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에게 최상의 ‘귀르가즘’을 선사하는 뮤지컬 배우 옥주현(40). 2000년대 초 국민요정 ‘핑클’에서 지금은 ‘아이다’부터 ‘레베카'까지 독보적인 뮤지컬 레이블을 선보이는 현재진행형의 신화다. 사진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관객에게 최상의 ‘귀르가즘’을 선사하는 뮤지컬 배우 옥주현(40). 2000년대 초 국민요정 ‘핑클’에서 지금은 ‘아이다’부터 ‘레베카'까지 독보적인 뮤지컬 레이블을 선보이는 현재진행형의 신화다. 사진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옥주현은 핑클 이후 라디오 DJ를 거쳐 2005년부터 뮤지컬 무대에 섰다. 코로나19 불황에도 현재 ‘광클릭 완판 신화’를 이어 가는 공연계 티켓 파워 1위의 히로인이다. 옥주현을 보면 항상 ‘드림걸스’의 제니퍼 허드슨이 떠오른다. 요정처럼 가녀린 소녀들 사이에서 글래머러스한 몸으로 목청껏 노래하던 자의식 강한 소녀. 아이러니지만, 옥주현은 걸그룹 이후 자신의 진가를 아는 진정한 백조로 거듭났다. 요가와 발레로 건강 미인이 되고, 압도적인 성량과 노력으로 믿고 보는 뮤지컬 톱스타가 되는 과정은 ‘아이돌의 성년식’을 보여주는 모델처럼 보인다.

18세에 데뷔한 요정이 어느새 마흔 살의 디바가 됐다. ‘아이다’ ‘엘리자벳’ ‘캣츠’ ‘스위니 토드’ 그리고 ‘옥댄버(옥주현의 댄버스 부인)’로 유명한 뮤지컬 ‘레베카’까지. 특히 옥주현이 무대에서 ‘레베카’라는 이름을 발성할 때마다, 그 매혹적인 유령이 산 자들의 마을을 덮치고 포효하는 것처럼 들렸다.

뮤지컬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으로 관객에게 최상의 ‘귀르가즘’을 선사하는 옥주현에게 만남을 청했다. 가수의 목소리가 공기 중을 떠다니는 무형의 음원이 아니라, 하나의 공간을 물리적으로 지배하는 주술의 형태로 다가온다는 것을 나는 옥주현의 뮤지컬 무대에서 깨달았다. 영화 ‘디 아더스’의 니콜 키드먼을 연상시키는 고딕적인 자세는 마른 그녀를 더욱더 길고 앙상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검은 드레스는 ‘여주인’ 레베카에 대한 상복으로 보였다. 어떤 질문을 받을까 설렌다는 말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뮤지컬 ‘레베카’에서 ‘댄버스 부인’으로 무대에 선 당신은 완전히 전기가 오른 것처럼 보였다.
“무대에 오르면 올림픽 경기장에 선 선수 같다. 내가 쓰는 목 근육은 정말 섬세하고 얇다. 다칠까 조심하면서도, 최고 수준까지 끌어서 쓴다. 히치콕이 만든 영화 ‘레베카’는 일부러 안 봤다. 오로지 원작 소설을 파고들었다. 댄버스의 습관, 움직임, 말투를 전부 내 스타일대로 디자인하고 싶었다.”

연기한다가 아니라 디자인한다는 표현이 특이하다.
“댄버스는 덩어리진 후덕한 몸이 아니라 마르고 곧은 몸이다. 탄수화물을 조절하고, 척추를 곧게 하기 위해서 발레를 시작했다. 유령 같고 창백하고 볼이 패고 꼿꼿한 여자가 무너질 때, 그 충격이 얼마나 배가 되겠나. 누군가 날 부를 때도 턱이 아니라 몸 전체가 움직이도록 습관을 들였다.”

발성의 디자인은 어떻게 하나? 당신의 노래는 마치 다른 마이크를 쓰는 것처럼 더 선명하게 들린다.
“영국 영어의 악센트를 한국어의 어조에 적용했다. 패티김 선생님의 음성 이미지를 응용해서 차갑고도 다크한 느낌을 살렸다랄까. 가창을 논할 때 사람들은 대개 진성·가성·두성·흉성처럼 발성으로만 얘기하는데, 나는 언어 그 자체가 갖는 이미지를 분석한다.”


