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뚝 위에 앉아 있는 새. 사진 김진영
말뚝 위에 앉아 있는 새. 사진 김진영

쉽게 만나기 어려운 야생 동물의 삶은 인간에게 늘 호기심의 대상이다. 살면서 직접 보기 어려운 야생 동물의 모습이 익숙하다면, 그것은 카메라 덕분이다. 우리는 빙하를 배경으로 한 북극곰이나 펭귄, 아프리카 초원의 기린이나 사자의 모습을 이미지로 수없이 접하면서 마치 이들을 살면서 본 적이 있는 것처럼 익숙하게 느낀다.

때때로 야생 동물의 삶을 담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은 야생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방식으로 시도되기도 한다. 미국 사진작가 조지 시라스(George Shiras)가 대표적이다. 조지 시라스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야생 동물 사진의 아버지’라 부를 정도로 이 분야의 사진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밤에 찍은 야생 동물 사진은 수가 적고, 그 결과 사람에게 낯선 세계로 여겨진다. 조지 시라스는 이 낯선 세계를 사진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그가 1935년에 펴낸 사진집 ‘카메라와 플래시 조명으로 야생 동물 추적하기: 북아메리카 산림과 수역에서의 65년간의 기록’에는 밤에 찍은 약 950점의 사진이 수록돼 있다.

그런데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다른 생각이 날지도 모른다. 미국 미시간주에서 찍은 ‘점프하는 흰꼬리사슴 세 마리’라는 제목의 사진은 흰꼬리사슴 세 마리가 같은 순간 모두 다른 방향으로 펄쩍 뛰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 사진은 작가가 우연히 흰꼬리사슴의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한 듯 보인다. 하지만 작가가 사용한 촬영 방법을 알게 되면 감상하던 마음이 달라질 수 있다.

그는 밤에 플래시를 터트려 사진을 찍었다. 사실 작가는 미리 ‘카메라 덫(camera trap)’을 설치했고, 이 덫을 건드린 사슴을 카메라가 포착했다. 조지 시라스는 동물이 줄을 건드리면 줄과 연결된 마그네슘 플래시(마그네슘 가루가 순간적으로 타면서 내는 빛을 이용한 플래시)와 카메라가 작동하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마그네슘 플래시가 터지면서 나는 소리와 빛으로 사슴을 놀라게 한 다음 사진을 찍은 것이다. 물론 사진은 언제나 기술 발전의 역사와 깊이 연결돼 있고, 조지 시라스의 사진이 당시에 보기 힘들었던 밤의 장면을 보여줬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동물 사진을 자연스럽게 촬영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 역시 분명하다.

그렇다면 밤에 활동하는 동물을 자연스럽게 포착할 순 없을까. 사진작가 스티븐 길(Stephen Gill)은 영국 런던에서 살다 스웨덴 남부의 한적한 교외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긴 뒤 새롭게 맞닥뜨린 자연 속에서 동물의 흔적을 예민하게 발견했다. 낮에는 동물을 보기 힘들지만, 이들이 밤 동안 남겨둔 다양한 크기의 발자국, 털 뭉치, 알 껍데기, 뜯어 먹던 버섯 등을 발견했다. 스티븐 길은 이 같은 흔적으로 동물들이 밤에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스티븐 길은 숲속에 특별한 카메라를 설치했다. 움직임을 감지해 자동으로 셔터가 작동하는 모션센서(motion sensor), 동물의 활동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적외선 플래시(infra-red flash)를 카메라에 탑재해 숲속에 설치했다. 그는 이 방법을 이용해 야간에 활동하는 부엉이, 고라니, 멧돼지 등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고, 이를 모아 2017년 ‘밤의 행진(Night Procession)’을 출간했다. 스티븐 길은 “대부분 내가 자는 동안에 피사체들은 움직이고 행동하고 작가의 역할을 떠맡았다”며 “자연이 말을 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스티븐 길의 사진집 ‘말뚝(The Pillar)’ 표지. 사진 김진영
스티븐 길의 사진집 ‘말뚝(The Pillar)’ 표지. 사진 김진영
말뚝 위에서 카메라를 쳐다보는 새. 사진 김진영
말뚝 위에서 카메라를 쳐다보는 새. 사진 김진영
말뚝을 박차고 날아가는 새. 사진 김진영
말뚝을 박차고 날아가는 새. 사진 김진영

작가는 ‘밤의 행진’ 출간 이후 새에게 주목했다. 하늘을 나는 새의 모습은 인간의 시야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그들의 삶은 아득하게 느껴지곤 한다. 어쩌면 새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동물이 밤에도 분주하게 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들판을 오가는 새가 말뚝에 내려와 앉길 바라며, 집 근처 들판에 지름 6㎝ 길이 15㎝의 나무 말뚝을 박았다. 그리고 그 말뚝의 맞은편에 비슷한 크기의 말뚝을 하나 더 박은 뒤, 캡처 장치가 달린 카메라를 설치했다. 사진이 찍힐지 반신반의하면서 말이다. 과연 저 높은 하늘을 날던 새들이 말뚝에 내려와 앉았을까. 카메라가 새를 잘 포착할 수 있었을까. 그 결과는 어땠을까. 

놀랍게도 이 작고 간단한 말뚝은 하늘을 날던 새들을 땅으로 유인할 수 있었다. 새들은 하늘을 날다 말뚝에 잠시 내려와 휴식을 취하며 다양한 행동을 했다. 그 덕분에 털을 손질하거나, 먹이를 먹거나, 말뚝에 내려와 앉는 순간, 말뚝을 박차고 날아가는 모습 등이 카메라에 담겼다. 카메라는 말뚝을 쥐고 있는 새의 발톱, 비를 맞은 듯 젖은 깃털을 면밀히 담아냈다. 마치 증명사진처럼 반듯하게 찍힌 새의 모습도 있지만, 때로는 몸을 뒤틀거나 곡예하는 듯한 알 수 없는 동작도 담겼다. 그뿐만 아니라 새가 예상치 못하게 카메라 위에 앉는 바람에 새의 날개가 렌즈를 가리면서 찍힌 다소 추상적인 이미지도 만들어졌다.

스티븐 길은 4년 동안 새 작업을 했고, 총 24종의 새를 포착했으며, 이를 모아 ‘말뚝(The Pillar·2019)’을 출간했다. 이 작업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면에서 이 작업은 새들 스스로가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저 사진이 탄생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을 뿐이다.”

예전에 한국의 탐조(探鳥) 문화에 대한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일부 사람이 새를 유인해 사진을 찍기 위해 새가 좋아하는 열매를 사진 찍기 좋은 장소에 올려 둔다고 했다. 이 칼럼의 필자는 보통 산새들이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데, 이렇게 인간이 개입하면 새가 한 장소에 길든다고 꼬집었다. 이와 더불어 이런 방식으로 사진을 찍으면 푸르른 나뭇가지, 흐르는 개울물 같은 자연스러운 요소 대신 죽은 나뭇가지 위에 올려진 열매, 사람이 부어준 물과 같이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요소가 담긴 사진이 만들어진다고 비판했다.

스티븐 길의 작업은 야생 동물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을 때, 작가가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한 교훈을 준다. 그의 사진은 야생 동물을 보여주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자연이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게 하기 위해 작가가 한 발짝 물러서고 개입을 최소화한 촬영 방식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다. 카메라는 그가 만들어 둔 환경 안에 고정돼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다양한 이미지는 말뚝에 내려앉은 수많은 새가 만들어낸 변주였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야생(野生)의 참된 의미일 것이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