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전멸 계획 임무를 안고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 사진 IMDB
인류 전멸 계획 임무를 안고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 사진 IMDB

종결자라는 뜻의 ‘터미네이터’는 1984년 겨울에 개봉했다. 영화 속 시간도 1984년이다. 1984년은 문학적으로 상징성이 큰 해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빅 브러더가 지배하는 전체주의 세상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깊은 밤, 벌거벗은 두 남자가 하늘에서 떨어진 듯 화면에 등장한다. 타임머신에서 막 빠져나온 그들은 2029년의 미래에서 온 사이보그 T-800(터미네이터) 그리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 카일 리즈다. 그들이 45년을 거슬러 과거로 날아온 이유는 단 하나, 사라 코너 때문이다. 다만 그들의 임무는 정반대, 터미네이터 T-800은 사라를 죽이는 것, 카일은 그녀를 지켜내는 것이다.

T-800은 전화번호부에서 ‘사라 코너’란 이름을 찾아내 순서대로 죽인다. 뉴스 보도를 통해 자신과 같은 이름의 여자들이 차례로 살해당하고 있는 걸 알게 된 사라는 두려움에 떤다. 마침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나 총구를 들이댄 터미네이터. 하지만 위기의 순간, 카일이 그녀를 구해낸다.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뼈대는 기계인 터미네이터는 고통도 기쁨도, 연민이나 공포도 느끼지 못한다. 총을 맞아도 죽지 않고 몸이 동강 나도 곧바로 일어선다. 고장 나고 손상된 신체의 일부는 자동차 부품 교체하듯 간단히 바꾸고 복구한다. 무엇보다 T-800은 입력된 임무를 완수하기까지는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그런 괴물이 왜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라를 죽이려는 것일까? 터미네이터의 추격을 피해 잠시 숨을 돌리는 동안 카일은 혼란에 빠진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과학의 급속한 발전으로 미래는 곧 빅 브러더, 아니 스카이 넷이라 불리는 컴퓨터 시스템에 의해 통제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 프로그램이 인간을 제거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순식간에 핵무기 버튼을 작동시켰다. 그 결과 지구는 죽음의 땅이 되었고 인간을 사냥하는 기계들이 겨우 생존한 사람들마저 거의 다 죽여 버렸다.

그렇게 인류가 멸종될 위기, 두려움에 떨고만 있던 그들에게 저항하라고 일깨워준 사람이 있었다. 반란군을 조직하고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고 비전을 제시하며 우리가 해내야만 한다고 이끌어준 지도자 존 코너, 그가 바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라의 아들이다. 존이 훌륭한 전사가 될 수 있었던 건, 사라 코너가 그렇게 가르치고 훈련시켰기 때문이다.

스카이 넷은 인류를 전멸시키겠다는 계획을 방해하는 반란군의 대장, 존 코너의 가능성을 잘라버리기 위해 터미네이터를 과거로 보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존 코너 또한 자기 자신과 인류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어머니 사라를 보호하기 위해 카일을 보낸 것이다.

터미네이터는 말 그대로 눈에 불을 켜고 사라를 추적한다. T-800은 무수한 총탄 세례를 받아도, 눈앞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져도 끄떡없다. 반면, 카일은 미래 세계에서 사이보그들과 숱한 전쟁을 치르며 살아남은 용사라고는 해도 피를 흘리는 인간이다. 1984년의 현실에서는 T-800을 처리할 성능이 있는 무기도 없다. 대체 어떻게 무엇으로 터미네이터를 제거하고, 사라를 살리고 미래의 영웅을 지켜 인류를 구할 것인가?

‘터미네이터’는 제임스 카메론이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해서 크게 성공시킨 첫 번째 영화다. 어느 날 꾼 악몽에서 영감받아 시나리오를 쓴 그는 영화사를 찾아다녔다. 제작사들은 시나리오는 사겠다고 하면서도 당시 무명이던 그에게 감독을 맡기려고는 하지 않았다. 돈 한 푼이 아쉬웠지만 감독이 되는 게 꿈이었던 그는 인생을 걸고 베팅한다. 시나리오를 1달러에 팔 테니 감독을 맡겨달라고 한 것이다.

기계와 인간의 전쟁, 인간을 제압하는 사이보그, 인류를 구원할 단 한 명의 영웅, 절체절명의 순간에 운명적으로 만난 남자와 여자,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남자, 눈코 뜰 새 없이 벌어지는 레이싱과 총격전, 죽었겠지 싶으면 또다시 되살아나 쫓아오는 끝없는 스릴. 관객이 원하는 걸 전부 담아낸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성공했고 이후 그는 ‘에일리언’ ‘타이타닉’ ‘아바타’ 등 세계 최고의 흥행 감독이 되었다.

터미네이터를 1984년으로 보낸다는 설정은 재미있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1984년으로 설정한 것인지, 제작 여건이 1984년에 개봉하도록 우연히 맞아떨어져서 영화 속 시간도 그에 맞춘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개인의 자유가 말살된 빅 브러더의 통제 사회를 상징하는 1984년은 이 영화에서도 인류의 미래가 결정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스카이 넷은 빅 브러더보다 더 끔찍한 세계, 인간이 말살된 세상의 완성을 위해 종결자를 보내지만 계획은 실패한다. 오히려 그들의 계략이 스카이 넷을 무너뜨릴 인간 영웅을 잉태시킨다. 그들이 죽이려 했던 사라 코너와 터미네이터를 저지하러 온 카일 리스가 인류의 새로운 미래와 희망을 태동시킴으로써 ‘1984’가 상징하는 세계를 무너뜨려 버린 것이다.

그들이 터미네이터를 보내지 않았다면 존 코너도 없는 것인가, 존 코너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카일을 과거로 보낸 것일까, 시간여행에서 생겨난 모순과 의문은 영화가 주는 또 다른 재미다.

인류가 앞으로 맞이할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만약 인류를 장악하려는 미래의 악당이 터미네이터를 현재로 보낸다면 무엇을 제거하려 할까. 우리는 그들로부터 무엇을 지켜내야 하는 것일까.

‘스타워즈’가 낳은 불멸의 대사 “내가 네 아비다(I’m your father)”처럼, ‘터미네이터’에도 간판 대사가 있다. 1편보다는 1991년에 개봉한 2편에서 강렬하게 관객의 뇌리에 박힌 한 마디 “다시 돌아오마(I’ll be back)”가 그것이다. 그런데 영화 초반, 더 마음에 남는 대사가 있다. 소소하게 부딪히는 짜증스러운 일상 앞에서 사라가 어쩔 줄 몰라 하자 그녀의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100년 뒤에 누가 이걸 신경이나 쓰겠어, 하고 넘겨 버려.”

미래를 위해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100년 후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일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잃어버리지 않기. 동시에 100년 후에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사소한 오늘이지만, 이토록 아무렇지 않은 자유로운 일상을 절대로 빼앗기지 않기.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