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레스서’ 표지.
‘벨레스서’ 표지.
벨레스 도시 전경. 사진 김진영
벨레스 도시 전경. 사진 김진영

유럽 발칸반도에 있는 마케도니아의 작은 도시 벨레스(Veles)가 불현듯 세계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2016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벨레스를 두고 열변을 토하고 기자들의 취재 경쟁이 펼쳐졌다. 가짜 뉴스 생산 공장, 디지털 골드 러시로 묘사된 이곳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1991년 마케도니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벨레스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 한때 도자기 산업과 철광 산업으로 번성한 도시였지만 인구가 5만5000명인 이 소도시는 경제적 기반을 상실해버렸다. 일자리가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던 벨레스의 젊은이들에겐 사회적 선에 대한 고민보다 당장의 수익이 훨씬 달콤한 것이었다.

2016년 2월, 벨레스의 일부 10대 청소년들은 웹사이트의 트래픽을 대거 발생시키면 알고리즘에 따라 광고가 게시되며, 그에 따른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최소한의 시간으로 최고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막힌 방법을 발견한 이들 가운데는 학교를 그만두고 이 일에 매달린 친구도 있었다. 이들은 가장 많은 트래픽을 발생시킬 수 있는 소재로 2016년 11월에 펼쳐질 미국 대선을 택했다. 멀리 떨어진 미국이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데일리인터레스팅싱즈닷컴’ ‘뉴욕타임스폴리틱스닷컴’ ‘폴리틱셸닷컴’ 등 그럴듯해 보이는 웹사이트를 만들고, 인터넷 어딘가에서 찾은 근거 없는 글을 퍼오고 짜깁기해 기사로 둔갑시킨 후 웹사이트에 게재했다. 다양한 국적의 페이스북 계정을 구매한 후, 미국 정치 관련 페이스북 페이지에 자신들이 만들어둔 가짜 뉴스 링크를 올렸다. 가장 많이 공유된 가짜 뉴스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이 웹사이트에 들어올수록 광고 수익은 커졌고 이들은 찬란한 미래를 꿈꿨다. 아주 잠시 동안 말이다.

기성 언론사들에 의해 가짜 뉴스 사이트 도메인 백여 개가 벨레스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가짜 뉴스로 인한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이 같은 웹사이트에 대한 광고 중단 조치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이들이 누렸던 잠깐의 영광도 사라졌다. 하지만 이들이 일으킨 파장은 너무나 크고 충격적이었다.

사진가 조나스 벤딕슨(Jonas Bendiksen) 역시 미국과 멀리 떨어진 벨레스의 10대 청소년들이 정치적 목적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이유로 벌인 행동이 미 대선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꼈다. 그는 이 사례가 현재 우리가 겪고 있고 앞으로 더욱 중요하게 마주해야 할 문제, 즉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그리고 우리가 이를 판별해낼 수 있는가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벨레스의 사례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벨레스서(The Book of Veles·2021)’를 출간했다.

필자는 흥미로운 사회 문제를 담은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서점에 입고시켜 책 소개 글을 서점 SNS 채널에 올렸다. 보통 신간이 입고되면, 출판사의 책 소개 글, 작가의 인터뷰, 매체 기사 등을 두루 살펴보는데, 이 책은 인터뷰나 기사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아직 발간된 지 얼마 안 돼서겠지’라고 생각하고, 적어도 잘못된 정보가 올라가진 않도록 잘 살핀 후 글을 올렸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지금까지 수백 권의 책을 소개했지만 잘못된 정보를 게재한 적은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없었다.


(왼쪽 페이지) 실제 인용문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GPT-2에 의해 생성된 문장. (오른쪽 페이지) 사람이 없는 장면을 촬영한 후 가상의 아바타를 합성하여 만든 사진. 사진 김진영
(왼쪽 페이지) 실제 인용문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GPT-2에 의해 생성된 문장. (오른쪽 페이지) 사람이 없는 장면을 촬영한 후 가상의 아바타를 합성하여 만든 사진. 사진 김진영

그런데 이번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 나는 이 책을 소개하면서 ‘조나스 벤딕슨이 벨레스 지역으로 가서 지역과 젊은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이들이 생산한 뉴스의 일부 대목과 이들의 목소리를 텍스트로 담았다’고 썼다. 벨레스의 가짜 뉴스를 다룬 작업이라는 출판사의 짧은 책 소개와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조나스 벤딕슨의 그간의 작업으로 보건대, 저 설명에서 틀린 부분은 있을 수가 없었다.

