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K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김성현은 지난겨울 라섹 수술을 해 안경을 벗었다. 사진 웹케시그룹
지난해 K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김성현은 지난겨울 라섹 수술을 해 안경을 벗었다. 사진 웹케시그룹

‘꿈의 58타’ 기록을 캐디 없이 전동 카트를 몰아가며 ‘셀프 라운드’로 기록한 사나이가 있다. 한국 골프의 차세대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는 김성현(23·웹케시그룹)이 그 주인공이다.

김성현은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퀄리파잉 스쿨을 4등으로 통과해 2019년 일본에 진출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본에 가지 못하고 국내에서 활동했다.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시드가 없어 월요예선을 거쳐 출전한 2020년 KPGA선수권에서 깜짝 우승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올해는 미국프로골프(PGA) 2부 투어 퀄리파잉 스쿨을 겨냥해 세계 랭킹 포인트가 높은 일본 무대에서 뛰고 있다.


이시카와 이어 일본 투어 두 번째

김성현은 5월 23일 일본 이바라키현 도리데고쿠사이(取手國際)골프클럽(파 70·6804야드)에서 열린 일본 투어 골프파트너 프로암 토너먼트 최종 4라운드에서 이글 2개와 버디 8개를 몰아치며 12언더파 58타를 기록했다. 3라운드까지 공동 62위였던 김성현은 순위를 51계단 끌어올려 공동 11위(17언더파)로 대회를 마쳤다.

김성현의 12언더파 58타 기록은 JGTO에서 두 번째로 나온 대기록이다. 2010년 일본의 이시카와 료가 주니치크라운스 최종 4라운드에서 기록한 12언더파 58타와 한 라운드 최저타 타이기록이다.

김성현과 이시카와의 58타는 2016년 8월 7일 PGA투어 트래블러스 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8자 스윙’으로 유명한 짐 퓨릭(51)이 기록한 12언더파 58타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주요 투어 최저타 기록이다. 국내 남녀 프로 대회에선 아직 50대 타수가 나온 적이 없다.

김성현이 대기록을 세운 골프파트너 프로암 토너먼트는 올해 처음 열린 대회로 미 PGA투어의 페블비치 프로암처럼 프로와 아마추어 참가자가 함께 라운드하는 형식으로 열리며 프로는 프로들끼리의 성적으로 순위를 가린다.

도대체 프로 대회에서 선수가 캐디 없이 전동 카트를 몰면서 어떻게 그런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인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열리는 JGTO의 현실은 어떤지 궁금한 것이 많았다. 일본에 있는 김성현에게 연락했다.


김성현의 일본 투어 생활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열악한 상황이다. 그를 돕던 아버지가 일본에 가지 못해 직접 운전하며 대회장을 찾아다니고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먹으며 버티고 있다. 캐디는 상금 규모 등 조건이 더 좋은 여자 투어로 옮겨, 직접 백을 메거나 전동 카트를 몰며 경기하고 있다. 꿈의 58타는 이런 조건에서 탄생했다. 사진 웹케시그룹
김성현의 일본 투어 생활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열악한 상황이다. 그를 돕던 아버지가 일본에 가지 못해 직접 운전하며 대회장을 찾아다니고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먹으며 버티고 있다. 캐디는 상금 규모 등 조건이 더 좋은 여자 투어로 옮겨, 직접 백을 메거나 전동 카트를 몰며 경기하고 있다. 꿈의 58타는 이런 조건에서 탄생했다. 사진 웹케시그룹

캐디들 여건 좋은 JLPGA 투어로 떠나

김성현은 전담 캐디와 함께 플레이를 했었다. 그런데 올해 김성현이 일본 비자를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한 데다, 코로나19로 남녀의 대회 수와 상금 격차가 더욱 두드러지는 상황이 되자 JGTO에서 활동하던 여러 캐디들이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로 넘어갔다고 한다. 김성현은 “운이 좋으면 파트 타임 캐디를 구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아 셀프 라운드를 하게 된다”고 했다. 캐디가 없으면 직접 발걸음으로 거리를 측정하고 바람을 읽고 클럽을 선택하고 사용한 클럽을 닦는 모든 작업을 선수가 해야 한다. 김성현은 “시간에 쫓기게 되고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백을 메고 경기해야 하는 대회에서는 체력적인 부담도 크다”고 말했다.

