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라 라자 교수는 “암 연구는 치료에서 예방으로 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아즈라 라자
아즈라 라자 교수는 “암 연구는 치료에서 예방으로 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아즈라 라자

‘우리는 모두 미래의 암 환자’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섬뜩한 기분이 든다. 1년에 한 번 정기 검진을 받을 때면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믿을 만한 치료법은 조기 발견뿐. 빨리 발견되면 살고 늦게 발견되면 죽는 것이 종양계의 진리다. 발병 이후 잠시 활력을 보이다가도 전이가 일어나, 순식간에 앙상한 몸으로 세상을 뜨는 지인들을 숱하게 봤다.

세계적인 종양 전문의이자 과학자인 아즈라 라자(Azra Raza) 박사는 암 연구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이 아니라 처음을 찾는 방식으로. 끝없이 변이를 일으키며 몸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마지막 암세포를 제거하려는 노력 대신 암의 첫 세포를 찾아 박멸해야 한다는 것. 일명 퍼스트 셀(first cell) 이론이다. “(암의) 끝을 시작하기 위해 시작을 끝내야 한다”는 그의 선언은 매우 강렬하다. 라자 박사는 동료 종양학자였던 남편 하비를 2002년 림프종(혈액암의 일종)으로 잃었으며, 최근 하비를 비롯해 세상을 뜬 7명의 암 환자를 목차로 기술한 책 ‘퍼스트 셀’을 출간했다. 이윤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에서 환자의 고통을 먼저 생각하는 종양 전문가의 문제작이자 양심선언이다.

뉴욕 컬럼비아대 의대 교수이자, 급성백혈병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아즈라 라자 박사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라자 박사는 진지한 질문을 받게 되어 매우 기쁘다며 한국 독자들을 위해 밀도 높은 답변을 보내왔다.


아즈라 라자 교수가 문학과 삶, 과학과 최신 암 연구를 드라마틱하게 엮은 책 ‘퍼스트 셀’. 사진 윌북
아즈라 라자 교수가 문학과 삶, 과학과 최신 암 연구를 드라마틱하게 엮은 책 ‘퍼스트 셀’. 사진 윌북

암 그리고 암의 괴로움은 의학자로서 당신 인생의 화두인 것 같다.
“그렇다. 의사들은 왜 효과를 본 소수의 환자만 이야기하고 독성으로 고통받다 죽어가는 다수의 환자에겐 눈을 감을까? 왜 우리는 여전히 가혹한 치료법을 쓰며 암의 꽁무니만 쫓는 걸까? 암 연구는 치료에서 예방으로 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현재 암치료 연구는 어디까지 와 있나.
“암치료 전망은 1970년대보다 더 나빠졌다. 실험적 연구는 95% 실패하고 있다. 성공하는 5%도 수백만달러의 비용으로 환자의 생존 기간을 고작 몇 개월 늘려줄 뿐이다. 면역 치료, 표적 치료와 맞춤 정밀 치료는 생존 기간을 늘려 소수의 환자에게 이득을 주지만, 그에 따른 신체적, 재정적 부담이 어마어마하다. 지난 14년간 미국에서는 절반에 가까운 암 환자가 2년 동안 평생 모은 저축을 다 썼다.”

어쨌든 암 사망률은 감소하지 않았나.
“1990년부터 2015년까지 25% 감소했다. 그 수혜자는 주로 유방암과 대장암 환자이며 조기 발견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조기 발견도 진행 단계가 뚜렷한 암에만 유용하다. 전립선암 등 예측이 안 되는 암은 조기에 발견해도 치료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전이성 암치료도 진보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치료에서 기술적 진보가 없다는 게 놀랍다.
“암치료는 한 세기 전에 원시적인 수준이었다. 그동안 유전체를 편집하고, 원하는 대로 켜고 끌 수 있는 등 기술적 진보를 이뤘지만, 치료 분야는 그대로다. 암 생물학에 대한 지식과 환자에게 치료의 이득을 주는 지식의 간극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수술과 화학요법과 방사선요법, 그대로다. 암을 치료한다면서 몸을 베어내고 독을 주입하고 태워버리는 방식 그대로!”

