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연 블루원리조트 대표는 “우리 민족의 특징은 사람끼리 잘 어울리고, 게임 붙는 걸 좋아하는 것이다. 고립과 외로움이 현대 문명의 아킬레스건인데 그 묘약을 한국이 갖고 있는 셈이다”라며 “드라마든 노래든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히트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인데 골프장 운영도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사진 민학수 기자
윤재연 블루원리조트 대표는 “우리 민족의 특징은 사람끼리 잘 어울리고, 게임 붙는 걸 좋아하는 것이다. 고립과 외로움이 현대 문명의 아킬레스건인데 그 묘약을 한국이 갖고 있는 셈이다”라며 “드라마든 노래든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히트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인데 골프장 운영도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사진 민학수 기자

2011년 골프 레전드 잭 니클라우스가 “현대인의 바쁜 생활 리듬을 고려하면 18홀 골프는 너무 길다. 12홀 라운드가 적당하다”고 설파하자 많은 이의 호응이 쏟아졌다. 당시 미국 골프 인구는 2006년 대비 여성 골퍼의 20%, 주니어 골퍼의 20%가 줄어들며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새로 생기는 골프장보다 문을 닫는 골프장이 점점 더 많아지던 시절이었다.

‘골프 위기론’을 타파할 해법으로 니클라우스가 18홀 골프를 12홀 골프로 줄이자는 파격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설계했고 운영하는 미국 오하이오주 더블린의 뮤어필드 빌리지 골프클럽의 스코어 카드를 18홀이 아닌 12홀만 인쇄해 만들어 놓기도 했다. 18홀을 다 돌지 않고 12홀만 라운드해도 된다는 것이다. 시대와 맞지 않는 게임의 법칙을 바꾸자는 주장이었다.

세계골프규칙을 관장하는 영국의 R&A(로열 앤드 에이션트 골프클럽)가 1858년 ‘한 라운드는 18홀을 의미하고 별다른 예외 조항이 없을 경우 이를 따른다’며 한 라운드 18홀 원칙을 정했다. 18홀은 골프에서 가장 상징적인 숫자가 됐다. 이후 클럽하우스를 중심으로, 나가면서 도는 9홀 아웃코스와 다시 클럽하우스로 돌아가면서 경기하는 9홀 인코스로 18홀을 구성하는 게 코스 설계의 정석이 됐다.

저렴한 골프, 시간을 줄여 즐기는 골프, 은퇴한 시니어 골퍼나 막 골프를 배우는 자녀와 함께하는 가족 라운드가 꼭 18홀일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18홀 골프’의 아성이 쉽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18홀 골프장에서 12홀만 돌고 끝내는 건 골퍼에겐 마무리를 하지 않은 아쉬움을, 운영자에겐 불편함을 주었다.

미국 골프 전문지 ‘골프다이제스트’는 2년 뒤 ‘9홀 캠페인’을 시작했다. 미국과 세계 각국의 대표적인 베스트 9홀 코스를 발표하면서 “9홀 골프는 여가를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으면서 보다 많은 연령대의 복잡한 수요가 있는 골퍼가 이용할 수 있는 좋은 선택 수단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9홀 골프는 너무 짧다는 의견도 많았다.

10월 15일 개장한 루나엑스(LUNA X) 골프장(경북 경주시 천북면)은 ‘18홀 골프의 한계’를 창조적으로 파괴한 실험이다. 마법의 레시피는 골프 코스의 단위를 9에서 6으로 바꾼 것이다. 이 골프장은 6홀 4개 코스 24홀로 운영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중앙에 클럽하우스가 있고 사방으로 6홀 코스 네 개를 배치한 디자인이다. 2018년 공사를 시작해 4년간의 공사를 마무리하고 정식 개장했다.

골퍼들 상황에 따라 6홀 단위로 24홀까지 선택해서 라운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6홀만 칠 수도 있고 12홀, 18홀, 24홀 등 원하는 방식으로 돌 수 있다. 루나엑스 골프장을 운영하는 블루원리조트의 윤재연 대표는 “골프의 문턱을 낮춰 골프를 처음 하는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와 체력을 안배하여 여유 있게 골프를 즐기려는 시니어 세대를 모두 만족하게 할 수 있도록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0월 15일 개장한 루나엑스 골프장(경북 경주시 천북면)은 ‘18홀 골프의 한계’를 창조적으로 파괴한 실험이다. 이 골프장은 6홀 4개 코스 24홀로 운영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중앙에 클럽하우스가 있고 사방으로 6홀 코스 4개를 배치했다. 사진 루나엑스
10월 15일 개장한 루나엑스 골프장(경북 경주시 천북면)은 ‘18홀 골프의 한계’를 창조적으로 파괴한 실험이다. 이 골프장은 6홀 4개 코스 24홀로 운영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중앙에 클럽하우스가 있고 사방으로 6홀 코스 4개를 배치했다. 사진 루나엑스

완전 노 캐디에 샤워도 유료 선택제

루나엑스는 한국 골프장의 오랜 틀도 바꾸고 있다. 완전 ‘노 캐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카트는 전 코스를 자동으로 주행하고, 코스 정보가 내장된 노트북을 지급한다. 골프장 입장 때 격식을 갖춘 복장이 아니라 아예 골프 복장으로 오는 걸 추천한다.

