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은 꼴찌였지만 박찬호는 ‘투머치토커’라는 별명답게 재기 넘치는 입담을 보였다. 사진 KPGA
성적은 꼴찌였지만 박찬호는 ‘투머치토커’라는 별명답게 재기 넘치는 입담을 보였다. 사진 KPGA

박찬호(48)는 1994년 메이저리그 진출 17일 만에 마이너리그로 밀려났다. 그리고 메이저리그로 컴백할 때까지 2년이 걸렸다. 그의 영원한 멘토인 고(故) 토미 라소다 감독이 첫 스프링캠프 때 그의 방을 찾아 해준 조언이 없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없었을지 모른다.

라소다 감독은 ‘열심히 하라’는 말 대신 “매일 거울을 보라”고 조언했다. 박찬호는 매일 아침 그리고 자기 전 하루 두 번씩 거울 속의 울고 있는 자신에게 약속했다. ‘나는 다저스 경기장에서 공을 던질 것이다. 나는 꼭 나의 꿈을 이뤄 메이저리거가 될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 124승을 거둔 ‘코리안 특급’ 박찬호는 많이 아파보고 많이 울어본 사람이다. 스포츠 선수로 최고의 순간과 깊은 좌절을 모두 겪어본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이야기보따리를 갖고 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워낙 수다를 떨어 ‘투머치토커(too much talker)’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스포츠 스타로 한 시대를 풍미한 경험을 느끼게 해주는 ‘뼈 때리는’ 말들이 은연중에 나온다.

엄청난 골프 애호가인 그가 4월 29일 개막한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군산CC오픈에 출전해 2라운드 합계 29오버파 171타, 153명 중 꼴찌로 컷 탈락했다. 3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는 컷 통과 기준은 3오버파였다. 1부 투어 대회가 처음인 박찬호는 KPGA 추천 선수로 출전했다. 박찬호는 아마추어 선수 추천 조건 중 하나인 공인 핸디캡 3(파 72 코스에서 75타를 기록하는 수준) 이하를 충족해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야구와 골프의 철학적이고 공통적인 면을 나중에 글로 남기고 싶다”는 꿈도 갖고 있다. 골프장 안팎에서 그가 남긴 어록을 살펴본다.


박찬호가 군산CC오픈 1·2라운드를 동반 플레이한 김형성(가운데), 박재범(오른쪽)과 포즈를 취했다. 박찬호는 이들과 자신, 세 명의 이름으로 3000만원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에 기부했다. 사진 KPGA
박찬호가 군산CC오픈 1·2라운드를 동반 플레이한 김형성(가운데), 박재범(오른쪽)과 포즈를 취했다. 박찬호는 이들과 자신, 세 명의 이름으로 3000만원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에 기부했다. 사진 KPGA

#골프의 매력에 빠진 계기
“2012년 은퇴 후 쓰나미처럼 공허함이 밀려오며 심리적으로 크게 흔들렸다. 당시 골프를 통해 마음을 다잡았다. 투수도 혼자고, 골프도 혼자다. 비슷한 게임을 통해 그 고독과의 싸움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 프로 골퍼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건 골퍼 지망생인 큰딸에게 조언을 하면 ‘아빠가 프로도 아니면서~’라고 대꾸하길래 도전하게 됐다.”

#프로 골퍼와 아마추어인 자신의 차이점
“3오버, 4오버, 5개 넘게도 치면서 자포자기하게 되더라. 프로들이 보기도 하고 버디를 놓치면서도 굳건하게 다음 홀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게 프로 정신이구나’를 느꼈다.”