퍼스트 셀 이론에 대해 설명해달라.
“결론적으로 환자를 죽이는 것은 암이 아니라 뒤늦은 치료다. 우리는 조기에 치료해야 한다. 마지막 암세포를 죽이려고 애쓰는 일을 그만두고, 첫 번째 세포 혹은 첫 번째 세포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 환자를 죽일 수도 있는 끔찍한 치료법으로 마지막 암세포를 죽이는 대신, 퍼스트 셀을 찾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암의 기원을 찾아 암이 생기는 일 자체를 막는 데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의 항암치료는 개에게서 벼룩을 제거하기 위해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런데 21세기 현대 의학은 왜 이런 의료 행위를 반복하나. 의료 산업의 관행인가 아니면 무엇이라도 해보고 싶은, 환자와 그 가족들의 집념인가.
“환자와 그 가족에겐 선택지가 없다. 오늘 내가 암에 걸렸다면, 나도 똑같이 그 끔찍한 치료를 받게 될 거다. 왜?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까. 정해진 횟수만큼 치료해도 반응이 없으면, 치료를 멈추고 자연의 섭리를 따르게 된다. 환자와 전문의 모두 불가능한 희망을 부여잡고 고통을 연장하고 싶어 하는 단계다. 나는 지금의 환자들에게 줄 수 있는 쉬운 해결책은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내일을 위해 더 나은 선택지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중이다. 마지막 암세포를 치료하는 전략이 실패했으며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라는 거다.”

‘일단 발병하면 암의 복잡성은 기술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는 말에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암을 한 가지 질병으로 다루는 건 아프리카 대륙을 하나의 나라로 취급하는 것과 같다. 한 환자에게 생긴 암이라도 발병 부위와 시기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 암세포는 분열할 때마다 빠르게 성장하고 강해지고 똑똑해지며 더 위험해지는 법을 배운다. 분자 단위의 지성이다. 한 부위가 치료되면 다른 부위에 신선한 병소가 새로운 유전자형을 갖추고 생겨난다. 하나의 유전적 비정상을 하나의 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건 어리석은 오만이다.”


아즈라 라자(왼쪽) 교수는 동료 종양학자였던 남편 하비를 2002년 림프종으로 잃었다. 사진 아즈라 라자
아즈라 라자(왼쪽) 교수는 동료 종양학자였던 남편 하비를 2002년 림프종으로 잃었다. 사진 아즈라 라자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이 개발될 거라는 기대는 어떤가.
“동물 모델로 표준화해서 진행하는 신약 시험은 뇌를 해부해 의식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것만큼 현실성이 없다. 2005년 이래 승인된 약의 70%는 환자의 생존율을 개선하지 못했다. 반면 환자들에게 실제 해를 끼친 약은 70%에 이른다.”

의료계는 왜 그런 실수, 착각을 반복하나.
“암처럼 복잡한 질병을 유전적 수준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하나의 세포 안에서, 매 순간 상호작용하는 분자가 수도 없이 많다는 거다. 설령 암세포가 하나라고 해도 신호의 비밀을 풀어낼 가능성은 없다. 증상에 대처하는 약으로, 암의 거대한 복잡성을 제어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완전히 잘못된 거다.”

아즈라 라자 박사는 1984년부터 자신이 치료하는 암 환자들의 동의를 얻은 후 해당 환자의 DNA를 모아 연구해오고 있다. 현재는 약 6만 개의 샘플을 보유한 조직은행을 만들었다.

시험관에 보관된 환자들의 골수 샘플을 볼 때마다 어떤 기분이 드나.
“나는 환자들의 고통을 세세하게 기억한다. 그들이 거기에 있어, 용기를 낸다.”

