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코스에는 총 112개의 벙커가 있다. 어른 키를 훌쩍 넘는 항아리 벙커에 빠지면 한 번에 탈출하는 게 쉽지 않다. 때론 왔던 길로 다시 쳐내야 한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올드 코스에는 총 112개의 벙커가 있다. 어른 키를 훌쩍 넘는 항아리 벙커에 빠지면 한 번에 탈출하는 게 쉽지 않다. 때론 왔던 길로 다시 쳐내야 한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북해(北海) 연안에 있는 인구 1만7000명의 작은 도시 스코틀랜드 파이프 주의 세인트앤드루스는 연중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순례자들로 붐빈다. ‘골프의 고향(Home of Golf)’을 찾은 골프 순례자들이다. 호텔과 레스토랑, 술집 등 어디에 들어가도 올드 코스와 톰 모리스 부자의 사진 하나쯤은 걸어두고 장사를 한다. 동네 펍에 들어가 맥주 한잔을 시키자 어디서 왔느냐고 묻더니 “웰컴 투 홈 오브 골프”란 인사말을 건넸다.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서 북동쪽으로 차로 약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세인트앤드루스는 교육과 종교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1410년 설립된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은 영국에서는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에 이어 세 번째, 스코틀랜드에서는 가장 오래됐다. 세계적 명성을 지닌 대학으로, 윌리엄 왕세손 부부도 이 대학을 다니며 사랑을 키웠다.

도시 동쪽 끝 해안 절벽 근처에 있는 세인트앤드루스 대성당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앤드루 성자(聖者)의 유해가 묻힌 곳이다. 도시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세인트앤드루스 링크스의 상징도 성자가 골프 클럽을 교차해 들고 있는 모습이다. 1160년에 지어진 대성당은 16세기 종교개혁의 풍파를 비껴가지 못했다. 화재 등으로 파괴되고 지금은 첨탑과 일부 외벽만 남아 공동묘지로 활용되고 있다. 골프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톰 모리스 부자(父子)도 이곳에 묻혀 있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가 골프의 성지로 추앙받는 이유는 초창기 골프가 이곳에서 크게 부흥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전 세계 골프의 중심으로서 그 권위와 역할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올드 코스 1번 홀 티잉 그라운드 뒤에는 세계 골프 룰을 관장하는 로열 앤드 에인션트 골프클럽(Royal & Ancient Golf Club of St Andrews)의 클럽하우스가 있다.

1920년부터 최고(最古)의 골프 대회이자 4대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디오픈(브리티시오픈)을 유일하게 주관하고 있다. 매년 디오픈 중계권 수익으로만 250억원 이상을 번다. 후원 계약 120억원 이상, 모자와 티셔츠 등 기념품 수입 100억원 등 경제적 효과가 크다. 올드 코스는 디오픈을 5년마다 열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다. 600년 역사를 지닌 골프의 고향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가 현재도 가장 강력한 골프 브랜드 중 하나로 살아있는 것이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는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대자연이 만든 코스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다. 제대로 자란 나무 하나 없는 황량한 링크스에 세워진 코스이지만 가장 공정한 테스트의 무대이기도 하다. 인공적으로 잘 다듬어진 코스를 접해왔던 골퍼들은 처음 올드 코스를 마주할 때 ‘이게 무슨 코스야’라고 실망할 수도 있지만 그 속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1 18번 홀에 있는 스윌컨 다리. 이 작은 돌다리는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의 상징이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 2 18번 홀 그린에서 한 무리의 관광객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뒤편 건물은 로열 앤드 에이션트 골프클럽의 클럽하우스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 3 첨탑과 외벽 일부만 남은 세인트앤드루스 대성당. 현재는 공동 묘지로 이용된다. 톰 모리스 부자도 이곳에 묻혀 있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1 18번 홀에 있는 스윌컨 다리. 이 작은 돌다리는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의 상징이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2 18번 홀 그린에서 한 무리의 관광객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뒤편 건물은 로열 앤드 에이션트 골프클럽의 클럽하우스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3 첨탑과 외벽 일부만 남은 세인트앤드루스 대성당. 현재는 공동 묘지로 이용된다. 톰 모리스 부자도 이곳에 묻혀 있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다른 링크스 코스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정확히 언제부터 골프를 즐겼는지는 알 수 없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1552년 해밀턴 대주교가 세인트앤드루스 사람이 링크스에서 골프를 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는 헌장이다. 이 기록을 근거로 기네스북은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를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코스로 인정하고 있다.

세인트앤드루스가 처음부터 골프의 중심지였던 것은 아니다. 초창기에는 에든버러의 젠틀맨들이 골프계의 주류였던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규칙을 만든 것도 에든버러 리스 지역에서 활동하던 ‘젠틀맨 골퍼스 오브 리스(후에 ‘아너러블 컴퍼니 오브 에든버러 골퍼스’로 바뀜)’ 멤버들이었다.

그렇다면 세인트앤드루스는 언제부터 골프의 중심이 된 걸까. 대략 1800년대 중반부터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다. 당시에는 ‘도장 깨기’처럼 클럽 대표 선수끼리의 맞대결이 성행했다. 세인트앤드루스에는 평생 져본 적이 없는 ‘무적’의 앨런 로버트슨과 그의 수제자인 올드 톰 모리스가 버티고 있었다. 디오픈의 탄생 배경도 로버트슨이 죽은 후 과연 누가 최고의 골퍼인가를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

또 하나는 규칙이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에 기반을 두고 1754년 설립된 로열 앤드 에인션트 골프클럽은 현재 북미를 제외한 전 세계 골프 룰을 관장한다. 초기에는 아너러블 컴퍼니가 다른 클럽으로부터 룰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을 해줬다. 이때 로열 앤드 에인션트 골프클럽도 룰에 관한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변해줬다. 그러자 1800년대 후반 아너러블 컴퍼니는 룰에 관한 수정과 재정에 관한 권한을 로열 앤드 에인션트에 넘겨줬고, 그게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올드 코스 1번 홀 티잉 구역에 서서 처음 마주하는 건 잘 정돈된 공원 같은 넓디넓은 잔디밭이다. 페어웨이 폭이 족히 100m는 넘어 보인다.

티잉 구역 바로 뒤에 있는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이 로열 앤드 에인션트 골프클럽의 클럽하우스다. 클럽은 사적인 모임(프라이빗 클럽)이지만 코스는 시 소유다. 올드 코스를 포함한 7개의 코스(올드·캐슬·뉴·주빌레·이든·스트라스티룸·발고브 코스)가 모두 퍼블릭이다. ‘세인트앤드루스 링크스 트러스트’가 관리를 맡고 있다. 일요일에는 일반에게 개방돼 누구나 코스를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다.

1번 홀과 18번 홀의 페어웨이를 가로지르는 스윌컨 개울을 건너는 스윌컨 다리는 올드 코스의 상징이다. 골프의 전설들이 이 자그마한 다리를 건너면서 사실상의 우승 세리머니를 하거나 골프와 작별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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