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도라 코소프스키의 ‘노년의 삼각관계’ 표지. 연인의 키스 장면을 담았다. 사진 김진영
이사도라 코소프스키의 ‘노년의 삼각관계’ 표지. 연인의 키스 장면을 담았다. 사진 김진영

한 남자 손님이 여자 친구에게 선물하려 한다며 책을 골라 든다. 그가 손에 든 책은 이사도라 코소프스키(Isadora Kosofsky)의 ‘노년의 삼각관계(Senior Love Triangle ·2019)’라는 책이다. 당황한 나는 내용을 아냐고 물었고 그는 노년의 사랑 이야기 아니냐고 되묻는다. 내용을 조금 자세히 설명해주자 그는 황급히 책을 내려놓았다.

이 책에 실린 사진에는 한 명의 남성과 두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이 책은 처음 펼치면 평화롭고 아름다운 정경 속에 따뜻한 정서를 교류하는 것으로 보이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함께 식사하고, 마트에 가고, 거리를 걷고, 방에 누워 있고, 키스를 나눈다. 물론 이게 전부라면, 손님에게 내용을 알고 선물하려 하는 것인지 굳이 되묻진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사회가 포용하지 못하는 사랑을, 그리고 나이 들어서도 사랑에 수반되는 모든 것을 그려내는 책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1993년생 사진가 이사도라 코소프스키는 한 대상을 오랜 시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작가다. 그녀는 17세에 LA의 한 양로원에서 함께 다니는 세 사람, 윌리엄(William·84), 아디나(Adina·90), 지니(Jeanie·81)를 보고 묘한 느낌을 받는다. 양로원 직원에게 세 사람에 대해 묻자, 이들이 유명한 삼인조이자 연인관계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세 명이 연인이라니!’ 이사도라는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세 사람과 가까워지고 알게 된 사실은 다음과 같았다. 윌리엄이 70대 후반, 아디나가 80대 중반이던 무렵 둘은 한 양로원에서 만나 연인이 되었다. 이후 사정이 생겨 윌리엄은 새로운 양로원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지니와 사랑에 빠졌다. 윌리엄은 아디나와 지니 중 한 명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고, 아디나와 지니 그 누구도 윌리엄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 결과 셋은 삼인조가 되었다. 이들은 카페, 도넛 가게, 아이스크림집을 순방하고, 거리 곳곳을 돌아다녔다. 세 사람은 매일매일의 모험을 즐기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 하루하루의 의미를 찾아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윌리엄·아디나·지니의 삶은 사회에서 점점 소외되어 가는 노년이라는 주변부의 이야기인 데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정상’ 규범에서 벗어난 흔치 않은 관계이기에 가십거리는 될지언정 존중받지 못했다. 이사도라는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사람들이 이들의 이야기를 굉장히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들의 관계가 사랑·연애·동반자의 전통적인 개념에 기반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투명인간 취급당했고 동료들은 그들을 피했다. 그들은 어딘가 소속되길 원했지만 기댈 수 있는 곳은 그들 서로뿐이었다.” 사람들이 외면하는 이 셋을 이사도라는 4년여간 가까이에서 기록했다.

‘노년의 삼각관계’에는 특별한 유대를 통해 외로움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세 사람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들은 함께 만든 우주에서 혼자인 시간을 견디기도 하고, 때로는 둘, 때로는 셋이 모여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만나기 전에는 자신을 치장하고, 만나면 서로를 포옹하고 장난치며 함박웃음을 짓기도 한다. 어떤 맛의 아이스크림을 고를지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각자의 빨대를 들고 음료 하나를 셋이 나누어 마시고, 나란히 손을 잡고 길을 걷는다.


아디나와 지니, 윌리엄 세 사람이 함께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삼인조가 된 연인은 함께 거리를 걷고 마음을 나누면서 외로움을 극복한다. 사진 김진영
아디나와 지니, 윌리엄 세 사람이 함께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삼인조가 된 연인은 함께 거리를 걷고 마음을 나누면서 외로움을 극복한다. 사진 김진영
마트에서 장을 보는 세 사람. 이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노인인 데다 흔치 않은 관계이기에 가십거리가 되기 일쑤였지만, 서로에게 기댔다. 사진 김진영
마트에서 장을 보는 세 사람. 이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노인인 데다 흔치 않은 관계이기에 가십거리가 되기 일쑤였지만, 서로에게 기댔다. 사진 김진영

사진과 함께 다양한 글 수록

이 책에는 중간중간 텍스트가 삽입돼 있다. 이사도라가 이 작업을 하면서 성실히 기록한 작업 일지이자, 세 사람의 대화를 정리한 글이다. 이를 통해 작가가 얼마나 이들의 삶의 내밀한 지점까지 곁에서 함께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함께 외출해서 본 거리의 풍경, 서로에게 손을 내밀던 모습, 서로가 서로에게 건넸던 말, 햇빛으로 인해 생긴 그림자의 형태까지. 관찰일기와 같은 글을 읽고 사진을 다시 보면, 사진이 더욱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독자들은 세 인물의 대화를 통해 이 책이 그저 사랑의 밝은 면만 담은 책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세 사람이 하는 사랑이기에 수반되는 욕망·슬픔·갈등·연민 등이 한데 얽힌 이야기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니, 이쪽은 아디나야. 아디나, 이쪽은 지니야”라며 윌리엄은 서로를 소개한다. 어느 날은 아디나가 “하루 종일 어디 있었어? 계속 전화했는데”라며 불평을 토로한다. 또 다른 날은 윌리엄이 지니에게 ‘우리’가 함께 살 집을 얻었으니 보러 가자고 하면서 아디나를 태우고 가야 한다고 말한다. 지니가 ‘우리를 위한 것’인데 왜 아디나도 같이 가냐고 묻자 윌리엄이 말한다. “지니. 아디나에게는 아무도 없어. 그녀는 완전히 혼자야. 그 여자는 홀로코스트에서도 살아남았고 암도 이겨냈어. 남편도 잃었지. 나는 그녀를 위해 곁에 있어야만 해. 우리는 모두 서로가 필요해.”

세 사람은 여느 연인과 다르지 않게 질투와 존중을 오가며 함께한다. 지니는 “윌리엄을 공유한다는 것이 마음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불편하다”고 토로하면서도 아디나의 손을 놓지 않는다. 아디나 역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함께 지내고 있어.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랑이 있단다.” 사진과 함께 수록된 다양한 글을 통해 우리는 이들의 감정과 상황에 조금이나마 더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사진 속 인물들의 솔직한 얼굴과 행동을 보면서 그리고 이들이 나눈 대화를 따라가면서 독자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되는 인간의 욕구에 대해 묻게 된다. “우리는 보통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 가졌던 욕망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10대의 사진가로서 이 세 분을 만났을 때, 나는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배제에 대한 두려움과 친밀함에 대한 욕망이 보였다. 그건 나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사도라의 말처럼, 나이가 들어도 타인을 필요로 하는 욕망은 계속된다.

이사도라의 이 작업은 이들의 관계가 끝이 나면서 함께 끝이 났다. 그리고 그 끝은 폭력으로 얼룩져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책의 후반부에 실린 글에는 이들의 파국을 바라보는 작가의 당혹감이 묻어난다. 세 사람이 가장 빛나던 순간과 가장 슬프고 절망스러운 모습을 모두 함께한 작가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며 질문을 던진다. “이들의 관계가 정말 사랑이었을까?” 부정할 수 없는 점은 우리 모두 나이가 들어도 다른 사람을 통해 공허함을 채우려 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사랑의 한 측면이라는 점일 것이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