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 매카트니의 버섯 가죽 컬렉션의 의상을 입고 있는 두 모델. 사진 스텔라 매카트니 인스타그램
스텔라 매카트니의 버섯 가죽 컬렉션의 의상을 입고 있는 두 모델. 사진 스텔라 매카트니 인스타그램

패션이 육식주의를 벗어나 채식주의로 변화하고 있다. 소, 양, 악어, 타조의 가죽 대신 사과, 파인애플, 바나나, 버섯, 옥수수 등이 가방과 의상 소재의 리스트에 담기고 있다.

패션계는 매년 육식 폭식을 해왔고, 매번 세계적인 동물보호단체인 PETA의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처음에는 가죽과 털을 취하기 위해 동물에게 가하는 가혹 행위로 윤리적 비판을 받았지만, 최근엔 환경 오염 문제가 더 심각하다. 동물 가죽의 경우 1㎏을 생산하는 데 약 1만7000L의 물이 사용된다. 또한 가죽을 얻기 위한 축산업이 내뿜는 온실가스가 전 세계 배출량의 18%나 차지한다고 보고 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의 비판에 따라 폭발적으로 급증한 합성가죽의 사용도 심각하다. 합성가죽의 주재료는 플라스틱이다. 합성인조가죽 기술이 발전하면서 실제 가죽과 구분이 어려울 만큼의 프리미엄 인조가죽이 등장했지만, 또 다른 환경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다. 동물 가죽이 지닌 윤리적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만, 합성가죽은 석유계 화합물이어서 썩지 않는다. 가격이 저렴하고 천연가죽에 비해 내구성이 떨어져 쉽게 버려지고 폐기물 쓰레기가 되어 몇백 년간 썩지 않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이 되어 왔다. 

이런 패션의 윤리적, 환경적 이슈는 식물로 눈을 돌리게 했다. 스위스의 가방 업체 해피 지니(Happy Genie)에서 사과 껍질로 가방을 만들었고, 영국의 섬유 제조 업체인 아나나스 아남(Ananas Anam)은 파인애플 부산물로 만든 피나텍스(Piñatex) 신발과 가방을 생산했다. 이후에는 오렌지 껍질을 활용해 만든 오렌지 섬유를 2018년에 개발했고, 버섯과 선인장, 포도 등 다양한 식물에서 추출한 원료로 섬유와 가죽 원단을 계속 개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선인장 가죽을 2019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최된 국제

가죽전시회에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자동차 업계 출신 아드리안 로페즈 벨라르데와 패션 업계 출신 마르테 카자레즈가 약 2년간의 공동 연구로 개발한 식물 가죽이다. 모양이나 촉감 모두 동물 가죽과 비슷하며, 통기성과 탄력성도 좋아 의류와 신발의 동물 가죽 대체품으로 사용할 수 있다.

선인장 가죽과 함께 주목받는 식물 가죽은 파인애플 잎이다. 파인애플 잎에서 추출한 섬유질을 가공하여 만든 파인앤플 가죽은 휴고 보스나 H&M 등이 사용하고 있으며, 테슬라의 카시트로도 사용되고 있다. 파인애플 가죽도 가볍고 부드러우며 통기성이 좋아 앞으로 발전이 더 기대되는 식물 가죽이다.

또한 선인장과 파인애플 가죽은 동물 가죽보다 관리도 편리한 편이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식물 가죽의 내구성에 대해 걱정하는데, 동물 가죽보다 습도와 스크래치에 더 강하다. 동물 가죽은 잘못 보관하면 가죽이 마르거나 심한 경우 갈라지기도 하는데, 식물 가죽은 신축성이 좋은 편이다. 먼저 상품화된 식물 가죽이 대중화에 성공하면서 사과, 포도, 망고, 오렌지 껍질 등을 사용한 식물 가죽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 

