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맨 리더십의 핵심은 권력을 나누고 분산하는 데 있다. 이런 리더는 구성원과 가능한 한 평등한 관계를 유지한다.
빅맨 리더십의 핵심은 권력을 나누고 분산하는 데 있다. 이런 리더는 구성원과 가능한 한 평등한 관계를 유지한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에 선왕이라는 이가 있었다. 그는 맹자, 추연, 순우곤 등을 등용, 제자백가를 양성하여 제나라 문화가 융성해지는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하루는 제 선왕이 춘추시대 패자(霸者)였던 제나라 환공과 진나라 문공의 일을 맹자에게 물었다. 맹자는 왕의 뜻을 즉각 알아차렸다. ‘음! 왕이 천하 제패에 관심이 있군.’ 맹자는 자신은 왕도정치를 지향하며 패도정치에 관심이 없음을 밝혔다.

선왕이 다시 물었다. “그럼 어찌해야 제대로 된 왕 노릇을 할 수 있겠소?” “백성을 제대로 위하고 지켜주면서 왕 노릇을 한다면 누가 감히 반대하겠습니까?” 맹자는 비유를 들어 말하기를 좋아했다. “어떤 사람이 왕에게 와서 아뢰기를 ‘저는 300근 되는 무거운 것은 들 수 있지만, 새의 깃털처럼 가벼운 것은 들지 못합니다’ 하면 믿겠습니까?” “당연히 믿을 수 없지요.” “그렇습니다. 백성이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왕이 자신의 능력을 백성을 위해 쓰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맹자는 여기서 자신의 소신을 힘주어 말한다. “왕이 왕 노릇을 하지 못하는 것은 하지 않아서이지 할 수 없어서가 아닙니다(王之不王, 不爲也, 非不能也)!” 그러니까 맹자의 말은 왕이 제대로 된 왕 노릇을 못 하는 것은 하려는 ‘의지’가 없기(不) 때문이지 ‘능력’이 없어서가(不能)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맹자는 왕에게 ‘근본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백성의 경우에 일정한 생업과 재산(恒産)이 없으면 심리적인 안정과 여유(恒心)도 없어집니다. 심지어는 방탕과 사치에 빠져들어 못할 짓이 없습니다. 따라서 왕은 백성의 생업을 만들어주어 위로는 부모를 잘 모시고, 아래로는 처자식을 충분히 부양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맹자 “근본으로 돌아가라”

말할 것도 없이 백성에게 근본은 ‘민생’ 즉 먹고 사는 일이다. 백성의 민생을 해결하지 못한 왕이 설 자리는 없다. 맹자의 이 말은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가 사용하여 크게 성공했던 선거 운동 문구를 생각나게 한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

진화심리학자 마크 판 퓌휘트에 의하면, 우리 먼 조상이 아프리카 사바나초원에 살던 시절부터 우리는 리더에 대한 어떤 상(像)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가 희망하는 리더에 대한 ‘인지적 원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관대함, 공정함, 능력 세 가지가 그것이다. 이것은 ‘빅맨(Big Man)’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빅맨은 원시시대 소규모 부족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인류학 용어다. AI(인공지능)가 출현한 초현대 사회인 지금도 우리가 리더를 고를 때는 원시의 뇌가 작동한다. 우리는 원시 사회의 빅맨과 가장 유사한 리더를 본능적으로 좋아한다.

사람은 자신의 리더가 누구보다 더 ‘관대’했으면 한다. 관대함은 리더가 사적인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공적인 가치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리더가 구성원에게 공적으로 더 많은 아량을 베풀고, 나아가 전체 구성원의 화합과 통합을 지향해 주기를 원한다. 또한 사람은 리더가 ‘공정’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우리의 리더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기를 원한다. 사람은 우리 편, 남의 편으로 편 가르기를 하는 리더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능력’의 문제는 굳이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세상에 능력 없는 리더를 원하는 팔로어는 없을 것이다. 능력은 관대함과 공정함 이전에 리더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이 아닌가.


권력 강화하는 독재 주의해야

빅맨 리더십의 핵심은 리더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나누고 분산시키는 데 있다. 빅맨 리더십이 있는 리더는 구성원과 가능한 한 평등한 관계를 유지한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설득과 대화를 통해 그 문제를 구성원과 함께 민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마크 판 퓌휘트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원시부족사회에서 군장사회를 거쳐 대규모의 근대적인 국민국가 체제를 가지게 되면서, 많은 리더가 이상적인 빅맨의 리더십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전략을 동원한다. 이러한 전략을 기꺼이 동원하는 리더를 우리는 독재자라고 부른다.

그 첫 번째 전략이 족벌주의를 통해 권력 기반을 확장하는 것이다. 지금은 씨족사회가 아니므로 여기서 ‘족벌’은 자기의 ‘파벌’ 혹은 ‘정파’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세상을 자기편과 남의 편으로 갈라 자기 당파의 이익만을 챙긴다.

두 번째는 공공 재화를 효율적으로 제공하여 환심을 산다. 국민의 혈세를 제 돈처럼 생각 없이 마구 퍼주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다. 삼권분립을 통한 입법, 사법, 행정의 견제와 균형에는 관심 없고 모든 권력을 독점하려고 한다. 입법부나 사법부의 장에 자기 정파 사람을 심는다.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조직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적폐로 몰아 철퇴를 내린다.

네 번째는 공공의 적을 만드는 것이다. 예컨대 제 맘에 들지 않으면 ‘토착 왜구’니 ‘친일파’로 모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다섯 번째는 각종 미디어를 통해 사상을 통제하는 것이다. 군사정권 때와 달리 무력만 없을 뿐 노골적인 언론 통제는 여전하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영언론에 제 사람을 심어 어용언론으로 만들어 버린다. 비판적인 언론에는 고소 고발 혹은 재허가 불허 협박으로 재갈을 물린다. 특정 세력과 결탁하여 여론 조작도 불사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 빠른 분들은 이미 알아챘을 것이다. 내가 마크 판 퓌휘트의 빅맨 리더십을 이야기하자, 내 아내는 “지금하고 판박이네!” 하고 냉소적으로 받아친다. 내가 맹자의 왕 노릇 이야기를 하자,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로 있는 고향 친구는 이렇게 빈정거린다. “왕이 능력은 있는데 의지가 없는 게 문제라고? 내가 보기엔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어. 왕이 왕답지도 않은데 무슨 왕 노릇 운운하는 거야?”

지난 보궐선거에서 국민은 민생은 뒷전이고 정파적인 이익 챙기기에만 몰두하는 의지도 없고(오만하고) 능력도 없는(무능한) 정권을 가차 없이 심판했다. 문제는 그들이 여전히 성찰도 없고 변하려는 의지도 없다는 것이다. 빅맨을 갈망하는 내 마음이나 제대로 왕 노릇할 줄 아는 왕을 소망했던 수천 년 전 맹자의 안타까움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 김진국
문화평론가, 고려대 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