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 트렌드 분석가이자 경영 전략 컨설턴트로 ‘언컨택트’ 사회를 심도 깊게 진단했다. 사진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 트렌드 분석가이자 경영 전략 컨설턴트로 ‘언컨택트’ 사회를 심도 깊게 진단했다. 사진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2020년은 과잉 컨택트(contact)를 지나 적정 컨택트로 가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Uncontact(언컨택트)’의 저자 김용섭에게 만남을 청했다. 김용섭은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자 트렌드 분석가다. 삼성, 현대, 롯데 등 여러 대기업과 정부 기관에 자문을 하는 경영 컨설턴트이며 2013년부터 매년 통찰력 깊은 ‘라이프 트렌드’ 시리즈를 발행하고 있다.

비대면 사회의 변화를 깊이 있게 짚어낸 그의 책 ‘언컨택트’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갑작스럽게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을 실험 중인 한국 사회에 시간에 맞춰 정확하게 도착했다. ‘언컨택트’는 그의 전작인 ‘2020 라이프 트렌드: 느슨한 연대’에서 이미 예고된 주제였기 때문이다.

김용섭을 만났다. 오랜 세월 우직하고 깊게 트렌드의 우물을 파온 전문 연구자답게 어떤 질문의 두레박을 내려도 찰랑이는 정보가 흘러나왔다. 그는 접촉은 줄이고 접속은 늘리는 ‘언컨택트’는 “연결될 타인을 좀 더 세심하게 선별하겠다는 결정”이라며 “언컨택트가 가속화할수록 수평성, 투명성이 높아져 실력자와 밀도 높은 콘텐츠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다.


언컨택트를 어떻게 해석하나.
“줄여서 ‘언택트’라고 썼는데, 정확한 표현은 ‘넌컨택트(noncontact)’다. 내가 쓴 ‘언컨택트(Uncontact)’는 ‘접촉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접촉하는 방법을 바꾼다’라고 해석하는 게 맞다. 더 많은 연결을 위한 새로운 시대의 진화 코드다.”

‘빨리빨리’와 ‘끈끈함’이 이종교배된 한국 사회에서 언컨택트의 변화가 놀랍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사회가 티핑포인트를 맞았다.
“언컨택트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는 건 다들 알고 있었다. 다만 준비를 못 하다가 코로나19 때문에 갑자기 ‘비대면 사회’에 직면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한다. 특히 과거를 살고 싶어 하는 힘 있는 사람들은 최후까지 익숙한 걸 안 놓고 싶어한다. 지난 20년간 경영자 신년사가 초지일관 혁신, 변화, 위기였다. 가끔 소통과 수평이 양념처럼 들어갔다. 윗사람들 생각은 한결같다. ‘밑에서부터 바뀌어야지.’ ‘윗사람에게 잘해야 소통이지.’ 그런데 코로나19로 ‘언컨택트’가 실행되면서 순식간에 위계가 걷혔다. 원격 근무하면서 얼굴이 안 보이자 오로지 ‘일’만 보게 된다. 만나면 직함, 나이 때문에 주눅 들지만, 화면에선 20명 얼굴이 균등 분할이다. 비로소 수평화가 실현된 거다.”

반강제적 비대면이었는데 그 쇼크가 부정적이지 않아서 놀랐다.
“앨빈 토플러가 오래전에 주장했던 재택근무(일명 ‘전자오두막’)를 유럽과 미국은 받아들였는데, 한국은 유독 더뎠다. 위계 문화가 강해서였다. 요즘엔 평생직장이 사라지면서 ‘후배가 일 잘하면’ 선배들이 불안해한다. 생존의 최우선 조건이 ‘능력’이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1981~96년 출생)는 비합리적인 선배들에게 저항한다. 정보기술(IT)과 밀레니얼의 요구로 조직문화 수평화가 목전에 와있었는데 코로나19가 ‘언컨택트’로 그 불을 지핀 셈이다.”

하지만 원격 근무도 코로나19 이후 원상 복귀를 전제로 하고 있다. 여전히 관리자들은 통제와 감시를 위해서 ‘출퇴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더는 사람을 직접 보고 감시할 필요가 없다. 과거엔 그게 맞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사무실 공간은 1904년, 미국의 기계공학자 프레드릭 테일러의 ‘테일러리즘’을 기초로 완성한 것이다. 효율적 감시를 위해 오픈된 공간에 빼곡히 책상을 넣고 상사가 고개를 들면 다 볼 수 있도록 했다. 1980년대까지 그 구조였다. 1990년대에 PC가 사무실에 들어오면서 파티션이 쳐지고 독립공간이 생겼다. 이젠 그것도 필요 없다. 내가 한 일이 다 데이터로 남지 않나. 신기한 게, 안 보고 일하면 효율이 더 높다.”