최근엔 에르메스가 버섯 가죽으로 만든 ‘빅토리아 백’을 판매할 예정이라고 발표해 화제가 됐다. 에르메스는 버킨 백과 켈리 백으로 유명한 초고가 럭셔리 명품 브랜드다. 그중에서도 최상급 라인으로 한정 판매되는 악어백은 백 하나에 악어 세 마리가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샤넬이 악어와 도마뱀 등 희귀 동물의 가죽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등, 명품 브랜드가 변화하고 있는 동안에도 에르메스는 오히려 호주에 대규모 악어 농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해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지속 가능’이 패션과 산업 전반에 걸쳐 가장 중요한 비전이 된 만큼, 에르메스도 더 이상 시류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왼쪽부터 휴고보스의 파인애플 가죽 슈즈와 에르메스의 버섯 가죽 빅토리아 백. 사진 휴고보스·마이코웍스 인스타그램
왼쪽부터 휴고보스의 파인애플 가죽 슈즈와 에르메스의 버섯 가죽 빅토리아 백. 사진 휴고보스·마이코웍스 인스타그램

지속 가능 패션 위해 버섯까지 활용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은 에르메스 빅토리아 백에 사용되는 버섯 가죽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친환경 스타트업 마이코웍스와 협업하여 버섯 균사체(곰팡이 몸체)로 만든 가죽 ‘실바니아’가 사용된다. 마이코웍스는 버섯 뿌리 부분의 균사체를 천연 가죽에 가깝게 바꾸는 특허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촉감과 내구성은 동물 가죽과 흡사하면서 동물 가죽 생산 시보다 이산화탄소 등 온난화 물질 배출량이 적어 친환경적이다. 이 ‘실바니아’ 가죽은 프랑스에서 가공돼 강도와 내구성이 개선된 후 에르메스 장인들에 의해 빅토리아 백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정확한 출시일과 가격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진 않았지만, 한화로 약 600만원대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영국 패션 브랜드 스텔라 매카트니도 버섯 뿌리 균사체를 이용한 대체 가죽 업체 마일로 언레더(Mylo Unleather)와 협업으로, 뷔스티에(어깨와 팔을 다 드러내는, 몸에 딱 붙는 여성용 상의)와 바지를 선보였다. 폴 매카트니의 딸로도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브랜드를 출시했을 때부터 동물 가죽과 모피를 사용하지 않는 비건 패션을 추구했었다. 동물 가죽과 털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선 비건 패션의 선구자라 할 수 있지만, 스텔라 매카트니도 플라스틱과 아크릴로 만든 인조가죽과 인조모피를 사용해왔기 때문에 환경 오염 문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새로운 컬렉션에서 버섯 가죽을 사용하면서 스텔라 매카트니도 점차적으로 식물 가죽 사용을 늘려 진정한 비건(vegan) 패션 브랜드로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비건은 이미 알려져 있듯 엄격한 채식주의를 뜻한다. 채식주의의 5가지 단계에서, 고기·생선·계란·유제품 등 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을 때 비건이라 한다. 그렇게 비건은 음식에서 시작됐지만, ‘지속 가능한’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빅 키워드가 되면서 패션과 뷰티 전반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의 변화는 이전의 비건이 동물 학대를 반대하는 윤리적인 문제의 대안이었다면, 현재는 환경 문제로 확장됐다는 것이다. 또한 처음에는 개념 있는 몇몇 작은 패션 브랜드에 의해 시작됐지만, 이젠 에르메스와 같은 전통 깊은 명품 브랜드도 비건 패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쳐 비건을 추구하는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04년생)가 증가하면서, ‘비거노믹스(vegenomi-cs·vegan+economics)’란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음식에서 시작한 비건은 화장품과 자동차 시트로 이어져 갔고, 지난 2~3년간 패션계에서 비건은 큰 변화를 일으켰다. 그러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건은 재료가 동물성이 아닌 것에 한정되어 있었다. 지금의 비건은 만들어지는 재료와 소재, 과정, 폐기 과정까지 모두 친환경적인 비건으로 진화하고 있다. ‘사과, 파인애플, 포도, 버섯…,  이제 먹지만 말고 패션에 양보’해야 하는 시대다. ‘비건’으로 먹고 입고 바르고 생활하는 미래로의 전환이 기대된다.


▒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케이 노트(K_note) 대표

김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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