#기억에 남는 골프 조언
“김종덕 프로와 라운드하는데 프로들은 파 3홀이 가장 어렵다고 하더라. 파 3홀은 티샷 한 번 잘못하면 보기를 하기 쉬운 홀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클럽을 선택하는 것도 어렵고 기회도 한 번밖에 없기 때문에 정말 신중하게 친다고 한다. 프로는 모험을 해서 버디를 잡는 것보다 보기를 하지 않도록 매니지먼트를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 골프에 대한 깊이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습장과 코스가 다른 이유
“우리도 불펜에서 빵빵 잘 던지는데, 딱 시합 들어가서 볼 한두 개, 안타 한 대 맞고, 홈런 한 대 맞으면 그다음부턴 어른어른한다. 종목이 달라도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안다. 우리도 마운드에 올라갈 때 투수가 ‘쫄고’ 있는지, 걱정을 하고 있는지, 자신 있어 하는지, 몸이 아픈지 보인다. 그런 게 골프 선수도 보면 있다.”

#골프는 멘털이다
“야구와 골프가 비슷하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지금 눈앞의 현실에 집중해야 한다. 컨트롤할 수 없는 희망이나 결과에 집착하면 기대와 멀어진다. 골프는 공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쉽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이 움직인다. 야구도 과녁만 상대하면 되는데 타자를 보고 상황을 보니까 자꾸 흔들린다. 주입식으로 연습만 한 선수들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지닌 선수들이 어려움을 잘 풀어간다.”

#2부 투어와 1부 투어 코스의 차이점(그는 올해 2부 투어 예선 4경기를 뛰어 모두 탈락했다. 최고 성적은 3오버파였다).
“2부 투어에선 벙커를 의식하지도 않았고, 보기가 나와도 다음 홀에 만회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1부 투어는 코스 세팅이 전혀 달랐다. 매 순간 산 넘어 산이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 더 힘들었다.”

#370야드 장타 비결은
“왼발을 축으로 던지는 투수와 왼발을 축으로 체중 이동을 하는 골프 스윙의 메커니즘이 비슷하다. 마지막 순간에 손끝의 감각으로 공을 뿌려주는 투수의 감각도 도움이 된다. 골프는 장타다. LPGA에서도 태국의 장타 선수(패티 타와타나낏)가 등장하니까 미국에서도 큰 관심을 갖더라. KPGA 투어에는 엄청난 장타 능력을 지닌 선수가 많다. 그 매력이 알려지면 더 많은 팬이 좋아할 것이다.”

#프로들에게 배운 점
“1~2라운드 동반 플레이를 한 김형성과 박재범에게 프로 대회가 어떤 건지, 매너, 야디지 북 보는 법, 볼 마크하는 것 등 하나하나 연습 라운드 때부터 배웠다. 배운 것을 다 해보려고 노력했다. 정말 고맙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기부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도 이 선수들 때문이다(박찬호는 자신과 김형성, 박재범 이름으로 3000만원을 기부했다).”

#골프도 KPGA도 친구다
“이번 대회에 나와 KPGA와 친구가 된 느낌이다. 친구는 오랜 시간 같이 지내고 싶은 존재다. 골프라는 스포츠에 대해 조금 늦게 알게 됐지만 정말 빨리 친해졌다. KPGA와 골프는 앞으로 더욱 친해지고 싶은 존재다.”

#좋은 투수는 멋진 공을 던지지 않는다
“4년 연속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받았던 전설적인 투수 그레그 매덕스는 엄청난 강속구나 날카로운 각도의 위협적인 공을 던지지 않았다. 꼭 필요한 곳에 공을 툭툭 집어 넣었을 뿐이다. 그는 골프를 아주 좋아했는데 골프도 그런 식으로 쳤다. 나도 일찍 골프를 시작해 그런 이치를 깨달았으면 더 좋은 투수가 됐을 것 같다.”

#박찬호는 친선 라운드 때는 ‘아마추어처럼’ 물가나 언덕에 가면 꼭 공을 주워온다
“새 공들인데 그걸 어떻게 지나가나. 우리 부모님이 여전히 밤 농사를 짓고 계시다. 공을 찾으러 가면 항상 내 공만 없다. 그게 참 희한하다. ”

#세 딸의 아버지인 그에게 골프는 셋째 딸 같다
“골프는 어렵다. 너무 사랑스럽고 좋은데 마음같이 안 된다는 점에서 골프는 셋째 딸과 비슷한 것 같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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