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82) UCLA 교수. 6년 만의 신작 ‘대변동: 위기, 선택, 변화’를 들고 한국을 찾은 그를 10월 31일 서울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인터뷰했다. 사진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총 균 쇠’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82) UCLA 교수. 6년 만의 신작 ‘대변동: 위기, 선택, 변화’를 들고 한국을 찾은 그를 10월 31일 서울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인터뷰했다. 사진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중국은 이번 세기 주인이 될 수 없어요. 리더의 과오를 막을 민주주의 시스템이 없어서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미국의 공교육은 엉망입니다. 90%의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어요.”

82세의 세계적인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 UCLA 교수가 부드럽고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 문장 안에서도 여러 국가의 과거와 미래가 자연스럽게 교차했다. 망원경과 현미경을 수시로 오가는 깊은 갈색 눈. 그 눈으로 오대양 육대주 국가의 흥망성쇠를 단번에 들여다보며 이야기했다. 실리콘밸리부터 뉴기니까지…. 문명의 붕괴와 추락, 극복과 성장의 빅 히스토리가 순식간에 그 안에 줌인 줌아웃 됐다.

과학자이면서 역사가이자 언어학자이면서 인류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 6년 만의 신작 ‘대변동: 위기, 선택, 변화(이하 대변동)’를 소개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다이아몬드 교수를 10월 31일 서울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만났다.

‘대변동’은 7개 국가의 위기를 비교한 다이내믹한 역사서지만, 한편으론 ‘위기란 무엇인가’를 다룬 심리학이나 자기계발 도서로도 읽혔다. 그만큼 다이아몬드 교수 특유의 유려한 이야기체가 돋보인다. 얼굴 윤곽이 하얀 털로 덮인 인자한 노교수에게 링컨 대통령을 닮았다고 하자 “존경하는 리더”라며 흐뭇해했다.


문명을 다룬 선생의 스펙터클한 저작들이 부드럽고 사적인 질문에서 시작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총 균 쇠’는 뉴기니의 해변을 걸으며 한 흑인 정치가가 했던 질문 “왜 백인은 세계를 지배했고, 흑인은 그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했을까요?”에 대답하기 위해서 출발했다. ‘대변동’도 선생이 젊은 날, 케임브리지의 생리학 실험실에서 ‘다 포기할까?’라는 진로의 위기에서 시작한다. 흥미로운 건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고, 감정이입이 된다는 거다.
“그렇다. 나는 거시적 역사를 기술할 때도 개인을 매우 중요시한다. 읽는 사람이 자기 일처럼 느낄 수 있도록 자전적 경험을 녹여낸다. 국가 위기를 분석하기 위해서, 나는 어린 시절 겪었던 ‘보스턴 나이트클럽 화재 사건’부터 이야기했다. 그 사건은 많은 미국인에게 충격이었고 긴급 심리 치료 기법이 도입된 전환점이었다. 개인과 국가의 위기는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 청년 시절 겪은 나의 학문적 위기나 중년 시절 겪은 이혼의 위기도 그렇다. 여러 사건을 비교해서 복안의 눈으로 보면 시야가 놀랍도록 넓어진다.”

그렇다고 해도 쓸개에서 시작해 조류를 거쳐 인류까지, 학문적 여정이 넓어지고 있는 광경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미소지으며) 달라 보여도 공통점이 있다. 내가 연구한 모든 학문의 중심엔 비교가 있다. 나는 케임브리지에서 쓸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실험실 과학은 무조건 A실험군과 B대조군을 비교해서 계량적으로 입증한다. 하지만 새를 연구하기 위해 뉴기니로 갔을 땐 환경을 통제할 수 없었다. 천적을 없앨 수도 없고, 그건 또 비윤리적인 행위다. 그래서 어떤 새가 번성한 곳과 멸종한 곳의 환경을 비교 연구했다. 그 뒤 새 관찰에서 배운 자연관찰법을 역사에 응용했다. 가령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가’를 비교했더니 지리적 요인이 컸다. 대체로 온대 국가의 반도국이 열대 국가나 내륙 국가보다 부유하다. 문명사회 이후 제도라는 변수를 무시할 수 없더라. 한국과 북한은 같은 나라지만 분단 이후 경제 발전에서 극적인 차이를 드러냈다. 그건 다른 제도 때문이었다. 여하튼 특이점은 내가 쓸개와 새의 방법론인 비교를 문명과 역사에 적용했다는 거다(웃음).”

