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전쟁은 결과만 보일 뿐, 치열한 전투 과정을 세상에 더는 드러내지 않는다. 저 높은 하늘에서 수많은 눈이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 상황실의 책임자들이 결정을 내릴 뿐이다. 드론 조종사 스티브 와츠 중위(아론 폴)는 어린 소녀를 보면서 차마 폭탄 발사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상황을 재검토해줄 것을 상부에 요구한다. 사진 IMDB
현대의 전쟁은 결과만 보일 뿐, 치열한 전투 과정을 세상에 더는 드러내지 않는다. 저 높은 하늘에서 수많은 눈이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 상황실의 책임자들이 결정을 내릴 뿐이다. 드론 조종사 스티브 와츠 중위(아론 폴)는 어린 소녀를 보면서 차마 폭탄 발사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상황을 재검토해줄 것을 상부에 요구한다. 사진 IMDB

현대의 전쟁은 아군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상황실에 앉은 결정권자들이 드론(무인기)으로 바라본 정보를 종합해서 판단, 미사일 버튼을 누르라고 명령만 내리면 된다. 그러면 미국 네바다 사막의 한 공군 기지에 앉아 있는 드론 조종사가 모니터 화면을 조준한다. 지구 어디에 있든 정밀타격 한 방으로 적의 운명은 끝난다. 타깃이 된 인물의 신체적 특징을 계산, 시신의 조각들을 추적하고 죽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작전은 종료된다.

전쟁 중인가, 죽을지도 모르겠군, 마지막 기도라도 해야 할까, 생각할 기회가 적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공격을 맡은 군인도 화염과 피비린내를 직접 마주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전쟁이 아닌 것은 아니다. 게임 아바타가 아니라 실제로 누군가의 목숨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돌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희생도 발생한다. 그에 따른 책임은 결정권자와 버튼을 누른 그들 자신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고 해서 현실의 전쟁이 컴퓨터 게임처럼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 이러한 긴장감을 거의 실시간으로 극대화한 영화가 영국에서 제작된 ‘아이 인 더 스카이’다.

6년간 추적해온 테러 조직의 수뇌부가 케냐의 한 가옥에 모인다는 첩보가 입수되고 미국, 영국, 케냐의 연합 소탕 작전이 시작된다. 백악관은 일망타진할 것을 일찌감치 승인했고, 영국의 총리 이하 각부 장관과 정치인 대표, 3개국 합동작전의 군사 책임자인 벤슨 장군의 관리하에 연합사령부 캐서린 파월 대령이 실전 지휘를 맡았다. 미사일 타격을 위한 미국의 드론 부대 조종사와 케냐의 특수부대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대기 중이다.

작전 목표는 극단주의 테러 단체의 수장을 생포해 재판장에 세우는 것. 그러나 소형 감시용 드론으로 건물 안을 탐색한 결과, 그들이 자살 폭탄 테러를 준비하고 있는 게 드러난다. 실전부대를 투입한다면 자살 조끼를 장착한 테러범으로 인한 아군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공격을 미룬다면 최소 80명 이상의 시민이 또다시 도심에서 희생될 위기에 처한다. 파월 대령은 생포 계획을 사살 작전으로 변경, 미사일 투하를 당장 승인해달라고 수뇌부에 요청한다.

체포 장면을 보러 온 것이지 시체를 보러 온 게 아니라고 정치인이 펄펄 뛰자 난감해진 법무부 장관은 외무부 장관에게, 외무부 장관은 총리에게, 총리는 다시 백악관에 결정권을 미룬다. 최종 승인에 따른 부담과 책임을 어떻게든 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백악관은 즉각적인 테러범 제거를 단호하게 종용하지만, 상황실에 모인 책임자들은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정치인의 탁상공론이 이어지는 동안 몇 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장군과 대령은 애가 탄다.

끝내 의견이 모이고 공격이 승인된다. 그런데 하필 그 순간, 어린 소녀가 폭발 피해 범위 안으로 들어와 좌판을 벌이고 빵을 팔기 시작한다. 미사일이 발사되면 50초 후 저 아이는 죽는다. 현지 첩보원이 나서서 아이를 피신시켜보려 하지만 주변을 경호 중이던 테러 조직원에게 정체가 노출되는 바람에 그의 목숨까지 위험한 처지에 놓인다. 드론 조종사는 차마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상황을 재검토해줄 것을 상부에 요구한다.

실제 전투기 파일럿과 달리 드론 조종사는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정당방위의 필연성을 갖지 못한다. 더구나 타격 후 화면을 확대해서 분해되고 찢어진 시신 조각을 찾아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 그 때문에 상명하복의 군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 이의를 제기한 조종사에게 무조건 복종하라고 상황실의 누구도 명령하지 못한다.

“정치적으로는 쇼핑센터에서 80명을 테러한 살인범을 공격하는 것이 무고한 아이를 죽인 드론 작전을 옹호하는 것보다 쉽죠.” 유권자의 표를 계산하며 정치인이 말한다. 타격 중지를 강력히 주장하던 그에게 군사 책임자 벤슨 장군이 일갈한다. “당신이 커피와 비스킷을 먹으며 오늘 화면으로 목격한 장면은 끔찍했습니다. 하지만 그자들이 하려고 했던 짓은 훨씬 더 끔찍했을 겁니다. 군인이 전쟁의 대가를 모른다고 절대로 말하지 마십시오.”

무고한 어린 소녀 한 명을 지킬 것인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테러로 죽게 될 미지의 수많은 인명을 구할 것인가. 만약 당신이 총리라면, 당신이 다음 선거에서 표를 얻어야 할 정치인이라면, 군을 대표하는 장군이라면, 그리고 마지막 버튼을 눌러야 할 드론 조종사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타인의 결정은 얼마든지 비난할 수 있지만, 그 자리에 앉은 게 나라면, 하고 생각하는 순간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엑스맨 탄생, 울버린’의 개빈 후드 감독이 드론 전쟁의 양면을 균형감 있게 담아냈다. ‘더 퀸’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고뇌를 품격 있게 보여줬던 헬렌 미렌이 파월 대령을,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에서 마약 딜러 제시 역으로 인상 깊었던 아론 폴이 드론 조종사 와츠 중위를 연기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스네이프 교수로 낯이 익은 앨런 릭먼(벤슨 장군 역)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장대한 액션이나 자극적인 쾌감을 기대한다면 한없이 조용하고 차분한 영화지만 신경을 곤두세우는 긴박감은 결코 다른 데로 눈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전쟁과 인간의 이면에 관심이 있다면, 드론 조종사의 심리적 갈등을 집중적으로 다룬 2014년 작 ‘드론 전쟁, 굿 킬’도 추천한다.

지구에 인류가 생겨난 이래 단 하루라도 전쟁 없는 날이 있었을까. 어떤 이들은 끊임없이 남을 해치고 빼앗아서라도 목적을 이루려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들과 대적해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고 보호하려고 한다. 그렇게 세상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뺏고 빼앗기고, 죽고 죽이며 존속해왔다.

최첨단 과학 기술이 발전한 현대의 전쟁은 결과만 보일 뿐, 더는 치열한 전투 과정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는다. 저 높은 하늘에서 수많은 눈이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 상황실의 책임자들이 결정을 내릴 뿐이다.

그 결과 누군가는 자신들이 벌인 일 때문에 죽고 또 누군가는 영문 모르고 희생되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수많은 사람은 생사의 갈림길이 스쳐 지나갔는지도 모른 채 오늘이라는 이날을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 바라건대 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눈과 미사일과 상황실의 그들이 ‘우리 편’이기를!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