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서 시민들이 데이비드 보위를 추모하기 위해 그의 얼굴이 그려진 벽화 앞에 꽃을 선물했다.
영국 런던에서 시민들이 데이비드 보위를 추모하기 위해 그의 얼굴이 그려진 벽화 앞에 꽃을 선물했다.

2016년은 유독 많은 20세기의 거장들이 타계한 해다. 레너드 코헨, 조지 마이클, 프린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을 만큼 많은 뮤지션이 자신들의 별로 돌아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난, 그리고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이는 데이비드 보위다. 1월 10일, 마지막 앨범 ‘Black Star’의 발매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부고도 함께 퍼졌으니까. 벌써 5주년이다.

2000년, 영국의 음악지 ‘NME’는 20세기 음악인 중 현재의 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가 누구인지 설문 조사를 했다. 현직 음악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였다. 보위가 1위를 차지했다. 그의 인생과 위상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온갖 장르를 섭렵하되 특정한 스타일과 이미지에 함몰된 적 없는 보위의 영향력은 그저 음악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다. 2016년 1월 10일, 그의 부고가 전해진 후 세상의 모든 곳에서 추모 메시지를 전했다. 미술, 영화, 패션 그리고 IT계까지. 그 내용은 그저 한 위대한 록스타의 죽음을 기리는 것에 머물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그가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자신들의 영역에 어떤 공헌을 했는지를 설명하고 기렸다.

1966년 포크록 성향의 셀프타이틀 앨범으로 데뷔한 그에게 첫 성공을 안겨준 앨범은 1969년, ‘Space Oddity’였다. 이 앨범에 실린 동명의 타이틀 곡은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으로 달이 전설에서 현실로 착륙한 직후에 싱글로 나왔다. 노래는 자연스럽게 시대의 주제곡처럼 됐다. 영국 차트 1위, 빌보드 차트 15위에 올랐다. 그 후 두 장의 앨범을 더 발표했지만, 반응은 기대에 못 미쳤다.

데이비드 보위는 승부수를 던지기로 했다. 록밴드 티렉스가 시도한 화려하게 치장한 음악 글램 록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고 미국 록 가수인 이기 팝의 파격을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1972년, 앨범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를 내놓는다. 그리고 이 앨범은 향후 보위가 일생에 걸쳐 선보이는 삶으로부터 예술과 표현의 토대가 된다.

다른 글램 록 뮤지션들이 고작 스모키 메이크업으로 파격을 도모할 때 그는 화성에서 온 ‘지기 스타더스트’라는 페르소나를 내세워 음반의 화자로 삼았다. 또한 무대 위에서도 자신의 페르소나로 변신했다. 그것은 음악 역사상 전례 없는 파격이었다. 기타와 오럴섹스를 하는 퍼포먼스를 벌였고 일본용 성인 남성 속옷인 훈도시를 연상케 하는 옷만 입고 무대에 올랐다. 적갈색 머리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노래했다. 일찍이 마임을 하기도 했던 보위는 일종의 메소드 연기로 지기 스타더스트라는 페르소나를 완성한 것이다. 뮤직 비디오도 없던 시대, 그는 ‘들리는 것’ 못지않게 ‘보이는 것’ 역시 음악의 중요한 요소라는 걸 알고 이를 극대화했던 것이다.

이 시도가 그저 시대를 앞서가는 거였다면 적만 있었을 뿐 그의 편은 없었을 것이다. 시대를 앞서갔지만, 그 시대에 자신의 편에 설 이들을 보위는 알고 있었다. 자유에 대한 갈망과 통제에 대한 본능이 부딪히던 그때, 보위를 자신들의 대의자로 받아들인 건 당대의 소수자들과 ‘삐딱이’들이었다.

이 앨범의 대표곡이자 영화 ‘마션’의 삽입곡으로도 쓰인 ‘Starman’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모호한 가사지만 보위의 불안하고도 날카로운 목소리와 구체적인 편곡을 통해 이 노래는 어떤 메시지를 전한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나오는 우주의 목소리, 하늘에서 기다리고 있는 스타맨,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지만 소문은 내지 말 것, 같은 내용은 소리와 지기 스타더스트의 비주얼과 맞물려 어른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진 아이들의 심리를 자극한다.