대회마다 백을 메거나 카트를 끌고 다니거나 전동 카트를 이용하는 조건이 다 다르다. 거리 측정기 사용도 그렇다.

이번 골프파트너 프로암 토너먼트에선 전동 카트를 이용할 수 있어 체력 부담이 적었고, 아무래도 경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아마추어들과 함께여서 좀 더 여유를 갖고 경기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거리 측정기도 사용할 수 있었다.

코스는 중간 정도의 난도였다. 그는 “코스 전장이 길지 않아 비거리가 많이 나면 유리한 코스였다. 페어웨이는 좁은 편이었는데 그린이 부드럽고 스피드가 빠르지 않아 공격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성현은 힘껏 치면 330야드를 칠 수 있는 장타자인 데다 웨지 샷과 퍼팅 능력이 좋은 스타일이다. 이제까지 프로 대회 베스트 스코어는 지난해 일본에서 기록한 8언더파 64타였다.


동반 선수들과 즐기며 ‘무아지경’ 플레이

3라운드까지 공동 62위였던 김성현은 느긋한 마음으로 마지막 라운드에 나섰다고 했다. 티오프 시각이 오전 10시쯤이었는데 오전 6시 30분쯤 일어나 가볍게 몸을 풀고 골프장에 오전 9시 10분쯤 도착했다. 드라이빙 레인지와 연습 그린에서 25분쯤 샷을 가다듬고 경기에 나섰다.

평소 1시간 20분 전에 골프장에 도착해 1시간 10분가량 연습을 하던 것에 비하면 가벼운 준비였다. 김성현의 조에 아마추어는 없었고 일본 선수 2명과 태국 선수 1명 등 4인 1조로 플레이했다. 김성현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다음 주를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경기했다. 동반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끼리 서로 좋은 샷이 나오면 손뼉치고 격려해주는 윈윈(win-win)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10번 홀에서 출발한 김성현은 3연속 버디에 이어 13번 홀(파 4)에서 52m를 남기고 60도 웨지로 친 샷이 핀 옆에 맞고 백스핀이 걸리면서 샷이글을 잡았다.

16번 홀(파 3)에서 버디를 추가한 김성현은 가장 어려운 18번 홀(파 4)에서 홀까지 107m를 남기고 친 아이언 샷이 깃대를 맞고 4m 거리에 멈춘 것을 버디로 연결했다. 전반 9홀에서 7타를 줄여 28타를 기록했다.

전반 9홀이 끝나고 앞 팀이 밀리면서 10분 이상 휴식을 했다. 김성현은 “전반 성적이 좋으니 지키는 플레이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예전에 잘될 때 소극적으로 경기하다 망가진 기억이 있어서 이번엔 브레이크 밟지 말고 액셀을 밟자, 과감하게 치자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2·3번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아 9언더파까지 갔는데 4~7번 홀에서 타수를 줄이지 못하다 8번 홀(파 4)에서 드디어 10언더파를 기록했다. 김성현은 “동반 플레이하는 선수들이 마지막 홀을 앞두고 스코어를 물어봐서 계산해보니 10언더파였다. 9번 홀이 파 5홀이니 버디를 잡아 50대 타수를 기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198m 남기고 친 8번 아이언 샷 홀 3m 붙어

김성현이 9번 홀(파 5·500m)에서 친 티 샷이 300m 왼쪽 러프에 떨어졌다. 홀까지 198m가 남았다. 평소 155m 거리를 치던 8번 아이언을 꺼내 그린 앞까지만 보내자고 계산했다. 그런데 아드레날린의 영향인지 8번 아이언으로 친 샷이 강하게 러프를 탈출하더니 그린 앞에 맞고 홀 3m에 붙었다.

오르막 훅 라인이었는데 무조건 넣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보이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자신있게 퍼팅을 하자 공이 홀 한가운데로 ‘땡그랑’ 떨어졌다.

김성현은 “58타는 아무리 쉬운 코스여도 치기 어려운 것이다. 또 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힘들 것이다. 좋은 분위기에 무아지경으로 친 것 같다”고 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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