클럽하우스는 1, 2층 라운지에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소형 로커룸이 있다. 유료로 1인 샤워장과 대형 로커룸도 운영해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루나엑스 골프장은 골프장 이용료와 카트비를 합해서 주중 6홀 기준 5만~8만원이다. 18홀 기준으로는 주중 12만5000~17만5000원, 주말 16만~21만원으로 구성돼 있다. 시간 선호도에 따라 같은 날에도 요금이 다르게 구성해 놓았다. 요금은 선결제 방식이다.

루나엑스 골프장 관계자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비용과 시간, 에너지를 절약하고 빠르고 재미있는 심플 골프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했다. 루나엑스 골프장에는 국내 최장 340m 거리의 천연 잔디 연습장도 있다. 3개 층 57개 타석을 갖춘 플레이엑스 연습장, 야외 스크린 골프 시설, 타구 측정 시스템 등 최첨단 시설을 갖춰 놓았다. 윤재연 대표는 “루나엑스의 키워드는 다양성과 즐거움이다.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서 각자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티잉 구역도 주니어까지 5개 중 선택해서 경기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루나엑스란 이름도 독특하다. 달을 좀 더 잘 보기 위해 망원경 성능을 높이는 대신 달에 갈 수 있는 탐사선을 제작하겠다는 혁신적인 발상을 뜻하는 말인 ‘문샷 싱킹(moon-shot thinking)’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10%의 개선이 아닌 10배의 혁신에 도전하는 구글의 급진적 업무 방식을 이른다. 자율주행자동차, 구글 글라스 등을 개발한 비밀연구소인 구글 X랩은 문샷 싱킹을 실천하는 핵심 조직으로 꼽힌다.

윤 대표의 말이다. “루나엑스 골프장을 오랜 고민 끝에 오픈하게 되었다. 부지는 2000년 초 확보했고, 활용에 대한 그룹 차원의 고민이 많았다. 2006년 골프장 사업을 결정하고, 2008년 회원제 방식으로 18+9홀 코스로 설계까지 완성했었다. 당시는 회원제 골프장이 운영의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고 다들 퍼블릭 골프장으로 전환하던 때였다. 비즈니스 모델이 맞느냐는 회의가 들었다. 전면 재검토해서 다시 시작하자고 결정했다. 10년간 해외 사례를 모으고 현장 답사를 통해 고민한 결과는 골프 문화를 바꿔보자는 것이었다. ‘6 곱하기 4’ 골프장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안양 C.C. 총지배인으로 10년 동안 이병철 삼성 창업주, 이건희 전 회장과 인연을 맺은 안용태 GMI컨설팅그룹 회장과 윤 대표의 부친이자 대한골프협회장을 역임한 윤세영 태영·SBS 미디어그룹 창업 회장의 조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윤 대표는 “1933년생이신 아버님(윤세영 회장)은 골프에 대한 열정이 여전하시다. 꾸준히 운동하셔서 요즘엔 거의 매번 레귤러 티에서 에이지 슈트(age shoot·18홀 경기에서 자신의 나이와 같거나 더 적은 스코어를 기록하는 것)를 하신다. 아버님처럼 골프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갖도록, 골프를 재미있게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내 아이디어의 원천이다”라고 했다.

윤 대표는 세계적 화제가 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왜 지금이 K콘텐츠의 시대인가 생각해보았다고 했다. “우리 민족은 사람끼리 잘 어울리고, 게임 붙는 걸 좋아한다. 고립과 외로움이 현대 문명의 아킬레스건인데, 그 묘약을 가진 거지. 그래서 한국을 거치면 드라마든 뭐든 다 재미있어진다. 얼마 전 유학 시절 미국 친구가 전화하더니 ‘뽑기 게임(영어로 스틱 게임)’ 너도 해봤느냐며 정말 재미있다고 수다를 늘어놓더군. ‘K콘텐츠의 타이밍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한국이 재미있는 골프, 새로운 골프의 종주국이 되지 말란 법 있을까?”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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