생각해 보자. 당시의 동성애자 아이들 중 부모에게 커밍아웃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됐을까? 그들의 억압은 종종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빙봉처럼 상상 속의 대화 친구를 만들거나, 아니면 스스로를 병자로 정의하는 결과로 나타났을 거다. 그런 아이들에게 양성애적 외모로 노래하는 보위의 ‘Starman’은 외계로부터 오는 구원의 사인에 다름아니었을 것이다.


데이비드 보위를 추모하기 위해 2017년 발행한 공연하는 데이비드 보위의 사진이 담긴 우표.
데이비드 보위를 추모하기 위해 2017년 발행한 공연하는 데이비드 보위의 사진이 담긴 우표.
데이비드 보위의 앨범 재킷 사진이 담긴 우표.
데이비드 보위의 앨범 재킷 사진이 담긴 우표.

시대를 풍미한 보위, 예술 작품으로도 남아

보위는 이후로도 끊임없이 음악과 시각을 결합, 새로운 세계를 제시했다. 1970년대의 데이비드 보위가 문화의 미적 영역을 넓히고 파이오니어들이 진입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했다면, 1990년대의 그는 기술의 선구자였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도 전인 1996년, 포털 사이트 보위넷을 열었으며 자신의 노래를 디지털로 발매했으니 말이다. 요컨대 그가 살았던 세계는 관습과 시제에서 벗어난 자유와 미래의 세계였던 셈이다. 보위의 삶, 그 자체가 예술이었다. 상투적인 말이 아니다. 정말로 그랬다. 최후의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팝계에서의 존재감에 비해, 국내에서는 그리 큰 인기를 누리지 못했던 보위는 사후에야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됐다. 그 결과 보위의 생애를 다룬 책들이 나왔다. 그중 압도적인 것은 ‘더 컴플리트 데이비드 보위’, 약 950쪽에 걸쳐 말 그대로 보위의 모든 것을 다룬 책이다. 백과사전 형식으로 구성된 덕에 궁금한 노래나 공연, 앨범 등을 개별적으로 찾아 읽으면 된다. 단순한 팩트 위주의 기술을 넘어, 평생 보위를 연구해온 저자의 비평적 시선도 가득하다. 조금만 읽어도 보위가 얼마나 빼어난 예술가였는지, 지적인 탐구가였는지 알 수 있다.

책뿐 아니다. 현재 보위의 젊은 시절을 다룬 영화 ‘스타더스트’가 개봉 대기 중이다. 원래 2020년 봄에 개봉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연기됐다. 지난해 11월 캐나다 일부지역에서만 상영됐다.

인생 전반에 걸쳐 원체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많이 남긴 보위인 만큼, 어느 시점을 다룰 것인지 팬들의 논란이 분분했으나 발표된 바에 의하면 1971년 미국 투어를 배경으로 하는 로드 무비로 알려졌다. 표본이 적긴 하지만 평가는 영 좋지 않다. 아마 커트 코베인의 최후의 순간을 상상으로 다룬, 구스반산트의 ‘라스트 데이즈’의 느낌이 아닐까 싶다. 보위의 음악이 하나도 쓰이지 않았다는 소식도, 영화감독 던컨 존스를 비롯한 그의 가족이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는 소식도 불안함을 더하는 건 마찬가지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비틀스 못지않은 풍부한 음악과 이야기를 남기고 간 데이비드 보위다.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콘텐츠로 되살아날 여지가 충분하다는 얘기다. 비록 ‘스타더스트’가 졸작일지라도, 나를 비롯한 세계의 보위 팬들은 그의 영화 같은 생애를 영화나 드라마로 계속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 다시는 나올 수 없는, 록스타 시대의 주요 인물인 그를 통해 20세기의 예술적 화려함이 꾸준히 조망받기를 바란다.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 한국 대중음악상 선정위원, MBC ‘나는 가수다’, EBS ‘스페이스 공감’ 기획 및 자문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