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부가티 컬렉션 중 하나인 피터 W 뮬린의 부가티 컬렉션. 사진 황욱익
세계 3대 부가티 컬렉션 중 하나인 피터 W 뮬린의 부가티 컬렉션. 사진 황욱익

광활한 대지를 자랑하는 미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기상천외한 것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뮬린 오토모티브 뮤지엄’도 그런 곳이다. 각양각색의 자동차가 굴러다니고 없는 모델이 없다는 미국이지만 이상하게도 ‘부가티’를 제외한 프랑스 차에 대한 인지도는 생각보다 약하다. 르노는 아예 미국에서 볼 수 없고 푸조는 사업 실패 후 철수했고 시트로엥도 철수한 지 오래다. 사업가이자 박애주의자, 자선 사업가인 피터 W 뮬린이 설립한 뮬린 오토모티브 뮤지엄은 미국에서 유일하게 프랑스 차 수집품을 볼 수 있는 곳이다.

LA 공항에서 차로 1시간 30분. 북쪽으로 올라가면 옥스나드라는 작은 동네가 나온다. 인적도 드물고 주변에 관광지도 없는 이곳을 찾은 이유는 개인이 운영하는 자동차 박물관으로는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뮬린 오토모티브 뮤지엄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원래 이곳에는 챈들러 빈티지 뮤지엄이 있었다. 설립자인 오티스 챈들러가 수집한 빈티지 자동차와 바이크 등을 전시했던 챈들러 빈티지 뮤지엄은 1987년 문을 열었으나 오티스 챈들러가 사망하고서 경영난을 겪으며 2006년 경매에 나왔다. 당시 경매 금액은 오티스 챈들러의 자동차 등 모든 컬렉션을 포함해 총 3600만달러(약 430억원) 이상을 기록하며 단일 경매 거래 금액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것을 사들인 사람은 미국 최대 부가티 컬렉션을 소유한 사업가 피터 W 뮬린으로 이후 리모델링을 거쳐 2010년 뮬린 오토모티브 뮤지엄으로 개관했다.

피터 뮬린이 소유한 부가티 컬렉션은 프랑스 쉬럼프 컬렉션, 독일 진스하임 부가티 컬렉션과 함께 세계 3대 부가티 컬렉션 중 하나로 꼽힌다. 나머지 두 개가 각각 프랑스 국립 자동차 박물관과 진스하임 박물관 재단 소유인 데 반해 피터 뮬린의 수집품은 순수하게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부가티는 클래식카 분야에서 가치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피터 뮬린의 수집품 중에 가장 가치가 높은 차는 400억원 이상의 가치를 가진 하늘색 부가티 ‘타입 57SC 애틀랜틱 쿠페’다. 패션 사업가 랠프 로런이 소유한 차와 같은 모델로 전 세계 자동차 수집가들의 꿈으로 불리기도 한다.

타입 57SC 애틀랜틱 쿠페는 4대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공개된 모델은 피터 뮬린 소유의 하늘색, 랠프 로런 소유의 검은색 두 대뿐이다. 이 차는 한때 S 그룹의 총수가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진 부가티 ‘타입 41 르 와이얄’과 함께 부가티 모델 중에 가장 희소가치가 높다. 부가티의 설립자 에토레 부가티의 아들 장 부가티가 디자인을 담당한 타입 57SC 애틀랜틱 쿠페는 펜더와 차체 중앙을 리벳이 달린 플렌지로 마감했는데, 항공 공학에 대한 경의와 금속 구조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뮬린 오토모티브 뮤지엄은 부가티 외에도 미국에서 유일하게 시트로엥 컬렉션을 소유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미국에서 푸조나 시트로엥의 인지도가 생각보다 높은 편은 아니지만, 피터 뮬린이 소유한 컬렉션은 50여 대가 넘는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기고에 보다 자세하게 소개할 예정이다.


전 세계에서 4대만 남아 있다고 알려진 부가티 ‘타입 57SC 애틀랜틱 쿠페’. 현재 가치는 4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사진 황욱익
전 세계에서 4대만 남아 있다고 알려진 부가티 ‘타입 57SC 애틀랜틱 쿠페’. 현재 가치는 4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사진 황욱익
호수에서 인양한 부가티의 ‘타입 22 브레시아 로드스터’는 원형 그대로 전시 중이다. 사진 황욱익
호수에서 인양한 부가티의 ‘타입 22 브레시아 로드스터’는 원형 그대로 전시 중이다. 사진 황욱익

호수에서 건진 ‘타입 22 브레시아’

뮬린의 소장품 중에는 매우 특별한 사연을 가진 자동차가 있다. 1925년에 제작된 부가티 ‘타입 22 브레시아 로드스터’다. 타입 22는 현재 온전하게 남아있는 차가 거의 없으며, 값어치를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극소량 제작된 차다. 브레시아 로드스터 버전의 생산 대수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당시 자동차 산업을 생각했을 때 극소량만 주문 제작했을 가능성이 크다. 1910년에 처음 등장한 타입 13을 시작으로 타입 15, 17, 22, 23을 통틀어도 1920년까지 전체 생산 대수는 435대 정도에 불과하다.

뮬린의 타입 22는 복잡한 사연이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193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차는 프랑스 레이서인 르네 드레퓌스의 소유였다. 르네는 1934년 파리에서 스위스 출신의 도박사 아달베르트 도베를 만나게 되는데 그와 내기에서 진 후 이 차를 도베에게 넘긴다.

도베는 이 차를 가지고 스위스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소유주가 바뀐 이 차에 부과된 세금을 낼 돈이 없어서 스위스와 이탈리아 국경에 있는 마조레 호수 근처 아스코나 차고에 차를 그대로 방치한다. 몇 년 후 스위스 정부는 법에 따라 이 차를 폐기해야 했지만, 언젠가 미납 세금에 대한 회수 가능성이 있어 체인에 매달아 마조레 호수에 밀어 넣기로 결정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차에 대한 기억도 점점 희미해지고 제2차 세계대전도 끝났다. 그동안 묶어 놨던 체인도 끊어져 부가티는 수심 53m의 호수 바닥에 처박혀 버린다.

1967년 8월 지역 다이버에 의해 이 차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다. 무려 30년이 넘는 시간을 호수 바닥에서 보낸 부가티는 다이버들의 관심을 끌 만했다. 아마추어 잠수부들은 호수 바닥에 있는 신비로운 부가티를 보기 위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이 차를 인양하려는 시도도 몇 번 있었고 이 과정에서 인명사고가 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9년 7월 12일 무려 75년이나 호수 바닥에 있던 부가티 타입 22 브레시아 로드스터는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호수 밖으로 나온다. 차체는 절반 이상이 부식되고 형체만 간신히 남아 있었지만, 타이어의 공기는 그대로였다고 한다.

이 차는 2010년 세계적인 클래식카 거래소인 본햄스 경매에 등장했고, 26만5500유로(약 3억7000만원)에 낙찰됐다. 낙찰자는 뮬린 오토모티브 뮤지엄. 뮬린 측은 이 차를 복원하지 않고 더는 산화되지 않게 처리하고 나서 일반에 공개했다. 뮬린의 부가티 타입 22 브레시아 로드스터는 고고학 유물처럼 발견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황욱익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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