한발 더 나아가 ‘개인의 위기’와 ‘국가의 위기’를 수평으로 놓고 비교한 것도 획기적이다. 모든 게 아내 덕분이었다고 들었다.
“맞다(웃음). 나는 지난 60년간 여섯 개의 언어를 쓰며 여러 나라에서 살았다. 독일, 칠레, 호주, 인도네시아, 핀란드…. 신기한 건 내가 가는 나라마다 위기를 겪었다는 점이다. 깜짝 놀랐다. 혹시 내가 위기인가(웃음)? 찬찬히 따져보니 사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가 위기를 겪고 있더라. 그 시점에 임상 심리치료사인 아내가 영감을 줬다. 아내는 이혼, 질병 등 극심한 삶의 위기를 겪고 있는 개인을 상담하면서 몇 가지 회복 요법을 쓴다. 그 기법을 국가 위기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핀란드는 정부 조직에 위기를 담당하는 부서를 따로 두고 있다. 사진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핀란드는 정부 조직에 위기를 담당하는 부서를 따로 두고 있다. 사진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그는 책에서 위기 극복의 핵심 요인을 12가지로 제시했다. 위기 인정, 책임 수용, 해결할 것과 놓아둘 것 정하기, 외부에서 도움받기, 좋은 본보기 찾기, 자아 강도, 정직한 자기 평가, 인내 등등. 내가 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치료를 받고, 나한테 문제가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해결의 책임을 지게 된다. 뼈아프지만 자신이 처한 현실과 능력에 대한 정직한 자기 평가도 필요하다.

국가도 마찬가지. 예컨대 위기를 벗어나는 데 개인의 자아 강도와 자존감이 중요하듯, 한 국가의 국민성과 정체성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에 따르면 위기는 갑자기 오는 것도 아니며 오랫동안 쌓인 압력이 폭발할 때 닥친다. 갈등이 누적된 부부는 이혼하기 마련이고, 정치적 경제적 어려움이 축적되면 쿠데타가 일어난다. 통상 개인은 평생 서너 번 정도, 국가는 수 세기 간격으로 위기를 맞는다.

제시한 12가지 요소로 과거의 내 개인 위기도 분석할 수 있었다. 약한 듯 강한 자아 강도가 핵심 인자더라(웃음). 선생이 보기에 이 12가지 중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인가.
“다 중요하지만 일단은 첫 과정부터 밟아야겠지. 스텝 1 위기 인정, 스텝 2 책임 수용, 스텝 3 당장 고칠 것 정하기. 하지만 국가에 따라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은 있다. 메이지유신 시대 일본은 12가지 중 ‘본보기 찾기’를 잘했다. 신문물을 받아들일 때 군대, 해운, 교육 분야에 맞게 미국과 유럽에서 각국의 가장 좋은 기술과 제도만 쏙쏙 뽑아 받아들였다.”

당면한 한국의 가장 큰 위기는 뭐라고 보나.
“국경을 이웃한 북한이다.”

현재 한국은 내부의 이념 갈등 문제도 심각하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이념 대립은 미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한국은 물론 영국, 호주, 이탈리아도 심각하더라. 심화한 불평등과 그로 인한 좌우 갈등은 전 세계적인 문제다. 이럴 때 리더는 국가 정체성을 중심으로 좌우를 단합시켜야 한다. 당신들은 한글이라는 세계 최고의 문자를 만든 민족 아닌가? 36년이라는 일제 식민지를 겪고도 경제 대국을 이뤄낸 민족이다. 차이보다 그런 저력과 정체성을 강조하면 좌우 갈등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일본과 한국 관계도 날이 서 있다. 해법이 있을까.
“어려운 문제다. 일단 폴란드와 독일을 보자. 내 아내가 폴란드계 미국인이라 그들의 마음을 좀 안다(웃음). 오랫동안 독일 지도자들은 과거 나치의 행위를 형식적으로만 사과했다. 그런데 1970년 겨울, 기적이 일어났다.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나치 피해자 위령탑 앞에서 들고 있던 대본을 던져버리고 무릎을 꿇었다. 브란트 총리의 진심 어린 사과에 폴란드인의 마음이 움직였다. 그 뒤 폴란드와 독일의 관계는 회복됐다.”