“어떤 질문을 선물처럼 받게 될지 기대돼요”로 시작됐던 인터뷰는 “성장하려면 자기에게 질문하세요”로 끝이 났다. 사진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어떤 질문을 선물처럼 받게 될지 기대돼요”로 시작됐던 인터뷰는 “성장하려면 자기에게 질문하세요”로 끝이 났다. 사진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오랫동안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부딪히는 이미지를 관찰해왔다고 했다. “성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음색을 고급스럽게 낼 수도, 파삭하게도 낼 수도 있답니다. 그 질감을 알면 디테일이 풍부해지고, 소리에서도 4D처럼 향기가 나죠.” 옥주현이 노래할 때는 실제로 무대에 블랙 올리브나 진한 적포도주 향기가 났다.

혹시 음성학을 공부했나.
“배우 조여정과 그런 주제로 피곤할 정도로 깊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나는 이비인후과 의사와 대화하는 걸 정말 좋아한다. 귀와 코와 목과 입을 스트레칭한 후, 전체를 연결해서 쓰면 언어의 순환이 일어나서 소리가 쾌적해진다. ‘스위니 토드’의 작곡가 스티브 손드하임은 여러 명이 동시에 부르는 세레나데 곡을 많이 썼다. 그러면 소리가 섞여서 안 들리는데, 사람들이 묻는다. ‘어째서 네 소리만 정확히 들리니?’”

목소리를 크게 냈겠지.
“발성을 크게 하면 망한다. 한국어 발음은 마무리가 목구멍 뒤에서 떨어진다. 소리가 앞으로 나가기 힘들다. 영어와 이탈리아어는 천장이 높은 카페에서 수다 떨면 소리가 둥글게 울려 퍼지는데, 한국어는 잘 안 들리니 소리를 크게 내서 시끄럽다. 언어의 구조를 파악하고 속도까지 조절하면, 소리가 정확히 앞에 떨어지도록 발음할 수 있다. 핀 마이크 앞으로 딱 떨어지도록.”

어떻게 실천했나.
“20대 때 나는 힘으로만 소리를 지르다 보니 성대 결절이 왔다. (스마트폰에서 사진을 찾아 보여주며) 성대가 이렇게 지퍼처럼 생겼다. 여기가 저음, 중음, 고음을 담당한다. 이 부분의 식도가 부으면 소리가 탁해진다. 그래서 공연 기간에는 매운 음식도 못 먹는다. 음역이 체인지되는 순간을 ‘빠샤’라고 하는데, 이때 힘을 많이 쓰면 결절이 온다. 나는 이걸 돌려서 수수깡처럼 쓴다. 우리는 영어나 이탈리아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노래하지 않나. 그래서 한국어로 빠샤를 하는 순간, 높낮이가 다른 음역에서 화성과 발음이 선명해지는 법을 찾았다. 음성학의 우주는 정말 광대하다.”

처음 질문은 성대 결절이었으나, 결국엔 코와 귀와 악관절의 해부도까지 나왔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발레는 어떻게 해요? 다이어트는 어떻게 해요?’ 이렇게 묻는 사람의 지속성을 나는 못 믿는다. 먼저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질문하고, 그다음엔 ‘뭘 공부하면 되는지?’를 물어야 한다. 적성에 맞으면 오래 하고 싶고 오래 하려면 탐구하게 된다. 계속한다는 건 그냥 숨 쉬듯이 놓지 않고 하는 거다. 그런 사람이 보여주는 우주는 깊이가 다르다. 오랜 시간을 들였기 때문에 찾은 우주다.”

어떤 질문을 좋아하나.
“이런 질문을 좋아한다. ‘이걸 잘하려고 어떤 습관부터 들였어요?’ 생활에서 무엇을 습관으로 했느냐가 핵심이다. 나는 운전할 때 간판을 읽으면서 발음 연습을 한다. 막히는 구간에선 막히는 구강 면적을 계속 판다. 그렇게 한 개, 두 개 발음을 마스터했다. 내가 후배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뭔 줄 아나? ‘밥 먹듯이 연습하고, 숨 쉬듯이 연구해봐’다.”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는데.
“서른 살까지 엄마와 같이 살고 같이 잤다. 엄마는 과일 껍질도 버리지 않고, 밤 껍질도 꿀에 개어 얼굴에 바르시는 분이다. 겨울엔 난방도 안 하고 잘 땐 발코니 창을 열어둔다. 그게 몸에 좋다고. 핑클 활동할 때는 쓴소리도 많이 하셨다. ‘너 라운드 티 입지 마. 목 짧아. 니트 입지 마, 등에 살 많잖니.’  뮤지컬 ‘아이다’로 데뷔할 때는 더 냉정하셨다. ‘너 대사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그런데 그런 객관적인 눈이 큰 도움이 됐다.”

