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왼쪽·팀 로빈스)와 레드(모건 프리먼)는 인간 이하의 취급이 횡행하는 쇼생크 교도소에서 깊은 우정을 나눈다. 사진 IMDB
앤디(왼쪽·팀 로빈스)와 레드(모건 프리먼)는 인간 이하의 취급이 횡행하는 쇼생크 교도소에서 깊은 우정을 나눈다. 사진 IMDB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 속으로 내던져질 때가 있다. 너무 지쳤으니까, 돈이 모자라니까, 도와줄 사람도 없고 너무 상처 입었으니까, 세상이 나를 내팽개쳤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하고 스스로 항복할 때 말이다.

그런데 더 어둡고 더 낮은 곳에서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할 일을 찾아 일어서는 사람들이 있다.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의지를 꺾지 않는 사람들. 잠깐은 좌절하지만, 끝까지 절망하지는 않는 사람들.

은행 부지점장이었던 앤디는 바람난 아내와 그녀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배신감에 몸을 떨며 술을 마시고 총까지 준비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돌아선 그였다. 하지만 아내와 남자는 죽었고 결백을 증명할 길은 없었다. 그 결과 앤디는 악명 높은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다. 홀딱 벗겨져 짐승처럼 취급받는 곳, 이름 대신 번호로만 불리는 곳, 인간인 것을 잊어야 견뎌낼 수 있는 이승의 지옥.

변호사 잘못 만나 억울하게 끌려왔다며 남 탓하는 죄수들 속에서 앤디는 핑계 대지 않고 솔직히 유죄를 인정하는 레드를 만난다. 교도소 밖에서 물품을 몰래 들여와 수감자에게 파는 일을 하며 20년째 형을 살고 있던 그는 최근에 가석방이 거부된 터라 희망의 덧없음을 곱씹는 중이었다. 그는 고생해본 적 없을 것으로 보이는 앤디가 쇼생크를 버텨내기 힘들 거라 예상한다.

앤디는 포기하지 않는다. 앤디 듀프레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존엄한 인간으로 존재하길 단념하지 않는다. 고통을 뼛속 깊이 묻고, 분노의 감정에 빠져 익사하지 않는다. 집요하게 괴롭히는 악당들의 몹쓸 짓을 막아내진 못해도 늘 저항하며 폭력에 길들지 않는다.

오히려 앤디는 은행 간부까지 오를 수 있었던 능력을 발휘해 간수장에게 상속세를 내지 않을 방법을 알려준다. 쇼생크 교도관들은 물론 소문 듣고 찾아온 이웃 교도소 간수들까지 감면받을 수 있도록 세금 신고 업무를 대행해준다. 약삭빠른 교도소장은 재활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명목하에 들어오는 막대한 뒷돈을 세탁해서 부를 축적하는 데 앤디의 재능을 이용한다.

앤디가 그 대가로 얻어낸 건 레드와 동료들이 마실 시원한 맥주 몇 병, 2주간의 독방을 감수하고 쇼생크에 울려 퍼지게 했던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한 곡 그리고 기금받아 새 책을 들여오고 도서관을 확장하고 수감자들이 검정고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교육의 장을 마련한 것이었다.

앤디가 없으면 불편한 건 교도관들이었으므로, 누구도 더는 그를 괴롭히지 못했다. 그렇게 얻은 작은 평화 속에서 앤디가 자신을 위해 한 일이라곤 레드가 구해준 여배우들의 대형 브로마이드가 붙어 있는 자신의 감방에서 조그만 망치로 돌을 조각하는 것.  

척박한 교도소 환경을 조금씩 살 만한 곳으로 바꿔가며 보낸 세월이 어느덧 19년째 되던 해, 앤디는 아내를 살해한 진범을 찾아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비리를 모두 알고 있는 데다 부의 축적 수단이 된 앤디를 소장이 놓아줄 리 없다. 자유를 원했던 앤디에게 주어진 것은 두 달간의 끔찍한 독방 생활. 앤디는 때가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순종적인 소장의 노예로 다시 돌아온 듯 보이던 앤디는 고해성사하듯 레드에게 자신의 죄책감을 털어놓는다. 방아쇠를 당기진 않았지만 아내를 죽게 한 건 자신이었다고, 사랑했지만 방법을 몰라 외롭게 했다고. 그러나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는 충분히 치렀으므로 이제 푸른 바다와 작은 낚싯배를 꿈꾼다 해도 죄가 되진 않을 것 같다고 앤디는 말한다.

“혹시 세상에 나오게 된다면 내가 말했던 떡갈나무를 꼭 찾아가 봐요.” 유언 같은 말도 남긴다. 그리고 다음 날, 앤디는 감쪽같이 쇼생크에서 사라진다.

그는 한순간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무죄가 증명되면 풀려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사랑하는 아내를 죽음으로 내몬 죗값을 성실히 치르면 세상으로 돌아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 이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스스로 족쇄를 풀어도 좋다고 판단한 그는 오랫동안 계획하고 준비했던 탈옥에 성공한 것이다. 교도소장이 자신을 시켜 모은 돈은 지난 20년간 무보수로 일했던 데 대한 은퇴자금으로 알뜰히 챙겼다. 비리를 증명할 자료를 신문사에 보내 교도소장의 만행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앤디가 탈옥하고 몇 년 후, 수감 생활 40년 만에 레드는 가석방을 허락받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교도소 생활에 길들었음을 인정한다. 먹는 것도, 화장실에 가는 것도 교도관의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했는데, 이 엄청난 자유를 어떻게 감당하란 말인가. 자살을 생각하던 레드는 떠나기 전 앤디가 말한 나무를 떠올린다. 실망하는 것이 두려워 애초에 꿈꾸길 거부했던 레드는 그의 목소리를 따라 처음으로 희망을 찾아 나선다. 앤디가 꿈꾸던 푸른 바다를 볼 수 있기를,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반갑게 악수할 수 있기를, 이번에야말로 무한한 자유를 두 팔 벌려 끌어안을 수 있기를.


바쁘게 살든가, 바쁘게 죽든가

‘쇼생크 탈출’은 좀비 세상에서 끝까지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미국의 TV 드라마 ‘워킹데드’를 만든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 1994년에 발표한 영화다. 개봉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좋은 작품은 늦게라도 세상의 인정을 받는 법.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큼 스토리가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카메라 기법, 조명 기술, 소품 하나, 화면 하나도 더하거나 뺄 것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뛰어난 작품이다.

앤디 역의 팀 로빈스와 영화 내내 내레이션까지 이끈 레드 역의 모건 프리먼도 최상의 캐스팅이었다. 인생을 짧다고도 하고 화살처럼 빠르다고도 한다. 하지만 인생은 실패를 받아들이고 불운을 만회해서 재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긴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 꼭대기에서 살인 누명을 쓰고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졌지만 20년 뒤 두 번째 무대를 만들어낸 앤디의 인생처럼, 무거운 죄를 씻는 데 40년을 보내고서야 비로소 자유와 희망을 찾아 웃으며 떠날 수 있었던 레드의 삶처럼. 여기가 끝인가 싶을 때 숨 쉬는 순간조차 영원처럼 길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실수를 인정하고 원인을 찾아 불행을 뒤집어 보라고, 시간이 우리를 배려해서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건 아닐까? 그런 시간의 블랙홀에 빠질 때마다 불평하는 것 말고 무엇을 했지? 희망은 멀고 절망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앤디가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희망은 좋은 거예요. 그러니 선택해요. 바쁘게 살든가, 바쁘게 죽든가.”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