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JFK’는 짐 게리슨 검사가 쓴 ‘JFK: 케네디 대통령 암살의 진상’을 바탕으로, 무기 사업을 둘러싼 권력형 범죄라는 시각에서 사건을 풀어간다. 사진 IMDB
영화 ‘JFK’는 짐 게리슨 검사가 쓴 ‘JFK: 케네디 대통령 암살의 진상’을 바탕으로, 무기 사업을 둘러싼 권력형 범죄라는 시각에서 사건을 풀어간다. 사진 IMDB

1961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군부와 군수 산업의 결탁이야말로 미국에 닥친 새로운 위기’라며 ‘군산복합체로부터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걱정을 남기고 퇴임했다. 그 후 35대 대통령에 취임한 존 F. 케네디는 냉전 시대와 전쟁 종식에 뜻을 두고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평화는 돈이 되지 않았고 군수물자 사업에 관련된 많은 사람이 케네디의 정적이 되었다.

1963년 11월 22일 오후 12시 30분, 댈러스에서 오픈카를 타고 거리 퍼레이드를 하던 케네디 대통령에게 세 발의 총탄이 날아든다. 인근 극장에서 곧바로 체포된 오즈월드는 “난 무죄다, 희생양이다”라고 변호했지만 대통령 살인죄로 기소된다. 사건 발생 이틀째, 감옥으로 이송되는 장면이 생방송되던 중 오즈월드는 한 남자가 쏜 총에 맞아 사망한다.

어떤 사람에겐 무의미한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된다. 케네디의 죽음을 보며 어떤 이는 잘 죽었다고 기분 좋게 건배하고 또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한 나라의 대통령에게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며 경악한다. 뉴올리언스의 지방 검사였던 짐 게리슨은 케네디의 암살 소식을 듣고 미국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이 벌어졌다며 분개한다.

그는 오즈월드가 뉴올리언스의 위험 인물들과 연결돼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자체 수사를 진행한 뒤 그들 중 한 명을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넘긴다. 그러나 혐의가 없다며 FBI가 그를 석방하자 수사를 진척시킬 명분을 잃는다. 정부도 워런 판사를 수장으로 하는 사건 조사위원회를 구성했지만 공산주의자이자 카스트로의 지지자로 알려졌던 오즈월드의 단독 범행으로 사건을 매듭짓는다.

3년 후, 게리슨 검사는 워런 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찾아 읽다가 놀란다. 오즈월드의 조사 기록은 사라졌고 수많은 현장 목격자의 증언은 묵살되거나 왜곡, 파기되었으며 주요 증인들은 연이어 의문사를 당했다. 이 모든 일이 케네디가 해체하려고 했던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전 국장, 워런 판사가 지휘했던 조사위원회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검사는 단순 범행으로 결론 난 사건의 이면에 더 크고 복잡한 내막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게리슨 검사는 대체 누가, 어떻게 대통령을 암살할 수 있었을까, 집요하게 파고든다. 사건을 역추적해갈수록 돈과 조직과 권력이 연계해야만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기업인 클레이 쇼를 비롯, 위험 인사들이 케네디 암살을 모의했고 CIA와 FBI가 연루되어 있다는 증언이, 오즈월드가 정보부 요원이었다는 정황 증거가 쌓여간다. 하지만 증언하면 살해당할 거라며 재판의 증인으로 나서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익명을 요구하는 퇴직 장교가 찾아와 수상한 흔적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칙대로였다면 국방성의 비밀 요원이기도 했던 그가 댈러스 경호를 맡았을 테지만 상부는 그의 팀을 임무에서 제외시켰다. 그들을 대신했던 경호팀은 안전을 위해 당연히 지켜야 할 기본 수칙들을 모두 무시하며 대통령을 사지로 몰았다. 그 또한 증인으로 나설 수는 없다고 했지만 중요한 실마리를 던져준다. “누가 어떻게 했느냐를 따지느라 더 중요한 걸 잊고 있소. 왜 죽였는가? 누가 이익을 보는가? 문제는 돈이오.”

게리슨 검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된다. 부통령이던 존슨은 대통령직을 인계받자마자 케네디의 정책을 뒤집어, 소련과 대립각을 세우고 쿠바 내부의 정치적 혼란과 월남전에 전격 뛰어들었다. 세계는 다시 첨예한 냉전 체제와 전쟁의 화염 속에 놓이게 된 것이다.

전쟁은 거액이 오가는 사업이다. 끝내 공산화를 막아내지 못하고 철수했던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쏟아부은 건 병사 5만8000명의 목숨만이 아니었다. 투하된 650만t의 폭탄과 손실된 5000대 이상의 헬리콥터, 그 외 셀 수도 없이 많은 군수물자. 그렇게 날아간 국민 세금은 당시 1년 국방예산액을 훨씬 초과하는 2200억달러(약 248조6000억원)였다.

세상은 믿어주었으면 하고 내놓은 가설을 의심하고 뒤집는 사람들을 반기지 않는다. 게리슨 검사가 사건의 외피들을 하나씩 벗겨갈수록 그와 그의 팀원들,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모함과 협박이 쏟아진다. 팀은 분열되고 가정은 파탄 지경에 이른다. 나라 걱정은 집어치우고 평범한 가장으로 돌아와 달라고 애원하는 아내에게 게리슨이 말한다. “나만 살자고 모른 척하면 우리 애들은 개 같은 세상에서 살게 돼. 애들이 그런 세상에서 살게 된다면 나나 당신도 인생 헛산 게 되는 거야.”

차기 대권의 유력 후보로 부상하던 로버트 케네디마저 암살당하는 걸 보며 두려움을 느끼지만 게리슨 검사는 물러서지 않는다. 마침내 1969년, 대통령 암살에 가담한 혐의가 농후한 클레이 쇼의 재판을 이끌어낸다. 배심원 앞에 선 검사는 워런 보고서가 얼마나 많은 거짓으로 채워져 있는지, 왜 오즈월드가 단독범이 될 수 없는지, 조작되고 은폐된 기록의 허점들을 조목조목 반박해간다.

올리버 스톤 감독이 1991년에 발표한 이 영화는 짐 게리슨 검사가 쓴 ‘JFK: 케네디 대통령 암살의 진상’을 바탕으로, 무기 사업을 둘러싼 권력형 범죄라는 시각에서 사건을 풀어간다. 세 시간이 훌쩍 넘는 상영 시간 중 40분 가까이 할애된 후반부 검사의 진술 장면은 법정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몰입도와 무게감을 효과적으로 발휘하며 관객을 설득해낸다.

케네디 대통령은 왜 암살당했을까? 사건이 발생한 지 60년이 다 되어가지만 마피아 관련설, 쿠바 관련설, CIA 연루설 등 여전히 많은 추론이 난무한다. 그 모든 의문을 풀어줄 열쇠는 미국 국회 조사위원회의 보고서가 기밀 해제되는 2029년이 지나야 얻을 수 있을 전망이다.

다수가 진실이라고 믿는 명제에서 모순을 발견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제정신이냐는 비난에도,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역사의 고비마다, 그렇게 용기 있는 소수의 사람이 있었기에 거짓을 만들어내는 자들은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고,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가, 사람들은 고민할 수 있었다. 세상이 거짓으로 완전히 뒤덮이지 않는 이유, 혹시 거짓에 파묻혀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지금도 우리 스스로 돌아보게 되는 까닭이다.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