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골프의 기대주 김한별이 지난해 제36회 신한동해오픈에서 우승하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다. 사진 신한금융그룹
한국 골프의 기대주 김한별이 지난해 제36회 신한동해오픈에서 우승하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다. 사진 신한금융그룹

오랫동안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여자골프 인기에 치여 평가 절하되곤 하지만 한국 남자골프는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많은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우승을 거둔 ‘아시아의 호랑이’다.

2002년 5월 6일 한국인으로는 처음 미국 PGA투어 우승컵을 들어 올린 최경주를 시작으로 2021년 5월 16일 이경훈까지 8명이 19승을 올렸다. 최경주는 아시아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8승을 거두었고, 양용은은  2009년 PGA챔피언십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메이저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골프 역사도 훨씬 길고 프로 무대 사정도 한국보다 훨씬 넉넉한 일본은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마쓰야마 히데키(6승)를 포함해 5명이 12차례 정상에 올랐다.

한국 남자골프가 이렇게 아시아의 호랑이가 되는 날을 꿈꾸며 재일동포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1981년 만든 대회가 신한동해오픈이다. 올해 37회를 맞은 신한동해오픈은 9월 9일부터 나흘간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클럽에서 열린다. 이 대회는 하나의 밀알처럼 한국 골프 발전에 기여했다.

처음 대회를 만들었던 원년 멤버인 재일동포 사업가 최종태 야마젠 그룹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대부분 식민지 시대를 몸으로 겪었던 재일동포 1세대들의 애국심은 대단했다. 일본에서 어렵게 사업에 성공한 이들이 사업을 하기 위해선 골프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골프장에서 자주 모임을 갖게 됐다. 일본은 당시 미국을 제치고 세계 경제의 넘버원을 바라볼 정도로 대단한 기세였다. 일본의 골프 인기가 엄청나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때 모국의 골프계와 친선을 도모하고 한국의 골프 발전과  우수 선수가 나올 수 있도록 이바지하기 위해선 한국에서 국제 수준의 대회를 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간사이 지역 경제인들이 뜻을 모은 게 신한동해오픈이었다.”

왜 대회 이름을 동해(東海)오픈이라고 지었을까? 동해는 재일동포들에게 고향을 상징하는 어머니 같은 단어다. 일본에서 모국을 보려면 동해 쪽을 바라봐야 한다고 해서 ‘신한동해오픈’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제1 회 대회가 9월 8일부터 11일까지 남서울 컨트리클럽에서 열렸다.

국내에 변변한 골프 대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 최대 규모인 1500만원의 상금이 걸린 프로 대회가 만들어진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국 남자골프 원로인 한장상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고문은 신한동해오픈의 탄생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제1회 및 2회 신한동해오픈 우승을 차지했다. “1981년 신한동해오픈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뛸 듯이 기뻐했다. 당시에는 골프 대회가 많지 않았다. 물론 선수도 적었다. 우리나라 골프가 발전하려면 대회가 늘어나야 했다. 그래야 선수도 늘어나니까. 그런 의미에서 신한동해오픈이 큰 역할을 했다. 대회 수가 하나 늘어난 것 자체도 좋았지만 특히 상금이 상상 이상으로 많았거든. 그때 선수들이 정말 신나 했던 기억이 난다.”

골프 대회 개최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일반적으로 총상금의 몇 배 비용이 코스 임대, 갤러리 서비스 등 보이지 않는 곳에 쓰인다. 한국의 골프 발전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대회를 만든 재일동포들의 뜻은 신한금융그룹(당시 신한은행)이 1989년 대회부터 타이틀 스폰서로 나서면서 더 확장됐다. 대회 이름이 오늘의 신한동해오픈이 된 까닭이다. 국내 최고 상금의 골프 대회라는 타이틀을 안고 등장한 신한동해오픈은 총상금 규모를 꾸준히 늘려 1986년 1억원, 2002년 5억원, 2011년 10억원, 2016년 12억원 그리고 36회부터는 국내 최고 수준인 14억원까지 약 100배가량 상승했다.

