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어 스페인, 영국 오페라계에서 외면받는 플라시도 도밍고. 사진 가오리 스즈키
미국에 이어 스페인, 영국 오페라계에서 외면받는 플라시도 도밍고. 사진 가오리 스즈키

지난해 8월 AP통신은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79)가 1980년대 말부터 미국 오페라하우스에서 여성 아티스트를 상대로 성적으로 부적절한 언행을 반복했다는 9명의 피해자 진술을 게재했다.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호소한 성악가와 무용수 증언이 실렸고, 미국 클래식계는 거론된 것 자체만으로 도밍고를 퇴출했다. 도밍고가 2003년부터 캐스팅과 레퍼토리 선택의 전권을 행사한 LA 오페라는 도밍고를 총감독직에서 내쫓았다. 워싱턴 내셔널 오페라(WNO)는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에서 도밍고 이름을 지우기로 했다. 도밍고는 WNO에서 1996~2003년 예술감독을, 2003~2011년 총감독을 지냈다. 세계 최고의 오페라극장, 뉴욕 메트 오페라는 지난해 9월 예정된 도밍고 캐스팅을 취소했고 도밍고도 메트 무대 은퇴를 선언했다.

레슨 지도를 빙자해 자신의 집에 들르라는 요구는 영화계에서 하비 와인스타인이 저지른 행위와 동일하다. 와인스타인은 잠자리를 거부한 여성의 영화 출연을 배제하며 일자리를 끊었다. 미국 음악인 조합(AGMA)은 지난 2월 도밍고가 30년간 27명의 여성에 대해 부적절한 성추행을 했다고 발표했다. 도밍고는 AP통신의 보도 이후 “관계는 합의하에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하다가 AGMA의 조사 결과 발표 다음 날 “여성들에게 입힌 상처를 미안하게 여긴다” 정도로 입장을 바꿨다. 뉴욕타임스는 AGMA 조사 발표 전날 도밍고 측이 AGMA에 50만달러를 기부하려던 정황도 보도했다.

AGMA 발표를 명분으로 영국 로열 오페라는 오는 7월 ‘돈 카를로’ 캐스팅을 취소했고, 잘츠부르크 음악제는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도밍고의 조국인 스페인의 문화부도 마드리드 테아트로 레알 공연에서 도밍고 출연을 취소했다.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문화 축전에서 도밍고를 뺐고, 지난 1월 도쿄 공연을 마지막으로 도밍고는 일본 무대와 공식 작별했다. 일본 공연 주최 측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직후 위문을 와준 답례에 이미 매진된 공연을 취소하기 어려웠다는 후문이다.

거물급 성악가 중 도밍고 행태를 비난하는 여성 성악가는 드물다. 심지어 소프라노 소냐 욘체바, 니노 마차이제는 도밍고를 지지하고 있다. 1993년 도밍고 후원으로 시작된 콩쿠르인 오페랄리아 출신 입상자들도 도밍고 처신에 찬반을 표하기 어렵다. 듀오 공연이 예정된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이 지난 1월 일본 공연에서 하차하는 정도가 도의적인 항의 표시다. 도밍고와 오래 인연을 맺은 성악가라면 그동안 업계에 ‘잘 알려진 비밀’을 근거로 뒤늦게 그를 비난하기 곤란한 처지다.


뉴욕 메트 오페라에서 공연 중인 소냐 욘체바와 플라시도 도밍고. 사진 메트 오페라
뉴욕 메트 오페라에서 공연 중인 소냐 욘체바와 플라시도 도밍고. 사진 메트 오페라
매년 롤렉스 후원으로 도밍고가 주최하는 성악 콩쿠르 오페랄리아. 사진 오페랄리아
매년 롤렉스 후원으로 도밍고가 주최하는 성악 콩쿠르 오페랄리아. 사진 오페랄리아

인맥·비주얼·자본…클래식계 모럴 해저드

파바로티가 청신한 목소리를 바탕으로 전막을 석권한 반면, 도밍고 성공의 배경에는 늘 그를 빛낸 여성 파트너가 있었다. 첫 동료가 부인 마르타다. 소프라노 출신의 마르타는 1962년 부부의 연을 맺고 유럽, 미국 진출 때마다 최고의 조언자 역할을 했다. 바리톤과 테너의 중간, 리리코와 스핀토의 음영이 교차하는 남편의 고뇌를 이해했고 바그너 도전, 지휘자 전향, 바리톤 복귀에 용기를 북돋웠다. 파바로티, 카레라스와 달리 지휘를 겸업한 덕분에 도밍고는 캐스팅 권한을 쥔 극장 감독 자리에 오르기 수월했다.

클래식계는 초월적인 소리와 매끈한 외모를 갖춘 도밍고를 여성 관객의 성적 감흥을 자극하는 도구로 묵인했다. 도밍고가 청년 시절에 만난 조앤 서덜랜드, 레나타 테발디부터 1980년대 메이저 음반사가 맺어준 캐슬린 배틀, 플레밍을 상대로 도밍고는 미성과 함께 탄탄한 체구를 여러 기록과 영상물에 남겼다. 제피렐리 감독의 영화 ‘라 트라비아타’에선 테레사 스트라타스, ‘오텔로’에서 카치아 리치아렐리, ‘마농 레스코’에서 실비아 사스처럼 배우급 여성 성악가의 비주얼에 어울리는 남성 슈퍼스타는 오직 도밍고였다. 도밍고 투어에 등장한 크로스오버 뮤지션도 눈요기에 치중한 경우가 많았다. 쌓일 대로 쌓인 클래식계 모럴 해저드가 도밍고 미투 사태로 봇물 터지듯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

앞으로 미국 내 신뢰할 사법기관이 도밍고 사안을 판결하지 않으면, 여전히 ‘무죄 추정의 원칙’으로 도밍고 캐스팅을 유지하는 독일어권의 빈,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와 이탈리아 라 스칼라, 피렌체 5월 음악제는 사회적 지탄을 회피할 수 있다.

일부 유럽 극장이 도밍고를 고집하는 이유는 돈이 몰려서다. 가격을 불문하고 도밍고를 보기 위해 오페라하우스로 나오는 노인 관객이 오페라하우스를 먹여 살린다. ‘최후의 내한’으로 홍보한 2018년 도밍고 한국 공연 최고가는 55만원이었다. 2020년 기준 도밍고의 순자산은 2억3000만달러(약 2760억원)로 추산된다.

오는 6월과 7월 ‘라 트라비아타’의 상대역은 역대 오페랄리아 우승자들인 아이다 가리풀리나(2013)와 욘체바(2010)다. 2020년 ‘미투’로 흔들리는 도밍고를 돈과 인맥이 지탱한다.


▒ 한정호
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