잰더 쇼플리는 8월 1일 도쿄올림픽 골프 남자부 경기에서 1타 차 승리를 거두며 아버지의 꿈이던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진 연합뉴스
잰더 쇼플리는 8월 1일 도쿄올림픽 골프 남자부 경기에서 1타 차 승리를 거두며 아버지의 꿈이던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진 연합뉴스

미국의 잰더 쇼플리(28)와 토니 피나우(32)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의 양대 미스터리였다. 장타 능력부터 쇼트 게임까지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실력을 갖추고 있고 매 대회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면서도 이들은 마법이라도 걸린 듯 몇 년씩 ‘준우승 징크스’를 털어내지 못했다. 둘은 나란히 수십 차례 톱10에 들고 준우승도 나란히 8차례나 하면서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넘어졌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쇼플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보고 있다. 대회에 나올 때마다 우승이 바로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한다. 여러 차례 문을 두드렸지만 망쳐버렸고 때때로 숨이 막혔다”고 토로했었다. 피나우는 ‘긍정의 화신’이었다. 그는 “내 마무리 능력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있는 것은 알지만, 내 최종 라운드 성적은 사실 꽤 좋다. 한 명이 매번 나보다 경기를 더 잘해서 우승을 가져가니 운의 문제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아무 문제 없으니 곧 우승할 것이라는 자기 최면을 거는 듯했다.

준우승 징크스에 대처하는 둘의 스타일은 달랐지만, 미 PGA투어의 양대 미스터리는 2021년 8월에 한꺼번에 풀렸다.

이 두 선수의 경우는 ‘준우승 징크스는 어떻게 풀리는가’를 들여다볼 절호의 기회였다. 쇼플리는 독일·프랑스계 후손인 아버지와 대만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2017년 PGA투어 신인상을 받았고 2019년 1월까지 투어 통산 4승을 올렸다. 그 후 2년이 넘는 기간 마스터스, 투어 챔피언십 같은 큰 대회를 포함해 준우승만 8번 했다.

쇼플리는 8월 1일 일본 사이타마현 가와고에의 가스미가세키 컨트리클럽(파 71)에서 끝난 2020 도쿄올림픽 골프 남자부 경기에서 최종 합계 18언더파 266타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9년 1월 센트리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에서 통산 4승째를 거둔 뒤 2년 7개월 동안 이어지던 우승 갈증을 푼 것이다.

쇼플리는 1타 차 단독 선두를 달리던 18번홀(파 4)에서 티 샷이 페어웨이를 크게 벗어나 위기를 맞았다. 올림픽에서도 준우승 징크스가 재현되는 듯했다. 그런데 쇼플리는 안전하게 페어웨이로 공을 레이업 한 후 세 번째 웨지 샷을 핀 1.2m 거리에 붙였다.

마지막 퍼트를 앞두고 중압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쇼플리는 “이건 단지 1.2m짜리 퍼트일 뿐이다. 성공하기만 하면 된다. 별일 아니다”라고 주문을 외웠다. 그는 파 퍼트에 성공해 금메달을 확정했다. 쇼플리는 평소 “쓸데없이 매우 급하게 경기한다. 기대를 낮추고 참을성을 발휘하면서 억지로 밀어붙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했지만, 현실에선 번번이 실패했었다. 그런데 어떤 반전이 있었던 것일까?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올림픽 금메달을 선물하겠다는 꿈을 갖고 골프를 했다.

독일인인 그의 아버지는 20세 때 10종 경기 선수로 독일 대표팀으로 발탁됐으나 음주운전자가 운전하는 차에 치여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올림픽 출전 꿈은 물거품이 됐다. 쇼플리는 우승 후 인터뷰에서 “나는 다른 어떤 것보다 이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었다. 그게 나에게 더 부담을 줄 수도 있었지만, 아버지와 함께 메달을 따기 위해 오랜 시간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바쳤다. 이 메달은 아버지에게 드리고 싶다. 나에겐 골프 이상의 의미다.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정말 정말 기쁘다. 행운이다”라고 감격했다. 이런 아들이 시상식 무대에 서는 모습을 아버지 슈테판이 눈물을 흘리며 지켜봤다. 쇼플리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이 결정적인 순간 더 큰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토니 피나우는 8월 24일 미 PGA투어 플레이오프 1차전 노던 트러스트에서 우승하며 5년 5개월간 이어지던 준우승 징크스를 끝냈다. 사진 AP연합
토니 피나우는 8월 24일 미 PGA투어 플레이오프 1차전 노던 트러스트에서 우승하며 5년 5개월간 이어지던 준우승 징크스를 끝냈다. 사진 AP연합

가난과 싸우며 골퍼의 꿈을 키운 피나우

피나우는 쇼플리보다 곱절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2016년 첫 우승 이후 5년 5개월(1975일) 동안 142개 대회를 치르면서 준우승 8회, 톱10 39회에 그쳤다. 하지만 마침내 8월 24일 미 PGA투어 플레이오프 1차전 노던 트러스트에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선두에 2타 뒤진 채 최종 라운드를 출발해 후반 9개 홀에서 이글 1개, 버디 3개를 뽑아내며 합계 20언더파 264타로 공동 선두가 되고 연장전에서 티샷 OB(아웃오브바운즈)를 낸 캐머런 스미스(28·호주)를 꺾었다.

그는 이날 “온 세상 앞에서 패배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나 자신을 끝까지 믿었다. 믿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피나우는 벌크업으로 몸을 헐크처럼 만든 브라이슨 디섐보(미국)와 나란히 볼 스피드가 200마일을 넘는 ‘200클럽’ 회원이다. 키 193㎝, 체중 90㎏인 그는 NBA(미 프로농구) 선수 같은 몸매에서 골프공을 찢어 버리는 듯한 장타를 뿜어낸다. 하지만 티 샷의 정확성과 마무리 퍼팅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5년이나 우승 가뭄이 이어지면서 더 이상은 힘들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쏟아졌다. 피나우의 ‘헝그리 정신’을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통가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그의 아버지는 항공사에서 심야에 화물 운송 준비하는 일을 하며 7남매를 키웠다. 어려서부터 골프에 소질을 보인 그는 14세 때까지 차고에서 샷을 연습했다. 14세 때 어머니와 사흘간 차에서 자고 햄버거만 먹으면서 대회에 나선 적도 있다. 어머니는 사흘 내리 굶었다고 한다.

18세 때 여러 대학 골프팀 입학 제의를 받았으나, 진학을 포기하고 프로로 전향했다. 7년 동안 그는 미니 투어를 전전하며 번번이 PGA투어 Q스쿨에서 탈락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피나우는 “절대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2014-2015시즌 꿈에 그리던 1부 투어에 데뷔해 2016년 투어 첫 승을 거뒀지만 또 한 번 긴 좌절의 시간을 겪어야 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무한 긍정과 노력으로 그 시간을 버텼다. 5년여 만에 우승한 그는 “오랜 기다림의 세월이 나를 훨씬 더 좋은 선수로 만들어줬다. 무엇도 그냥 주어지는 건 없다. 노력해서 얻어내야만 한다”고 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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