한국남자골프투어 최다승 기록을 갖고 있는 최상호 프로는 이렇게 말했다. “프로들은 어떤 대회라도 우승하면 최고로 여긴다. 그런데 몇 번 우승을 하고 나면 상금이 큰 대회는 더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상금이 크니까 프로들이 더 기를 쓰고 대회에 임한 기억이 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신한동해오픈이 우리 남자 프로들에게 여러모로 큰 도움을 줬다.” 2014년 신한동해오픈은 대회 개최 30주년을 맞으면서 명실상부한 메이저급 대회로 인정을 받는다.

KPGA가 내셔널 타이틀 대회인 코오롱 한국오픈과 KPGA가 여는 KPGA선수권대회에 이어 세 번째로 신한동해오픈 우승자에게 5년간의 투어 시드권을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KPGA는 지금도 메이저대회를 뚜렷이 구분하지는 않지만 국내 골프 발전에 대한 신한동해오픈의 기여와 사회 공헌 활동을 높이 평가해 그 같은 결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1년 제1회 대회 우승자 한장상(가운데)과 시상자 고(故) 이희건 전 신한은행 명예회장. 사진 신한금융그룹
1981년 제1회 대회 우승자 한장상(가운데)과 시상자 고(故) 이희건 전 신한은행 명예회장. 사진 신한금융그룹

스포츠로 바람직한 한·일 관계 모색

신한동해오픈은 그동안 36차례 대회를 치르면서 최경주, 배상문, 박상현, 김민휘, 안병훈, 류현우, 김한별 등 우승자들을 배출했다. 국제 무대에서 한국 골프의 이름을 높인 레전드부터 앞으로 또 높여나갈 기대주까지 우승자의 면면을 보면 한국 골프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던 재일동포들의 진심이 지금도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한동해오픈은 2016년 아시안투어와 공동 주관한 데 이어 2019년부터는 코리안투어, 아시안투어 그리고 일본프로골프투어(JGTO)가 공동 주관하는 대회로 위상을 높여 나갔다. 아시아의 정상급 선수들이 모두 참가해 최고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대회가 된 것이다. 2019년 대회에는 일본투어 상위 랭커 41명이 출전했는데 그렇게 많은 일본 선수가 한국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이 대회는 진정한 극일(克日)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한다. 최경주와 양용은, 배상문, 임성재 등 미국 PGA투어에서 활약한 한국 선수 대부분이 한국에서 성장해 일본투어에서 경험을 쌓은 뒤 미국 무대로 진출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아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올리는 한국 골퍼들을 보며 일본 선수들도 많은 자극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일본 지인들에게 들었다.

신한동해오픈은 스포츠를 통한 바람직한 한·일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재일동포로 신한은행 초대 회장을 지낸 고(故) 이희건(1917~2011년) 명예회장이 세운 이희건 한일교류재단은 2018년 11월 일본 고베에서 ‘제1회 이희건 한·일교류재단배 한·일 스내그 골프 교류전’을 열었다. 스내그 골프는 플라스틱 클럽으로 쉽고 재미있게 골프를 하는 미니 골프 게임이다. 2019년 신한동해오픈은 대회 기간 한국과 일본 초등학교 학생 20명씩 참가한 제2회 ‘이희건 한·일교류재단배 한·일 스내그 골프 교류전’을 열었다. 당시 최악을 치닫던 한·일 관계 속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어린이 그리고 학부모들이 우정을 나누었다. 처음엔 한국에 오는 게 불안했다던 일본인들이 떠나는 공항에서 따뜻하게 맞아준 한국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모습은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10여 년간 신한은행 일본 법인에서 근무한 바 있는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여건이 된다면 재일동포들이 신한동해오픈을 만들자는 결의를 했던 일본의 큰 코스에서 대회를 열고 대회 창설위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자리를 꼭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고 말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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