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팬들이 한국 아이돌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장식한 제주에어 비행기. 중국 SNS 웨이보는 중국 당국의 단속에 9월 5일 지민 팬클럽 계정을 60일간 정지하고, 생일 기념 게시물을 삭제했다. 사진 연합뉴스
중국 팬들이 한국 아이돌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장식한 제주에어 비행기. 중국 SNS 웨이보는 중국 당국의 단속에 9월 5일 지민 팬클럽 계정을 60일간 정지하고, 생일 기념 게시물을 삭제했다. 사진 연합뉴스

아이돌 팬클럽은 서울 지하철역 광고 시장의 큰손이다. 강남, 홍대입구, 건대입구 등 주요 지하철역은 일 년 내내 팬클럽이 내 건 광고로 도배돼 있다. 팬클럽은 자체 모금을 거쳐 멤버의 생일, 그룹의 데뷔 기념일 등 특정한 기간에 맞춰 광고를 산다. 2010년대 초반부터 생겨난 강남역, 홍대입구역 같은 서울 주요 지하철역은 아이돌 팬클럽의 전쟁터다.

2011년부터 시작된 이 문화는 해를 거듭할수록 급성장해 왔다. 2014년 76건에 불과했으나 2019년에는 2166건으로 5년간 30배 가까이 폭증했다. 지하철 광고가 팬들의 연례행사가 되면서, 거대 팬덤은 양과 질에서 군소 팬덤을 압도한다. LED 광고로 벽을 세우고, 특정 역에 가야 볼 수 있는 광고를 역마다 달리 집행한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보도에 따르면, 2호선에 광고 하나를 집행하기 위해서는 한 달 기준 최대 450만원 정도로 알려졌다. 대형 팬덤의 경우 주요 역마다 광고를 걸고, 부대 이벤트까지 해야 하니 만만찮은 비용인 셈이다. 해외에도 인기 있는 K팝 아이돌의 경우, 해외 팬덤의 화력이 막강하다. 특히 중국 팬덤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같은 ‘월드스타’는 물론이고 아이돌 문화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웃할 이들에게도 중국 팬덤은 꽤 큰 금액을 모은다.

8월 31일은 걸그룹 아이즈원의 멤버였던 장원영의 생일이었다. 이미 해체한 팀인 데다가, 솔로 활동도 하지 않는 장원영 팬덤은 이 시기를 즈음하여 서울 지하철역을 장원영으로 도배했다. 주요 지하철역은 물론이고, 열차 내부의 스크린까지 장원영의 사진과 영상을 송출했다. 장원영 팬클럽이 산 광고판만 1200개 이상으로 추산되는데 이 돈의 대부분은 중국 팬클럽에서 나왔다. 중국 팬클럽은 몇 달 전부터 웨이보 공식 계정을 중심으로 모금 행사를 진행, 약 3억6000만원을 모았다.

잠깐, 여기서 하나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아이즈원과 장원영은 중국에서 정식으로 데뷔한 적이 없다. 프로듀스 시리즈는 중국에 방영된 적이 없고, 아이즈원과 장원영 또한 한국과 일본에서만 활동했다. 알다시피 중국에서는 유튜브를 비롯한 서구 소셜미디어(SNS)를 쓸 수 없다. 중국 현지에서 공식적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어떻게 이렇게 많은 팬을 모으고, 자금과 행동력을 끌어낼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만큼 많은 팬이, 즉 중국 인민을 통제하고자 쌓아둔 ‘인터넷 만리장성’ 바깥에서 활동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대중문화 정풍운동’에 착수했다. 여태껏 볼 수 없던, 강력한 조치가 연일 시행되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종영을 앞두고 폐지됐고, 외국 국적 연예인들이 퇴출됐다. 중국 최대의 SNS인 웨이보에서 연예인 관련 계정 수천 개가 일거에 날아갔다. 그중에는 당연히 K팝 아이돌의 계정도 적지 않다. BTS, EXO, NCT 등 대표적인 K팝 스타는 물론이고 아이유, 레드벨벳 슬기 등 20개 이상의 계정이 시행 당일 사라지거나 정지됐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계속해서 정지 계정이 늘어나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의 고향인 경기 고양시에 그의 얼굴로 건물 벽면을 가득 채운 벽화가 등장했다. 고양시는 BTS 팬클럽 아미와 협력해 일산동구 고양관광정보센터 건물 벽면에 가로 18m, 세로 12m 규모의 대형 벽화를 조성했다. 벽화는 RM의 생일인 10월 12일에 맞춰 완성될 예정이다. 사진 연합뉴스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의 고향인 경기 고양시에 그의 얼굴로 건물 벽면을 가득 채운 벽화가 등장했다. 고양시는 BTS 팬클럽 아미와 협력해 일산동구 고양관광정보센터 건물 벽면에 가로 18m, 세로 12m 규모의 대형 벽화를 조성했다. 벽화는 RM의 생일인 10월 12일에 맞춰 완성될 예정이다. 사진 연합뉴스

