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부터 서서히 청력을 상실한 베토벤은 악보와 피아노 건반 촉감에 의지해 걸작을 빚어냈다.
서른 살부터 서서히 청력을 상실한 베토벤은 악보와 피아노 건반 촉감에 의지해 걸작을 빚어냈다.

소리 잃은 음악
로빈 월리스 지음│홍한결 옮김│마티
406쪽│2만원

올해는 음악의 성인(聖人)으로 꼽히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탄생 250주년이다. 출판계에서는 베토벤의 음악과 청력 상실을 다룬 책 ‘소리 잃은 음악’이 나왔다. 미국의 음악학자 로빈 월리스가 2년 전 시카고대 출판부에서 낸 ‘Hearing Beethoven’을 우리말로 옮겼다.

이 책은 베토벤이 서른 살부터 이명(耳鳴)을 앓기 시작해 서서히 청력을 상실했지만, 예술가의 소명 의식으로 장애를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정상인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찾아냄으로써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는 업적을 남겼다고 풀이했다. 베토벤이 말년엔 청각이 아닌 시각에 의존해 작곡함으로써 남달리 강렬하고 혁신적인 음악을 개척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베토벤의 친필 악보로 베토벤이 귀가 먼 상태에서 악보를 통해 소리를 표현한 방법을 분석했다. 자신만의 독특한 악보 표시로 음악을 귀가 아닌 눈으로 느끼면서, 악보를 수정한 과정을 꼼꼼히 뜯어봤다. “베토벤은 과거의 어느 작곡가보다 더 기보(記譜)를 이용해 소리를 만들어냈다”라는 것.  

“그 유명한 악필로 고치고 또 고친 흔적에서, 우리는 그가 곡을 종이 위에서 만들어나갔음을 알 수 있다”라고 서술의 실마리를 풀어간 저자는 베토벤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면서 그 소리를 촉각으로 확인했다고 확신했다. “건반이 여전히 촉감을 전해주었고, 해머는 여전히 오르내렸으며, 피아노 몸체가 여전히 그의 손길에 진동했으니까”라는 것. “그런가 하면 베토벤은 소리를 모아주는 구실을 하는, 판금으로 된 돔 모양의 공명기를 피아노에 달고 연주하기도 했다. 또 제조사를 채근해 피아노의 음량을 키우게 했다.”

이 책은 베토벤이 귀가 나빠질수록 “짧고 귀에 꽂히는 선율 윤곽”을 점점 더 두드러지게 사용했기 때문에 그 유명한 교향곡 5번의 강력한 울림을 빚어냈다고 풀이했다. “교향곡 5번의 리드미컬한 역동이 우리에게 그토록 인상적인 이유는, 한마디로 강력하면서도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악보의 태반이 쉼표다. 베토벤의 자필 악보를 보면 베토벤 본인도 그런 느낌으로 작곡했음이 드러난다. 베토벤은 귀가 먹어갈수록 점점 더 긴 작품을 썼고, 동기를 점점 더 교묘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활용했다.”

이 책은 베토벤이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에서 발표한 교향곡 9번이 1825년 초연된 뒤 당시 음악계에 일으킨 신선한 파장도 상세하게 다뤘다. 1828년 어느 음악 평론가는 교향곡 9번의 시각 효과에 주목하며 “거장(巨匠)이 각각의 파트를 확연한 윤곽으로 나타내고 강렬한 색으로 생생히 표현할수록 그 속에 담긴 극명한 대조가 더욱 부각된다”며 “명확한 사실은 베토벤은 통상적인 교향곡을 쓰려고 하지 않았으며, 비범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목표로 했다는 점이다”고 했다.

이 책의 저자는 말년에 청력을 상실한 아내와 8년 남짓 살았다. 아내는 세상을 뜨기 전 청력을 잃은 상태에서 치료와 재활을 위해 음악 감상에 몰입했다. 그 체험기가 책에서 3분의 1을 차지한다. 음악은 청각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온몸으로, 사랑과 열정으로 음미해야 할 예술의 세계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