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소년과 벵갈 호랑이의 표류기를 담은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IMDB
십대 소년과 벵갈 호랑이의 표류기를 담은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사진 IMDB

인간은 안정된 삶을 바라지만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면 권태에 질식하고 만다. 생명을 살아가게 하는 건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을 때, 부양해야 할 책임을 느낄 때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아픔으로 발버둥 치면서 내면에 있는 줄도 몰랐던 힘이 솟구치고,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비로소 감사의 기도가 터져 나온다.

파이라 불리는 소년의 세계는 거의 완전했다. 동물원을 운영하는 부모님 슬하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고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 할 것 없이 성전의 경계를 넘나들며 세상 모든 신을 사랑하는 천진한 아이였다. 원래 이름 피신이 오줌싸개(pissing)라는 영어 발음과 비슷해서 놀림당하는 것이 유일한 고민이었지만 그마저도 가뿐하게 해결해버렸다. 원주율 3.14에 이어지는 무한수를 칠판 가득 써 보임으로써 전설의 파이(π), 부호의 이름을 딴 파이(Pi)로 불리게 된 것이다.

파이의 평온한 일상이 신들의 눈에는 권태로워 보였을까. 인도가 정치적으로 혼란한 상황에 놓이자 파이의 가족은 캐나다에 이민을 가기로 한다. 하지만 배는 바다 한가운데서 침몰해버리고 구명보트를 타고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파이와 몇 마리 동물들, 얼룩말과 오랑우탄, 하이에나와 리처드 파커란 이름을 가진 벵갈 호랑이였다. 맹수와 초식동물이 사이좋게 살아갈 수는 없는 법, 먹고 먹히는 참사를 겪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건 파이와 리처드 파커였다.

손바닥만 한 구명정 위에 동물의 왕 호랑이와 십대 소년, 단둘만 남았다니! 생명을 죽인다는 것, 그 고기를 먹는다는 건 상상도 해 본 적 없었지만 굶어 죽지 않기 위해, 호랑이 밥이 되지 않기 위해 파이는 물고기를 잡는다. 호랑이를 경계하고 길들이고 함께 먹고 함께 자며 하루하루를 필사적으로 살아내느라 파이는 가족을 잃은 슬픔조차 느낄 겨를이 없었다.

얼마나 무서운 절망과 공포가 엄습했을까. 구조될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고 또다시 천둥·번개가 몰아치던 밤, 리처드 파커와 거리를 두고 쉴 수 있게 해주었던 뗏목과 비상식량 그리고 애써 적어 내려갔던 표류일기까지 풍랑에 휩쓸려가자 파이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다. “전 모든 걸 잃었어요. 그런 저에게 무엇을 더 바라시나요?”

희망과 원망, 슬픔과 두려움까지 다 내려놓고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을 때, 배는 뜻밖에도 식물과 미어캣이 가득한 섬에 닿는다. 파이와 리처드 파커는 모처럼 배를 불리고 마른자리에서 단잠을 잔다. 기운을 차린 그들은 다시 바다로 나갔고 얼마 후 멕시코 해안에 도착한다. 난파된 지 227일 만이었다.

부모의 바람대로 캐나다에 정착해서 어느덧 중년이 된 파이는 소설 소재를 찾아 그를 만나러 온 작가에게 당시 이야기를 들려준다.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리처드 파커는 뭍에 닿자마자 뛰어내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글 속으로 사라졌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으리라, 인사도 없이 떠나버린 녀석이 너무 야속해서 펑펑 울었노라, 파이는 다시 눈물을 흘리며 그때를 회상한다.

그런데 아무리 영화라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아닌데 호랑이와 소년의 동거가 가능한 걸까? 유일한 생존자에게 사건 경위를 듣기 위해 찾아왔던 선박 회사의 직원들도 파이의 이야기를 믿지 못했다. 그러자 파이는 서운해하며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구명보트에 함께 탄 건 사람들이었다. 하이에나처럼 살인과 식인을 저질렀던 야만적인 주방장, 얼룩말처럼 다리가 부러진 젊은 선원, 오랑우탄처럼 바나나 더미를 타고 떠내려온 엄마 그리고 살기 위해 호랑이와 같은 맹수의 본능을 끄집어내야 했던 파이.

파이는 자신의 가치와 존재 의미를 스스로 창조할 줄 아는 아이였다. 놀림이 싫어서 파이란 이름을 얻어낼 만큼 자존감이 높았고, 원주율의 무한수를 외울 정도의 지능과 열정도 갖고 있었다. 수학에서 따온 파이란 이름은 그가 얼마나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의 소유자인가를 말해준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 중 하나가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창작해내는 능력이다. 먹고 자고 번식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인생에서 건져내고 추구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신화가 탄생했고 전설이 생겨났으며 수많은 옛날이야기와 동화와 소설과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파이는 3300만 명이나 된다는 힌두교의 신도 모자라 다른 종교의 신까지 가슴에 품고 사랑하길 원하는 아이였다. 비이성적이어서가 아니라 신들이 가진 각각의 이야기에 매료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 소년이었기에 극한의 상황, 동물원에서 보았던 리처드 파커란 이름을 가진 호랑이에게 자신을 대입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동물과 사람, 어느 쪽 이야기가 마음에 드나요?”

파이는 누구에게도 말하기 싫은 끔찍한 사건,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라도 털어놓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배는 침몰했고 가족을 모두 잃었으며 구명보트 위에서 싸우고 죽이고 식인까지 하는 지옥을 목격하고 경험해야 했던 파이는 외로움과 두려움, 상실감과 자신에 대한 혐오까지 녹여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신과 인간의 관계를 헤아려볼 수 있는 철학적 은유로 재창조해냄으로써 자신을 용서하고 격려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둘 중 어떤 이야기가 진짜냐, 가짜냐 하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소설적 허구를 거짓이라고 하지 않듯 사람들만 나오는 이야기도 사실이고, 동물들이 나오는 이야기도 진실이다. 그래서 파이는 이렇게 묻는다. “어느 쪽 이야기가 마음에 드나요?”

‘와호장룡’ ‘센스 앤 센서빌리티’ ‘색계’를 만들었던 대만 출신의 이안 감독이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의 소설을 원작으로 2012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제가 이걸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종종 타인의 뜻에 의지한다. 할 수 없다고 하면 해보지도 않고 절망하고, 할 수 있다고 하면 물거품 같은 희망에 부풀어 즐거워한다. 그러나 타인이 정해준 가치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중요한 건 파이처럼, 인생의 의미를 스스로 창조해내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는 소설 열 권을 써도 모자란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당신도 예외일 리 없다. 파이가 웃으며 격려한다. “해피엔딩이냐 아니냐는 당신에게 달렸어요. 그건 당신의 이야기니까요.”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김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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