출퇴근이 점점 사라질까.
“조직문화는 끝까지 기존의 전통을 유지하다가 저항 세력이 더는 저항할 빌미가 없을 때 확 바뀐다.”

누가 저항 세력인가.
“경영자는 모든 플레이어가 베스트를 다하는 상태를 좋아한다. 베스트를 다하지 않고 버티는 그룹은 중간층이다. 머릿수에 비해 업무 기여도는 낮으며 월급은 많이 가져가는 사람들이다. 컨설팅을 하다 보면 원격근무를 원하는 쪽은 경영자들이다. 수평화가 진행되면 근무량이 투명하게 보인다. 젊은이가 원하는 조직은 하나다. 자기 에너지를 다 쏟아부으면, 클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주는 조직. LG가 34세 여성을 상무로 승진시킨 건 그래서 고무적이다. 연고 없어도 일 잘하면 승진한다는 메시지다. 그런 환경에서는 다 베스트를 한다. 20~30대는 미래가 있어서, 40~50대는 밀려날까 봐.”

세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군.
“어쩔 수 없다. 나이로 우려먹는 건 연차뿐이다. ‘언컨택트’가 퍼뜨린 수평화가 본격적으로 ‘연차의 성벽’을 깨고 있다. 비대면이 깨는 또 하나의 악습이 있다. 기성세대의 ‘짬짜미’ 문화다. 만나면 부정, 청탁, 편먹기가 쉽다. 안 만나면 못한다.”

거칠게 이분화하자면 기성세대는 못 만나서 불편하고, 젊은 세대는 안 만나서 좋다?
“만나서 이득 본 사람들은 한국식 인맥 쌓기에 능한 분이다. 아는 사람끼리 술 마시고 밀어주는 문화는 비겁한 문화다. 공정 사회에 어긋난다. 정이라고 우겨도 글로벌 스탠더드와 안 맞는다. 젊은 세대는 연장자 비위 안 맞추고 막말 안 들어도 되니, ‘안 만나는 게’ 좋다. 그동안 ‘성희롱’ ‘인격 비하’를 비롯해서 막말하던 사람이 얼마나 많았나. 그들이 사악한 사람이었나? 아니다. 사회가 그걸 용인했다. 지금은 착해졌나? 룰이 바뀐 거다. 청년들은 어디서든 스마트폰 녹음기를 켠다. 근거가 남아서 안 한다는 건, 나쁜 짓인 줄 안다는 거다. ‘비대면 접촉’이 얼마나 편하면 다들 페북, 인스타에서 놀지 않나. 혼술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노는 건 그동안 만났을 때 불편함이 계속 있었다는 거다. 비대면 문화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한국 사회는 한 살 많아도 왕 노릇하려고 한다. 나이 어리면, 여자면, 못생기면, 피부색이 다르면 함부로 한다. 반발하면 ‘관심’이라고 한다. 나쁘다는 걸 알면 바꿔야 한다.”

한 사회의 욕망이 진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비대면’이라는 방향을 만들었다고 했다. 방향은 정해졌고 다만 속도의 문제였다고.