과거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보복 차원에서 내렸던 한한령(限韓令)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한한령이 한국 대중문화를 배격하는 정도였다면, 정풍운동은 중국 청년들에게 인기 있는 연예인과 팬덤 문화를 짓밟겠다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가속화하고 있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우상화 및 공산당 일당 독재 강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공산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제2의 톈안먼(天安門)’이다. 1989년 6월 4일, 민주화와 개혁을 요구하며 톈안먼 광장에 모인 시민과 학생들을 덩샤오핑(鄧小平) 정권이 총과 탱크를 동원해서 학살한 이 사건은 중국 사회에서 절대 금기어에 가깝다. 오죽하면 중국인의 디도스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 국내 사이트에 톈안먼 관련 단어들을 심어 놓겠는가. 중국의 경제 성장이 고도화하고, 세계의 디지털화가 진행됨에 따라 중국 당국은 병적으로 공산당 조직이 통제할 수 없는, 인민들 간의 담화 네트워크를 막아 왔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튜브를 막아 왔고 반체제 인사를 가택 연금시켰다. 어떠한 반체제적 정보도 만리장성 안에서는 유통되지 않았다. 중국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당연했던 ‘상수(常數)’에 격변에 가까운 ‘변수(變數)’가 발생한 이유는 시진핑 우상화와 종신집권 체제의 걸림돌이 팬덤의 조직력과 행동력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 아닐까.

한 시간 만에 4억원을 모았다는 BTS 지민 팬덤의 사례에서 보듯 아이돌 팬덤은 모든 것을 갖고 있다. 자금력과 행동력, 그리고 집행력. 거기에 효과적인 문구를 고르고 이를 디자인할 수 있는 능력, 해외 매체를 상대로 비즈니스할 수 있는 소통 능력, 해외 현지 정보를 습득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술력까지. 어떠한 이해관계나 신념에 엮이지 않고도 이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집단이 어디 있을까. 오직 팬덤뿐이다. 중국 전역에서도 도시 청년들이 주요 구성원이기도 하다.

만약 이들 사이에 시진핑과 중국 공산당에 대한 불온한 생각이라도 퍼진다면? 이는 온라인상에서 ‘제2의 톈안먼’이 발생하는 것과 같다. 과거 덩샤오핑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디지털과 팬덤이라는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발판으로 하는 그 힘은 파룬궁에 비할 바 아닐 것이며, 한족과 소수민족의 구분마저 지울 수 있다. 특히 K팝 팬덤은 단순히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소비하는 걸 넘어 적극적으로 뭉치고 사회 활동에 나서는 집단이다. BTS 팬덤인 아미가 전 세계적으로 보이는 결집력과 행동력을 보라. 20세기 대중문화가 출범한 이래 처음으로 도래한 문화인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엔 한국 아이돌의 열광적 팬들이 존재해 왔다. K팝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한류(韓流)’라는 단어도 중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많은 중국 예능 프로그램이 한국 것을 베끼다시피 했고 한국 아이돌을 따라 하는 중국 아이돌도 부지기수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팬덤 문화 또한 한국의 그것과 많은 유사점을 보일 수밖에 없다.

올해는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다. 이에 따라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중화사상을 강화하는 중국의 정풍운동이 성공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시진핑 정부의 지지도는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진다.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중국의 많은 통계는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또 하나 알고 있다. 금지된 대중문화란 더 많은 열망을 낳는 법이란 걸. 금지된 걸 사랑하는 이들끼리는 더욱 뭉치고자 한다는 걸.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중국의 대중문화 정풍운동을 보며 셈이 복잡해지는 이유다.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 한국 대중음악상 선정위원, MBC ‘나는 가수다’, EBS ‘스페이스 공감’ 기획 및 자문위원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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