근본 원리를 파고드는 건 본인 성격인가.
“그렇다. 오랜만에 만나면 사람들이 ‘그새 키가 또 컸어!’ 하고 놀라는데, 속으로 ‘당신 키가 준 거예요’라고 그런다. 계속 커 보이는 건 발레를 해서다. 발레를 하면 대칭이 잡히고 근육의 길이가 길어진다. 그것도 질문을 통해 알게 됐다. 20대 때 어느 날 어른들을 보니 겨드랑이가 짧아진 느낌이었다. ‘왜 근육이 쪼그라들지?’ 짧아진 근육을 늘리는 운동이 발레다. 나이 들면 머리에서 가장 먼 기관부터 퇴화한다. 그래서 나는 발끝과 아치를 섬세하게 깨우는 작업을 많이 한다. 그거 아는가? 치매 예방에는 한 발로 서서 중심 잡기가 좋다. 대칭은 기억력을 자극한다. 기초 학문은 파면 팔수록 보물 같은 지혜를 준다.”

너무 긴장해서 무대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적은 없나.
“1막이 끝나면 20분간의 인터미션이 있다. 화장실을 다녀온 후 복근 운동 100개를 하고 2막에서 부를 ‘레베카’를 한 번 불러본다. ‘선배님, 시간 됐습니다’라는 스태프의 안내로 무대에 오를 땐, 공포로 거의 미치기 직전이 된다. 관객을 최고로 만족시켜드리고 싶어서. 그래서 그 순간, 이걸 기억한다. ‘옥주현! 발레부터 식단까지, 생활의 모든 루틴을 네가 잘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만들어 왔잖아. 이 이상 어떻게 더 해?’ 그러면 올림픽 같은 그 순간을 즐기게 된다. 공기의 밀도가 너무 높을 땐 이렇게 외친다. ‘네가 이걸 빼먹었니? 저걸 놓쳤니? 네가 다져놓은 걸 기억해.’ 그렇게 믿음의 벨트를 매고 객석으로 몸을 던진다. 습관의 시간을 믿고 뛰어드는 거다.”

핑클 멤버는 어떤 사람인가.
“자기 색이 강하고 귀여운 사람들이다. 다듬어지지 않았는데 그게 매력적이다. 잘 가꿔진 온실 안의 화초가 아니라, 들판에 핀 민들레 같았다. 난 핑클의 모든 걸 다 사랑했다. 사랑이 넘쳐서 곁을 주는 친구들에겐 뭐든 다 해주고 싶다.”

아이돌에서 처음 뮤지컬로 왔을 땐, 뮤지컬 팬들의 비난과 의심이 자기를 키웠다고 했다. 혹시 승부욕이 발동했었나.
“아니다. 승부욕은 아니다. 정말 이 일을 즐기고 싶었다. 관객도 나도 즐기려면 내가 잘해야 했다. 결국은 내 즐거운 고민이 관객도 즐기도록 만든 셈이다.”

특별히 뮤지컬에서 노래를 잘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오늘 한 노래를 내일 이 시간에도 똑같은 퀄리티로 부른다는 거다. 어제보다 피곤해도 안 되고 목을 잘못 쓰면 대참사가 일어난다. 올림픽 장기전 같은 거다. 그래서 난 공연할 때 몸의 상태가 가장 좋다.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나면 다시 한번 더 무대에 설 수 있을 것 같다(웃음).”

성장하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조언을 부탁한다.
“남한테 노하우를 묻기에 앞서, 자기가 뭘 하면 즐거운지를 집요하게 물어야 한다. 자기 즐거움을 찾아서 집중하면 예상치 못한 길이 자꾸 나타난다. 그렇게 지치지 않고 계속하는 것의 힘을, 나는 믿는다. 즐거워야 계속하고, 즐겁게 계속하려면 잘해야 한다. 그 과정을 이어주는 게 또 질문이다. 어느 날 빛이 비칠 때, 결과물의 밑동에서 내가 발견한 것도 어마어마한 분량의 물음표였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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