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함부르크 전경. 제일 높은 건물이 장크트 미카엘리스(St. Michaelis) 교회다.
독일 함부르크 전경. 제일 높은 건물이 장크트 미카엘리스(St. Michaelis) 교회다.

필자가 7년째 거주하고 있는 북독일의 중심 도시 함부르크는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 함부르크의 상징은 바로크 양식의 거대한 탑이 인상적인 장크트 미카엘리스(St. Michaelis) 교회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럽 최대 규모의 유흥가 레퍼반(Reeperbahn)은 미카엘리스 교회 왼쪽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미카엘리스 교회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함부르크 음악의 중심지, 브람스 광장 1번지가 나오는데 이곳에 라이츠할레(Laeiszhalle) 콘서트홀이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성격의 공간이 옹기종기 모여있지만, 의외로 편안한 조합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함부르크의 매력이다.

음악인인 필자의 관심을 끄는 곳은 미카엘리스 교회와 레퍼반 사이에 있는 콤포니스텐 크바르티어(Komponisten quartier)다. 콤포니스텐 크바르티어는 ‘작곡가 구역’이라는 의미의 독일어다. 작곡가 구역은 미카엘리스 교회에서 레퍼반으로 향하는 대로에서 불과 몇 발짝 들어간 곳에 있다.

작곡가 구역은 200년 전 함부르크로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옛날 북독일 양식의 붉은 벽돌 건물이 광장을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다.

건물 입구에는 낯익은 이름이 붙어있다. 요한 아돌프 하세,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 카를 필리프 에마뉘엘 바흐, 펠릭스 멘델스존, 요하네스 브람스, 구스타프 말러. 이름만 들어도 온몸에 전율을 일으키는 이들 작곡가는 함부르크에서 태어났거나 함부르크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함부르크는 눈부신 음악적 재능을 바탕으로 이 도시에 축복을 내려준 이들을 기념하기 위해 1971년 브람스 박물관을 시작으로 2015년 바흐 박물관과 하세 박물관까지 총 6개의 음악 박물관을 세웠다. 그렇게 작곡가 구역이 만들어졌다.

각각의 박물관에는 작곡가들이 사용한 악기를 비롯해 악보 필사본, 편지, 사진 등 그들의 삶과 음악을 엿볼 수 있는 물건이 전시돼 있다. 작곡가 구역의 박물관을 둘러보면 1700년도에 살았던 요한 아돌프 하세,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 카를 필리프 에마뉘엘 바흐부터 1800년도에 활동한 펠릭스 멘델스존, 요하네스 브람스까지 200년이 넘는 함부르크 음악의 역사를 한 번에 살펴볼 수 있다.

작곡가 구역 광장 중심부에 자리한 건물에는 연주를 위한 콘서트홀도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는 함부르크에서 태어났거나 활동한 작곡가들의 곡을 재발견하는 각종 연주회와 세미나가 1년 내내 열린다.


라이츠할레(Laeiszhalle) 콘서트홀. 함부르크의 미카엘리스 교회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나오는 함부르크 음악의 중심지 브람스 광장 1번지에 있다.
라이츠할레(Laeiszhalle) 콘서트홀. 함부르크의 미카엘리스 교회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나오는 함부르크 음악의 중심지 브람스 광장 1번지에 있다.

필자는 지난여름 작곡가 구역에 있는 멘델스존 박물관 주관으로 열린 연주회에 초대돼 연주했다. 연주곡은 대중에게 잘 알려진 펠릭스 멘델스존의 곡이 아닌 그의 누나인 파니 멘델스존이 작곡한 곡이었다. 남동생만큼 음악적 재주가 있었지만,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파니 멘델스존에 대한 자료는 부족했다. 연주를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었던 이유다.

하지만 연주를 들으러 왔던 관객 다수는 파니 멘델스존의 삶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구하기 힘든 파니 멘델스존의 악보 사본을 들고 온 사람도 몇몇 있었다. 작곡가 구역을 찾는 이들이 작곡가들의 삶을 박물관에서 보는 것을 넘어 그들의 음악을 지금도 연구하고 있다는 점이 무척 인상 깊었다.

또 한 가지, 작곡가 구역에 있는 여섯 개의 박물관과 콘서트홀, 콘서트홀 앞 카페에서 일하는 어르신 모두 작곡가 구역에 살고 있다는 점도 놀라웠다. 작곡가 구역을 관리하는 알프레드 퇴퍼 재단 관계자는 “작곡가 구역에 있는 건물 1·2층은 박물관으로, 3층 이상은 주거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고 설명했다. 주거 공간은 노인을 대상으로 저렴한 가격에 제공된다. 일종의 임대주택인 셈이다.

작곡가 구역에 있는 박물관에서 나온 수익은 주거 공간을 관리하는 비용으로 쓰인다. 여기다 거주민은 박물관에서 일자리까지 얻는 것이다. 200년 전에 함부르크에서 살았던 작곡가들이 음악으로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Plus Point

함께 감상하면 좋은 음반

카를 필리프 에마뉘엘 바흐
함부르크 교향곡

카를 필리프 에마뉘엘 바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아들이다. 현재는 아버지의 명성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지만, 그가 살던 당시에는 ‘함부르크의 바흐’로 불리며 아버지의 명성을 능가하는 유럽 최고의 음악가 반열에 올라 있었다. 그는 바로크에서 고전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감정 과다 양식’이라는 그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후배 작곡가에게 영향을 미쳤다. 모차르트, 베토벤, 하이든 등이 그의 영향을 받아 빈 고전 음악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함부르크 교향곡은 에마뉘엘 바흐가 함부르크에 머물며 작곡한 교향곡 모음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