독일과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지만, 도덕적 위상을 세운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로 비교된다. 혹 아베 총리를 만난다면 그 부분에 대해 조언하겠나.
“할 수는 있지만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웃음). 독일과 일본은 문화적인 차이가 큰 편이다.”

그런 면에서 독일은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지, 리더의 ‘지적인 낙관주의’와 ‘인내’가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보여준 놀라운 국가라는 생각이 든다.
“맞다. 어떤 면에서 독일과 미국은 양극단의 다른 국가다. 미국은 캐나다,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바다에 둘러싸여 있어 위험이 거의 없다. 반면 독일은 15개가 넘는 접경지대에, 프랑스, 러시아 등은 물론 바다 건너 영국과도 긴장 관계에 있다. 지정학적으로 한국과 비슷하면서 강대국 때문에 운신의 폭도 좁다. 다행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리더가 다 훌륭했다. 빌리 브란트, 슈뢰더, 메르켈까지. 만약 일본의 리더도 빌리 브란트처럼 난징 대학살 현장에서, 한국의 종전 피해자들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한다면 일본의 지위는 달라질 텐데 말이다.”

문득 궁금하다. 현재는 급속히 변하고 있는데 선생의 방식대로 ‘과거에서 배운다’는 방법이 정말 유익할까.
“과거는 느리고 현재는 빠른 것 같지만, 사실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과거나 현재나 비슷하다. 비슷한 골칫거리를 안고 산다. 종교를 맹신하고 이기적이며 정치적 갈등에 휘말려 있다. 우리가 프랑스에서 4만 년 전에 그려진 동굴 벽화를 이해하는 건 그 시대 사람과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아서다. 과거는 좀 더 일찍 온 현재다.”

미래의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인간은 과거와 똑같은 걱정을 하며 살 거라는 말에 왠지 안도가 된다. 아이를 키우는 것, 노인을 대하는 법, 분쟁과 건강 등등. 정말 삶이 크게 바뀌지 않을까.
“인류는 전화기, 자동차가 없던 지난 수만 년 동안에도 똑같은 걱정을 해왔다. AI 시대에도 분명 같은 걱정을 하며 살아갈 거다. 양육 스타일도 그렇다. 과거엔 체벌이 당연시됐지만, 지금은 금지됐다. 비스마르크의 명언을 기억하라. ‘한 세대가 금지한 것을 다음 세대는 허용할 것이다.’ 방법론은 세대마다 왔다 갔다 한다. 새로운 걱정거리는 과거로의 회귀를 촉구한다. 결국 원초적인 삶에서 인간은 크게 변할 수 없다.”

‘총 균 쇠’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 책은 서울대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려 간 책으로 유명한데, 얼마 전 나는 한 홈리스의 쉼터에서도 그 책을 봤다. ‘총 균 쇠’가 이 세상에 미친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금까지 문명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적인 시선을 교정했다. 유럽의 백인이 이 세계를 지배한 건 두뇌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단지 환경적으로 그들이 운이 좋았을 뿐이다. 지리적인 이점으로 농경, 가축화가 가능했고, 그 확장이 무기, 병균, 금속이라는 문명의 도구를 낳았다. 빌 클린턴이나 토니 블레어 등 지도자들도 ‘총 균 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여러 문명을 통찰한 빅 히스토리의 대가로 선생은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는가.
“‘세계는 다 글렀어!’라고 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나는 ‘문명의 붕괴’를 쓰고 이어서 ‘대변동’을 썼다. 지금 32세인 나의 쌍둥이 아들이 살아갈 2050년을 기대하면서.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더 나아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비록 부정적인 요소가 있어도 우리는 낙관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붕괴할 수도 있으니 이 세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으니까(웃음).”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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