환자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의사로서 환자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오마르, 앤드루, 하비 등 환자들의 이름이 책의 목차인 것을 보고 놀랐다.
“의사는 계속 질문해야 한다. 환자들에게 더 나은 삶을 줄 수 없다면 더 나은 죽음을 줄 수는 없을까? 과학이 환자 입장에 서서 공감하고 보살필 수는 없는가?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는 간단한 해법은 없다. 그러나 의사는 환자를 하나의 개인으로 대우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환자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질병을 치료하는 것과 환자를 치유하는 일은 어떻게 다른가.
“치명적인 병에 걸린 환자를 담당하는 종양 전문의로서, 그동안 많은 개인을 죽음으로 안내했다. 참혹한 불치병을 겪는 동안 그들을 지켰다. 의사로서 일관되게 도달하게 되는 시점이 있다. 환자에게 치료를 더 제공할 수 없는 시점이다. 필멸 앞에서 환자들은 패배감을 맛보고 어떻게 할지 모른 채, 상실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젊은 종양 전문의를 가르칠 때 내가 하는 말이 있다. ‘진실을 받아들이고, 환자의 마지막 여정을 덜 고통스럽게 만들 방법을 궁리하라.’ 그 상황에서 환자에게 필요한 건 치료가 아니라 치유다. 치료가 질병에 대한 대처라면, 치유는 환자에게 공감하는 일이다.”

의사의 공감이 환자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공감은 아픈 사람, 고통스러운 사람, 괴로운 사람에게 절실하다. 투여되는 약물만큼 중요하다.”

치료가 불가능한 암 환자를 맡은 의사에게, 그 책임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진단부터 사망까지, 암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고통과 괴로움을 줄일 책임이 의사에게 있다.”

당신은 동료 종양학자이자 남편이었던 하비의 담당 의사였다. 그는 어떻게 죽었나.
“하비는 2002년 세상을 떠났다. 두 차례 암 발병에 용기 있게 대처했다. 임종 당일, 하비는 그날 자신이 세상을 떠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몇 시간 동안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딸을 방에 불러 노는 모습을 보고 재잘거림을 들었다. 의식이 있던 마지막까지 그가 보여준 평정과 행동거지는 용감했다.”

암 앞에서 희망을 품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희망은 죽기 전까지 억누를 수 없다. 환자들은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혹은 연속으로 대면하게 된다. 종국에 유일한 위로는 위로될 일이 없어질 거라는 것이다.”

희망고문을 멈추기 위해 병원과 의사는 암 환자에게 어떤 선택지를 주어야 하나.
“쉬운 공식은 없다. 환자마다 다른 대처가 필요하다. 다만 의사인 우리는 그들이 그 고통스러운 여정을 겪을 때 돕는 자로 자리를 지켜야 한다. 미래의 환자에게 더 나은 선택지를 주리라 다짐하면서.”

‘(암의) 끝을 시작하기 위해 시작을 끝내야 한다’는 당신의 선언은 일반인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나.
“전략을 바꾸면 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례를 통해 대규모 집단을 대상으로 신속하고 민감도 높은 검사가 매우 의미 있다는 걸 알아냈다. 암 또한 공공 의료적 관점에서 검사를 진행해서 CDR(Cancer Detection Rate‧암 발견율)을 높여야 한다. 다행히 유전자 혁명에 힘입어 혈액이나 소변 등을 이용해 한 번에 여러 종의 암을 조기 추적할 수 있는 MCED(Multi-Cancer Early Detection) 검사 다수가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나이나 흡연 이력 등을 조건으로 시행하는 지금의 선별검사는 암 환자를 효과적으로 판별하지 못한다. 현재의 선별검사를 진행하면서 MCED 검사를 추가한다면, 암의 50%를 발견할 수 있다. 최근 ‘사이언티픽 어메리칸(Scientific American)’에 이 내용을 담은 글을 실었다.”

마지막으로 퍼스트 셀 연구는 어디까지 와 있나. 첫 번째 세포를 찾는 것은 언제쯤 가능할까.
“제대로 된 자원이 지원된다면, 10년 이내에 모든 보건·의료 분야에서 완전한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는 ‘후대응’에서 ‘선대응’으로, 치료에서 예방으로 옮겨갈 것이다. 매우 낙관적이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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