책이 출간되고 몇 달이 지나서야 비로소 작가가 이 책을 상세히 논한 인터뷰를 찾을 수 있었다. 조나스 벤딕슨은 거짓을 진실로 믿게 한 벨레스의 사례를 탐구하면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사진의 미래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다큐멘터리 포토저널리즘’마저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채, 사진가의 공상과 강력한 컴퓨터 그래픽 카드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되진 않을까. 우리가 차이를 과연 구별해 낼 수 있을까.” 조나스 벤딕슨은 책에 벨레스의 모습을 단지 담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실험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는 우선 컴퓨터 게임이나 영화 산업에서 이용되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을 배우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통하지 않아도 가상의 3D 아바타를 구매하여 사용할 수 있었고 회전시키고 포즈를 취하게 하고 옷을 입힐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벨레스에 갔다. 일부러 사람이 없는 빈 곳만 촬영했고, 사람이 있는 경우 그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사진을 찍었다. 사람을 찍기 위한 노력도 일절 하지 않았고, 가짜 뉴스 파동과 관계있는 사람을 찾아 이야기를 들으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특정 장면은 360도 카메라와 특수 효과 기법을 사용하여 촬영했다. 집으로 돌아와, 그는 또 다른 프로그램을 배워 이 사진들을 3D 공간으로 변형시킨 후, 장면 안에 아바타를 위치시키고 포즈를 취하게 했다. ‘실제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 나라면 이렇게 찍었겠지’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다음으로 그는 딥러닝을 통해 입력받은 텍스트를 기반으로 새로운 텍스트를 생성하는 언어 모델인 GPT-2에 벨레스와 관련된 모든 영어로 쓰인 기사를 입력시켰다. 이를 토대로 이 인공지능(AI)은 5000자 분량의 에세이를 완성했고, 조나스 벤딕슨은 자르고 붙이는 등 글의 흐름만 가다듬은 이 글을 책에 수록했다. “미디어는 타락했습니다” “사이버 세계에는 도덕적 규율이 없습니다”와 같이 책에 수록된 모든 인용문 역시 GPT-2가 생성했다.

조나스 벤딕슨은 이같이 진실과 거짓이 섞여 있다는 점을 밝히지 않은 채 우선 책을 출간했다. 출판사의 책 소개 글에도 제한적인 정보만을 담았고, 매체를 통해 책을 소개하는 일도 의도적으로 미루었다. 그가 이 책에 ‘가짜’라는 꼬리표를 최대한 늦게 달려고 했던 것은 독자를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까지가 이 책의 의도였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동료 사진가들 그 누구도 책의 ‘비밀’을 알아채지 못했고, 독자들은 ‘진지하고 좋은 포토저널리즘 작업이다’라든지, ‘에세이가 너무나 훌륭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나 역시 작가가 벨레스 젊은이의 모습을 사진 찍었고, 이들의 목소리를 텍스트로 담았다고 생각했다. 가장 큰 포토저널리즘 페어인 ‘Visa pour l’Image’의 큐레이터들조차 이 작업 속 허구를 눈치채지 못하고 이 작업을 선정했다. 그는 적절한 타이밍을 살핀 후에서야, 작업의 전반적인 방식과 의도를, 즉 ‘진실’을 비로소 밝혔다.

AI와 그래픽 기술이 만들어 낸 허구가 허구라는 점을 우리가 이제 거의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기술은 발전하고 있다. 조나스 벤딕슨은 벨레스의 사례를 통해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앞으로 다가올 다큐멘터리 사진의 위기에 관해 질문을 던지고 독자에게 우리 앞에 다가온 현실을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단기적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거짓을 말하고 가짜 뉴스를 만드는 것은 내 작업의 신뢰성을 스스로 다소 약화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한 발자국 뒤로 감으로써, 두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되길 나는 희망한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