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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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대학을 졸업한 내 딸은 어릴 적부터 입버릇처럼 이런 말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향기가 나고,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들릴 때는 숯불에서 고기를 구울 때예요!” 제대하고 복학한 제 오빠는 서너 살 때부터 외식 메뉴의 영순위가 언제나 생선회였다.

내 아들이 다섯 살 때 외식을 시켜준다고 조카를 데리고 나갔던 내 큰처남은 20여 년 전 일로 지금도 생색을 낸다. “애가 회를 먹으면 얼마나 먹겠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조카의 먹성에 놀라 큰돈을 썼다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만큼 철저한 잡식동물은 없다. 우리 인류는 수만 가지 식물과 벌레에서부터 갑각류, 파충류, 양서류, 포유류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먹어 치우는 놀라운 식성을 자랑한다. 앞니와 송곳니, 어금니를 보라. 완벽한 잡식동물답게 인간은 음식물을 자르는 것부터, 잘게 부수거나 갈아 버리는 일까지 능수능란하게 해낼 수 있는 치열을 가지고 있다.


불(火) 다루며 음식문화 ‘풍성’

특히 인간이 불을 다루게 되면서 음식문화는 더욱 풍성해졌다. 음식을 날로 먹지 않고 화식(火食)을 하게 되면서, 단단하고 질긴 음식도 얼마든지 훨씬 더 부드럽고 다양한 형태로 구미에 맞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우리의 턱은 훨씬 더 가벼워지고, 치아도 작아지고, 장도 짧아졌다.

우리 인류가 열대의 무더위와 극지방의 한파를 견뎌내고 살아남아 자신들의 서식지를 넓혀온 배경에는 채식과 육식을 가리지 않는 인간의 잡식 본능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각설하고 이런 상황을 한번 생각해보자. 여러분이 가족 혹은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바비큐 파티를 하고 있다. 혹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 멋진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등심 스테이크를 썰면서 와인을 마시고 있을 때를 말이다.

그때 갑자기 일군의 남녀가 피켓을 들고 나타나서 이렇게 외친다. “여러분! 여러분이 먹고 있는 것은 음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폭력입니다. 고기가 아니라 살아있는 동물입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는 것처럼, 동물도 동물답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들이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행동을 하는 주인공은 이른바 DxE 한국지부의 회원들이다. DxE는 ‘어디서든 직접 행동하라’는 뜻인 ‘Direct Action Everywhere’의 영문 약자로 구성된 이름을 가진 단체로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다. 단체 이름처럼 그들의 행동은 거침이 없다. 시위 장소도 일반 고깃집이나 닭볶음탕집, 초밥식당은 물론이고 대형마트의 시식코너, 롯데리아·맥도널드 등 패스트푸드점에서 실내 동물원까지 다양하다. 그들은 거리낌이 없다. 언제 어디서든 대놓고 목에 핏대를 세운다.

이들은 남의 영업장에 무단으로 침입하여 영업을 방해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죄의식이 없다. 자신들의 시위 장면도 여과 없이 소셜미디어(SNS)에 올린다. 자신들의 모습은 물론이고 현장에 있던 일반인의 얼굴도 그대로 내보낸다. 영업 방해, 초상권 침해 같은 개념은 아예 없다. 윤리적 불감증이다.

그들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음식 산업 시스템’의 폐해에 대해서 비판하고 싶은 모양이다. 소를 예로 들어보자. 원래 소는 초식동물이다. 들판의 풀을 먹고 자라야 한다. 가축화된 소도 마찬가지다. 작물과 함께 소를 함께 기르는 것은 생물학적 상생 논리에 맞다. 작물은 소의 먹이가 되고, 소의 분뇨는 반대로 작물의 영양분이 된다.

하지만 현대 사육 시스템에서 소를 방목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신 소를 ‘집중 가축사육 시설’에 밀어 넣고, 풀이 아닌 옥수수가 주성분인 곡물을 사료로 먹인다. 운동은커녕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든 열악한 환경에서 집중적으로 사육되고 도살되어 고기로 팔려 나간다. 인간다운, 아니 동물다운 삶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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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사람들에게 채식을 하라고 강요할 순 없다. 현대 음식 산업의 시스템이 폭력적이라면 그것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 식당에서 요리사가 스테이크를 굽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누구도 사람들에게 채식을 하라고 강요할 순 없다. 현대 음식 산업의 시스템이 폭력적이라면 그것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 식당에서 요리사가 스테이크를 굽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음식 산업 시스템 고민해야

DxE 회원들의 행동은 이러한 측은지심(惻隱之心)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번지수가 틀렸다. 현대 음식 산업 시스템은 옥수수 농장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가장 말단에 개별 식당과 맥도널드가 있다. DxE가 이런 상황을 바꾸고 싶다면, 이런 문제를 야기한 현대 음식 산업 시스템 자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산업적 먹이사슬 (industrial food chain)’의 가장 말단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자신들의 문제 제기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제도, 시스템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식객(食客)이나 관람객들을 볼모로 삼아 무슨 한풀이라도 하자는 것인가.

‘음식이 아니라 폭력입니다’라는 그들의 구호는 생경하다.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비문(非文)이다. 아마도 영문 ‘It’s not food. It’s violence’를 가져온 것 같다. 그들은 현대 음식 산업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싶은 모양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의 의견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또 다른 폭력을 저지르고 있다.

인간은 잡식 본능을 가진 동물이다. 누구도 사람들에게 채식을 하라고 강요할 순 없다. 현대 음식 산업의 시스템이 폭력적이라면 그것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육식 자체가 폭력이라고 주장하고, 육식을 거부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폭거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미래에 더 많은 사람을 먹여 살려야 할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먹여 살려야 한다.” 진화생태학자 조너선 실버타운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현대의 음식산업 시스템을 개선하려면, 우리는 미래의 식량 조달 방법도 고려해야만 한다.

DxE의 주장처럼 ‘동물권’이 있다면 ‘식물권’도 문제가 된다. 동물만이 아니라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실험 결과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들의 채식도 폭력이라는 모순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단순히 식당에 난입하여 다짜고짜 고기 먹지 말라고 외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김진국 문화평론가, 고려대 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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