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뤼 부르주아 엑셉시오넬 등급을 받은 샤토 캄봉 라 펠루즈의 배럴룸. 사진 샤토 캄봉 라 펠루즈
크뤼 부르주아 엑셉시오넬 등급을 받은 샤토 캄봉 라 펠루즈의 배럴룸. 사진 샤토 캄봉 라 펠루즈

“샤토 무통 로칠드입니다. 1등급이어서 꽤 비쌉니다만, 훌륭한 와인입니다.”

“샤토 탈보도 인기가 많습니다. 4등급이지만 맛은 좋습니다.”

이른바 ‘등급’이 매겨진 프랑스 보르도산 고급 와인은 와인숍에서도 따로 설치된 유리방이나 셀러(cellar·저장고)에 ‘모셔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등급이라는 게 과연 뭘까? 일반적으로 등급은 ‘1855보르도 와인 등급(이하 1855등급)’을 뜻한다. 이는 1855년에 우수한 샤토(Chateau·와이너리)를 등급별로 정리해 놓은 리스트다. 또 프랑스는 올해 2월 20일에는 ‘크뤼 부르주아(Cru Bourgeois)’라는 등급을 개편해 발표했다. 1855등급과 크뤼 부르주아의 차이는 뭘까?

와인 애호가에게도 이 두 가지 등급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슬기롭게 와인을 즐기는 현명한 소비자가 되려면 이 등급들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1855등급의 탄생

우선 1855등급부터 알아보자. 1855년 프랑스에서는 파리 국제박람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통치자는 나폴레옹 3세였다. 그는 프랑스 대표 상품인 와인을 반드시 전시하라고 명령했다. 보르도 와인 협회는 고민에 휩싸였다. 어떻게 해야 가장 효과적으로 와인을 홍보할 수 있을까?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네고시앙(negociant·와인 중개상)들을 불러 모아 와인에 등급을 매기는 것이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샤토가 직접 와인을 병에 담아 판매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네고시앙이 샤토로부터 배럴째로 와인을 사서 숙성시킨 후 병에 담아 유통했다. 따라서 샤토별 와인의 품질과 가격에 대해서는 네고시앙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네고시앙들이 모여 등급을 정하는 데는 2주가 채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보르도 와인 전체를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 보르도에서도 지롱드(Gironde)강 왼편에 있는 메독(Medoc) 지방의 샤토들만 검토해 1~5등급까지 순위를 매겼다.

사실 당시에는 누구도 이 등급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박람회에 온 사람들에게 나눠줄 전단에 들어갈 리스트 정도로만 여겼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등급이 와인의 가격을 결정하는 잣대가 돼버린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샤토들은 등급 갱신을 극렬히 반대했다. 등급이 오르는 샤토가 생기면 내려가는 곳이 있기 마련이고, 등급에 진입하는 샤토가 있으면 빠지는 곳도 생기기 때문이다. 등급 변경은 곧 매출 변동을 의미했다. 결국 1855년에 만들어진 등급은 165년이 지난 지금까지 거의 바뀌지 않았다. 1973년 무통 로칠드가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올라선 것이 유일한 변화였다.


1855등급에 대한 맹신은 금물

물론 이처럼 바뀌지 않는 등급에 대한 반발도 있었다. 한 와인 평론가는 ‘화석 같은 등급’이라며 맹비난하기도 했다. 그만큼 많은 문제점과 모순을 안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1855년에 와인을 만들던 사람들은 모두 고인이 됐다. 대를 이어 샤토를 운영하는 곳도 있지만, 생산자가 바뀌었는데 와인의 품질이 여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또 등급에 들지 못한 이웃 샤토를 등급을 받은 샤토가 흡수 합병했다고 가정해 보자. 비등급 샤토의 밭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하루아침에 등급 와인으로 바뀐다.

그리고 무엇보다 1855년 이후에 설립된 샤토는 아무리 좋은 와인을 만들어도 이 등급에 들어갈 재간이 없다. 역사가 100년을 훌쩍 넘겨도 말이다. 그럼에도 1855등급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맛을 보면 ‘역시 등급에 들 만한 와인이구나’ 싶게 품질이 좋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등급을 받은 샤토들이 그동안 갖은 노력으로 품질을 유지해온 결과다. 따라서 1855등급을 맹신할 필요는 없지만, 참고할 만한 기준임에는 틀림이 없다.


새로운 등급 크뤼 부르주아

아울러 크뤼 부르주아 등급이 첫선을 보인 것은 1932년이었다. 1855등급에 들지 못한 메독의 샤토들 가운데 우수한 곳 444곳이 선정됐다. 그러다 2003년 샤토들을 ‘크뤼 부르주아 엑셉시오넬(Exceptionnel)’ ‘크뤼 부르주아 쉬페리외르(Superieur)’ ‘크뤼 부르주아’로 3단계 차등을 둔 리스트가 발표됐다. 전자일수록 고품질을 보장하는 높은 등급이다.

하지만 평가의 불공정성 논란과 함께 소송이 끊이질 않자 결국 2007년 이 개편된 등급은 폐기됐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크뤼 부르주아 협회는 엑셉시오넬과 쉬페리외르를 없애고 크뤼 부르주아 단일 등급으로 유지했다. 매년 와인을 심사해 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올해 2월 20일 협회는 3단계 등급을 다시 내놓았다. 5년마다 재심사해 갱신한다는 조건이었다. 지난 10년간 중립적인 심사단 구성부터 객관적인 심사 기준까지 철저한 준비를 거친 결과였다.

협회 측이 밝힌 심사 기준을 살펴보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기준으로 와인의 품질을 꼽는다. 2008~2016년에 생산된 와인이 적어도 5회 이상 크뤼 부르주아로 선정됐거나 5개 빈티지를 블라인드 테이스팅해 합격점을 받은 샤토에만 등급받을 자격을 부여했다. 포도밭과 와이너리도 심사 기준에 포함됐는데, 이 부분은 심사단이 직접 샤토를 방문해 채점했다. 방문객 응대, 홍보, 유통, 가격 등 마케팅적인 요소도 기준에 포함됐다.


환경 친화적 와인은 높은 등급

주목할 만한 것은 환경 점수다. 프랑스는 농업에 ‘HVE(Haute Valeur Environmentale)’라는 환경 보호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데, 생태계 보전, 식물 보호, 비료 사용 제한, 수자원 관리 등 실천 정도에 따라 3단계로 등급이 나뉜다. 크뤼 부르주아로 선정되려면 샤토가 적어도 HVE2 등급은 받아야 하고, 엑셉시오넬이나 쉬페리외르가 되려면 가장 높은 HVE3 등급을 받아야 한다. 건강한 자연에서 생산된 우수한 와인만 크뤼 부르주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엄격한 기준을 토대로 크뤼 부르주아 협회는 엑셉시오넬 14개 샤토, 쉬페리외르 56개 샤토, 크뤼 부르주아 179개 샤토를 발표했다. 리스트를 살펴보면 1855등급에 들지 않은 샤토지만 이미 품질로 인정받은 곳들이 다수 포함됐다.

결론적으로 1855등급이든 크뤼 부르주아든 모두 맹신할 것은 못 된다. 등급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해서 품질이 나쁜 와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등급은 구매의 보조 수단일 뿐이다. 하지만 1855등급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가성비가 좋은 크뤼 부르주아 와인을 눈여겨볼 필요는 있다. 숨은 보석 같은 와인을 발굴할 기회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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