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을 좋아했던 적이 없다. 모두가 좋아하는 시이지만 웬일인지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사실 좋아했던 적이 없는 게 아니라 싫어하고 멀리했던 시라고 하는 게 맞겠다. 일하러 가서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심정이야 모를 리 없었지만 이런 시들이 일하는 엄마의 마음을 한 겹 더 조급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편에 가까웠다. 혼자 있어도 씩씩하게 지내면 안 되나? 꼭 이렇게 찬밥에 자신을 비유하면서, 혼자 엎으려 훌쩍거리는 소리를 빗소리로 극대화하면서 비극의 주인공이 돼야 했나? 한번 비토하기로 작정한 마음은 쉽게 돌아서지 않는 법이다. 나도 그랬다. 어떤 시에도 그러지 않았으면서 이 시와는 좀처럼 화해하지 못했다.

내 어머니도 많은 다른 어머니처럼 몸이 파업을 선언하기 전까지 온종일 일하는 사람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가족이 먹을 밥을 준비하고 부산스럽게 출근해 정해진 시간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노동한 뒤 종종걸음으로 돌아와 또다시 가족 밥을 챙겼다. 퇴근이 늦어지는 날이면 언제나 가족에게 미안해하며 집에 있는 사람들의 식사를 걱정했다. 이런 날이 반복되는 경우에는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직장 생활 11년 차에 들어서고 보니 당시 어머니의 삶은 감당할 수도 없고 지속할 수도 없는 무게를 얹은 채 견뎌 낸 무자비한 시간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때 어머니는 버티는 게 아니라 가라앉고 있었다. 우리는 성장했지만 어머니의 한구석은 침몰하고 있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우리 가족은 어머니에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어쩌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말하자면 너무나도 내 이야기여서, 이 시를 좋아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딴에는 어머니를 편하게 해주겠다고 기다리고 있는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다. 일하러 간 어머니에게 연락하거나 기다리고 있다는 걸 드러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나날을 내 유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엄마를 방해하지 말자, 엄마를 힘들게 하지 말자, 엄마가 없어도 할 수 있다, 엄마가 필요하지 않다….’ 언젠가 어머니가 지나가는 말로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했을 때까지는 내가 나를 속일 수도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얼마간은 진심이었지만 얼마간은 스스로를 향한 속임수였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고 보면 시의 화자도 혼자 울고 혼자 기다렸을 뿐이다. 제목처럼 엄마를 생각하고 걱정했을 뿐.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서른 중반에 다시 읽는 ‘엄마 걱정’ 앞에서 마음이 관대해지는 이유는 뭘까. 더는 이 시가 불편하거나 불만스럽지 않다. 어머니는 이제 일하지 않는다. 내가 전화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좋아하신다. 변화한 상황들이 시를 달리 보게 하는 걸까. 그럴 수도 있을 테지만 마지막 문장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 변화가 생긴 건 확실하다. 이전에는 ‘유년의 윗목’이라는 표현이 그저 ‘찬밥’과 ‘시든 해’로 드러나는 어둡고 무서운 시간에 대한 비유 정도로만 이해됐다. 방 안에 덩그러니 담겨서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쓸쓸하고 적막한 마음에 대한 탁월한 비유. ‘엄마 걱정’은 서늘하고 차가운 시다. 외로운 아이의 마음을 드러내는 한 편의 시를 말하라면 누구나, 아마도 대부분 ‘엄마 걱정’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뚜렷해지는 진릿값이 있다면 유년의 윗목이 생의 윗목으로 계속 연장된다는 사실이었다.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고, 혼자서 쓸쓸하게 기다리며, 기다리는 동안 눈시울이 자꾸 뜨거워지는 한기 가득한 시절은 유년의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기다림의 아픔은 어린 시절이라고 덜하지 않고 성인이라고 더하지 않을 텐데, 그렇다면 이렇게 아픈 마음을, 그러니까 숱한 윗목의 시간을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경험한다는 사실만 봐도 인생의 무자비하고 가혹함은 증명된다. 삶의 고통에는 특혜 구간이라곤 없다. 고통은, 어쩌면 고통만이 이토록 평등하다.  

준비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사각지대에서 변화구를 던지는 것이 삶이다. 추위에 언 손과 발을 녹일 수 있는 아랫목보다 윗목이 인생의 온도에 더 가깝다. 인생의 상온은 윗목이다. 따뜻함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열기를 만들어야 한다. 사랑이 필요한 건 삶의 온도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말하자면 우리의 일상은 윗목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자 서늘하고 울적한 이 시가 온몸으로 받아들여졌다. 아마도 나는 지금 내 청춘의 윗목을 지나고 있나 보다.


▒ 박혜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젊은평론가상


plus point

기형도

1960년 인천에서 태어났고 1985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문학회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안개’가 당선되며 문예지에 시를 발표했다. 중앙일보 기자로 입사해 정치부, 문화부, 편집부에서 일하며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주로 유년의 기억, 도시민의 삶을 개성적인 목소리로 표현했다. 특히 1970~80년대의 엄혹한 시대에서 가난과 고통 이면의 따뜻함을 노래했다.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시로는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라는 마지막 구절로 유명한 ‘빈집’이 있다. 1989년 시집 출간을 준비하던 중 종로의 한 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뇌졸중. 당시 시인의 나이는 만 28세였다. 때문에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에게 읽히고 있는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데뷔 이후 첫 시집인 동시에 유고작이 됐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입 속의 검은 잎’ 이외에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 ‘기형도 전집’ 등이 있다.

박혜진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