“변화를 받아들이세요. 기업이든 사람이든 먼저 대비하는 자가 열매를 땁니다.” 사진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변화를 받아들이세요. 기업이든 사람이든 먼저 대비하는 자가 열매를 땁니다.” 사진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안 보고 싶으면 안 본다’는 ‘언컨택트’의 간편 설정이 다음 세대의 상호작용 능력을 저하시키진 않을까.
“대면은 친밀하고 소셜은 친밀하지 않은가? 아니다. 처음부터 소셜로 만나 마음을 나눈 사람은 오프라인 친구보다 정서적으로 더 친밀하다. 옛날 환경 의제로 지금 환경을 해석하면 안 된다. ‘언컨택트’는 오히려 상호 존중, 수평, 예의에 기반한 ‘만남’을 촉구한다. 상호작용에서 예의는 기본이고, 예의의 출발은 인권이잖나. 예의의 출발을 나이나 권력으로 두고 ‘공경’을 강제하는 분들이 오히려 상호작용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경제 환경은 어떻게 바뀔까.
“위기 때 기업이 어디에 돈을 쓰는가를 보면 일자리의 방향을 알 수 있다. 9·11 테러 이후에는 금융사들이 백업 시스템을 만드는 데 돈을 썼다. 2008년 외환 위기 때는 IT에 돈을 썼다. 지금은 리스크를 줄이는 데 돈을 쓴다. 당장 생산공장을 중국에서 다른 나라로 분산시키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사람이 가장 큰 리스크라는 걸 알게 됐다. 감염자가 생기면 공장을 멈춰야 하니, 자동화 속도가 더 가속화한다. 기업은 이미 RPA(로봇 프로세스 자동화), 생산, 물류 자동화에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에어비앤비의 대규모 감원, 항공사 무급 휴가 등이 이어지고 있다. 관광 산업의 전망은 여전히 어두운가.
“여행 산업은 당분간 살아나기 힘들다. 그동안 관광 산업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 건 가격이 싸져서다. 종사자의 헌신, 환경의 희생을 저당 잡아서.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각종 검사로 국경의 장벽은 더 높아졌다. 비행기가 배출하는 탄소 문제도 점점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코로나19 이전에 조사했는데, 많은 승객이 돈 더 내고라도 바이오 연료로 전환한 비행기를 타겠다고 했다. 좌석 간격 넓히고, 바이오 연료 사용하면 당장 항공권값이 크게 오른다. 단체 깃발 드는 저가 여행 시장은 죽고, 부자 여행만 남는다. 싸게 누리면서 희생하고 파괴했던 것들이 제자리를 찾게 되겠지. 기후 변화가 그렇게 뼈아픈 거다. 코로나19가 편리함을 걷어내고 함께, 오래가는 과제를 내준 셈이다.”

코로나19 시기에 물류와 배송 시장도 폭증했는데, 부작용은 없나.
“확실히 ‘미안함’이라는 감정이 줄었다. 얼굴 안 봐도 새벽에 문 앞에 물건이 와있으니까. 배송 시장이 커지고 택배 노동자가 많아지면 비용은 상승한다. 그게 정상이다. 뼈 빠지게 고생한다고 안쓰러워하면서 임금 인상 얘긴 쏙 빼면 그게 무례다. 전 세계에서 한국이 택배비가 가장 싸다. 곧 적정 가격으로 상승할 것으로 본다.”

공연이나 강연 등 콘텐츠 시장의 변화는 어떤가.
“얼마 전 SM엔터테인먼트가 온라인으로 슈퍼M ‘Beyond LIVE’ 콘서트를 했다. 3만원 티켓값을 치르고 7만5000명의 유료 관객이 등판했다. 관객을 화면에 배경으로 띄우고 인터랙티브를 구현했다. 우리가 과거의 경험치에 갇혀 있는 동안 경이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공연 라이브는 실황으로 팔고 이후 녹화 콘텐츠도 유료로 팔 수 있다. 대학과 교회는 온라인 강연으로 ‘수평화’가 더 진행됐다. 오프라인에선 높은 단상에서 이야기하면 10년 전 노트로 강의해도 대충 참아줬지만, 이젠 아니다. 등록금 돌려달라고 한다. 온라인에선 숨을 틈이 없다. 실력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쉴 새 없이 메시지를 줘야 하니 밀도 높은 콘텐츠만 살아남는다. 결국 실력 있는 자가 이긴다.”

혼란과 위기 상황에서 더 성장한 기업도 있지 않나.
“아마존, 페이스북은 다 매출이 올랐다. IT 업계가 유리한 건 당연하지만, 산업 전반에 IT화가 더 가속화했다. 특히 캐나다의 쇼핑몰 구축 서비스 ‘쇼피파이’가 시가 총액 최고치를 경신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신생 기업이 순식간에 삼성전자에 이어 2위로 성장한 거다. 지금은 플랫폼 기업의 황금기다. 동네 쌀가게 아저씨도 맘만 먹으면 온라인으로 전국에 쌀을 팔 수 있는 시대다.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춰 먼저 변화한 기업이 열매를 땄다. 던킨도너츠는 던킨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커피 브랜드가 됐다. 도넛이 안 팔리니까 재빠르게 몸을 바꿨다. 지난해부터 스마트 오더로 드라이브 스루를 했는데 패스트푸드 업계에서는 가장 먼저 준비해서 이미 1년치 고객 데이터가 쌓였다. 그 차이가 굉장히 크다. 핵심은 하나다. 기업이든 사람이든 먼저 대비하는 자가 열매를 딴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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