 우뚝 선 망루와 대포 진지, 뒤로 붉은 지붕이 산 쪽으로 이어진다. 구시가지로 들어가기 위해선 우선 해자처럼 공중 다리가 놓인 필레 문을 지나야 한다. 이때부터 웅장하고도 높은 돌담 사이로 구불구불한 길이 200m 정도 이어진다. 마치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에 등장하는 배경 같다. 실제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8’,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돌담길이 끝나면 매우 평안하고 멋진 비밀의 도시가 등장한다.

예전 라구사가 쌓은 부를 모두 건축과 도로, 급수 등 공공 인프라에 투자했기 때문에 아름답고 견고한 도시가 생겨난 것이다. 관광객이면 누구나 찾는 필레 문 안쪽 오노프리오 급수대도 이런 정책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 견고하고도 근사한 성벽은 1990~92년 유고 독립전쟁 당시 집중포화로 무너져 없어질 뻔했다. 유고 인민군·몬테네그로 연방군 함대가 도시를 에워싸고 650차례 포격을 가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던 이 성벽은 다행히 국제 사회의 원조로 복원됐지만, 여전히 총탄과 포탄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곳은 악몽 같은 세월이 지나고 발칸의 관광명소로 인기를 끌면서 다시 부흥하고 있다. 연간 400만 명이 이 도시를 찾는다. 11월 분위기는 수도 자그레브와는 사뭇 달랐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고풍스러운 스트라둔(Stradun) 거리에 번쩍번쩍한 불을 밝히고 소시지를 구우며 축제가 열렸다. 주민보다 관광객이 더 많은 곳이라 그런지 자그레브에서보다 더욱더 흥겨운 밤이 늦도록 이어졌다.

작은 성곽 안에 성 블라이세 성당, 성모승천 대성당, 그리스정교회당 등이 있어 스카이라인이 멋지다. 바다에서 산 쪽으로 이어진 골목도 느낌이 좋다. 건물과 건물 사이로 난 좁은 골목은 성곽 윗부분까지 격자로 이어진다. 전체를 대리석으로 포장한 이 중세도시의 거리는 옛 모습을 오롯이 간직한 가운데 다양한 현대식 상점이 입점해 있어 신구의 멋진 조화를 이룬다.

이곳에 왔다면 성벽과 스르드(Srd) 산 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오후 3시까지만 진행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하는 성벽 투어는 약 2㎞ 길이 성벽을 한 바퀴 걸어서 돌아 나오는 코스다. 원래는 도시를 수호하기 위해 만든 경비병의 순찰길인데 지금은 훌륭한 경관 탐방로가 됐다.

푸른 바다와 요새, 성곽 내 주택과 건물이 번갈아 눈에 들어온다. 성곽의 대포 구멍이 해변을 바라보는 전망 창 역할을 한다. 성벽 두께가 6m에 이를 정도로 철옹성이다. 로브리예나츠 요새의 민체타 탑은 두께가 무려 12m에 이른다. 바다의 함포로부터 버티기 위해 이같이 지었다.

스르드 산 전망대에 오르면 도시 전체와 바다, 수평선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해발고도 412m로 그리 높지 않지만, 바다에서 바로 치솟아 인근 풍경을 조망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 반대편에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대평원과 이를 가로지르는 산맥을 바라볼 수 있다. 해 질 녘 풍경은 더욱더 아름답다. 바다와 성벽, 대리석 건물의 색이 수시로 변한다.

한국인도 많이 찾는다. 특히 신혼부부가 많다. 커플이든 가족이든 누구나 비슷한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저마다 간직하는 곳이다. 함께 스르드 산에 오르고 견고한 성벽을 걷는다. 골목에서 맛있는 식사를 즐기고 와인을 마시며 휴가를 만끽한다.

그들이 ‘아드리아해의 진주’에 있는 동안 보고 느낀 사랑의 감정은 탄탄한 성벽이 오랜 시간 지켜줄 수 있을 듯하다. 적어도 두브로브니크 성벽만큼 아름답고 견고한 추억을 쌓아서 돌아갈 테니까.


▒ 이우석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전 여행기자협회 회장, 16년째 여행·맛집 전문 기자로 활동 중


여행수첩

가는 길 대한항공이 크로아티아 직항편을 운항한다. 터키 이스탄불을 경유하는 터키항공을 이용하면 수도 자그레브와 두브로브니크로 입출국을 나눌 수 있어 좋다. 터키항공은 인천~이스탄불 구간을 주 11회 운항하며, 이스탄불~자그레브는 주 10회, 이스탄불~두브로브니크는 주 4회 운항한다.

여행 팁 면적 5만6610㎢에 인구 약 425만 명. 크로아티아어를 사용한다. 유럽연합(EU) 가입국이지만 화폐는 자국의 쿠나(Kn)를 사용한다. 두브로브니크는 두브로브니크-네레트바주(Dubrovnik-Neretva County)에 속한다. 인구 4만2615명. 고딕·르네상스·바로크 양식 건물이 구도심을 채우고 있어 유럽에서도 많은 이가 찾는다. 긴 해안선을 가진 크로아티아는 남쪽으로 갈수록 물가가 비싸진다. 지중해성 기후의 두브로브니크는 자그레브보다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