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이번 대선에서도 지난날과 다름없이 걸러지지 않은 말들이 무수히 들려온다. 사진은 과거 어느 대선 유세장에 운집한 군중이 후보를 바라보는 모습. 사진 조선일보 DB
선거철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이번 대선에서도 지난날과 다름없이 걸러지지 않은 말들이 무수히 들려온다. 사진은 과거 어느 대선 유세장에 운집한 군중이 후보를 바라보는 모습. 사진 조선일보 DB

어느 날 재아(宰我)가 스승에게 말했다. “삼년상은 너무 깁니다. 일 년만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삼 년 동안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예악(禮樂)이 붕괴하고 새 곡식도 수확할 수 없지 않습니까.”

주(周)의 예법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신봉하며 가르치던 공자(孔子)에게 이러한 제자의 도발적인 발언은 큰 충격이었다. 그가 물었다. “그렇게 하여 수확한 곡식을 먹고 비단옷을 입으면 네 마음이 편하겠느냐?” 당연히 ‘그렇지는 않습니다’는 말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으나 “편합니다”는 답이 돌아왔다. 공자는 화를 참지 못하여 “네가 편하다면 그렇게 해라”라고 쏘아붙이고 말을 이었다. “군자라면 부모의 상중에는 좋은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좋은 거처에 있어도 편치 않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네가 편하다고 하니 네 마음대로 해라!” 이 말을 듣고 재아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뒤늦게라도 자기 생각이 짧았다고 잘못을 시인할 것으로 예상했던 공자의 기대에 어긋난 행동을 보인 것이다. 더욱 화가 난 공자는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여(予: 재아의 본명)는 어질지 못하다. 자식이 태어나 3년 만에 부모의 품속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삼년상이 보편적인 예법으로 정해진 것인데, 저놈은 제 부모에게 3년의 사랑이라도 있겠느냐?”

‘논어(論語)’의 ‘양화(陽貨)’ 편에 보이는 일화다. 후대는 물론 당대에도 성인으로 존경받던 공자의 언행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와 같은 장면에서 공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제자에 대해 인간 공자가 좋은 감정을 가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뒤 마침내 건방진 제자를 혼내줄 기회를 포착했다.

재아가 낮잠을 잘 때 공자가 이를 발견하고 바로 호통을 쳤다.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담에는 흙손질을 할 수 없다! 저 여와 같은 놈에게 무엇을 꾸짖겠는가. 처음에 나는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동을 믿었지만, 지금은 그 말을 듣고 그 행동을 살펴보게 되었다. 바로 저 여라는 놈 때문에 내 생각이 바뀐 것이다.”

낮잠 한 번 잤다고 이렇게까지 꾸짖는 것은 너무 심하다. 사실 재아는 언변이 가장 뛰어나다고 공자가 칭찬한 바 있는 제자다. 덕분에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다.

어쨌거나 세상에는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에 ‘논어’에는 “먼저 행하고 나중에 말하라(先行其言而後從之)”는 식의 경계하는 말이 많이 실려 있다. ‘논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도 “그 말을 모르면 그 사람을 알 수 없다(不知言, 無以知人也)”라는 구절이다. 이에 대해 맹자(孟子)는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한쪽으로 치우친 말(詖辭)을 들으면 그 사람이 무언가에 가려져 있음을 알 수 있고, 터무니없이 지나친 말(淫辭)을 들으면 그 사람이 무언가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고, 상식에 어긋나는 말(邪辭)을 들으면 그 사람이 올바른 방향에서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고, 도망치듯 얼버무리는 말(遁辭)을 들으면 그 사람이 궁지에 몰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맹자의 이 견해는 말이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옴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본심과 다른 말로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해득실에 따라 수시로 말을 바꾸거나 감언이설(甘言利說)과 미사여구(美辭麗句)의 교언(巧言)으로 남들을 현혹하고 기만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노자(老子)는 “믿을 수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을 수 없다(信言不美, 美言不信)”고 하여 잘 다듬어낸 말의 가치조차 부정했다. 나아가 언어의 효능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았다. ‘도덕경’ 첫머리에서 “진리가 말로 나타낼 수 있다면 늘 변치 않는 진리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라고 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그러나 그도 결국 자신의 도를 표현하기 위해 5000자나 되는 긴말을 늘어놓았으며, 그 뜻을 더욱 잘 전달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비유, 대구, 압운 등 여러 기교를 두루 사용하여 말을 아름답게 꾸미려 애쓴 것이다. 공자가 “말은 뜻만 전달하면 된다(辭達而已矣)”고 하였지만, 말의 본뜻이 오해 없이 제대로 전달되게 하기 위해서는 신경 써서 가다듬어야 한다. 여기에 언어상의 여러 기교가 사용될 수밖에 없다. 노자도 현실 세계에서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던 셈이다.

예수와 붓다를 비롯한 인류의 스승과 모든 철인 및 현인의 사상과 가르침도 다 말로 전해진다.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고대로부터 선승(禪僧)들이 “언어에 의존하지 않는다(不立文字)”고 하여 진리를 말로써 구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이로 말미암아 진리는 더욱 종잡을 수 없게 되기 일쑤다. 공자도 한때는 “말은 뜻을 다 드러낼 수 없다(言不盡意)”는 ‘주역(周易)’의 말대로 말의 한계와 괴리(乖離)를 절감하고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자공(子貢)이 깜짝 놀라 물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면 저희가 무엇을 본받아 배웁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느냐? 사계절이 순환하고 만물이 생겨남에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느냐?” 그러나 그의 말이 남아 있지 않다면 후대의 공자도 있을 수 없다.

말은 잘 다듬어서 요령 있게 전달해야 하지만, 진실과 신용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후한서(後漢書)’의 ‘독행열전(獨行列傳)’에 이런 이야기가 보인다. 태학(太學)에서 친구가 된 범식(范式)과 장소(張劭)가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2년 후 어느 날 장소의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날짜가 임박하자 장소가 어머니에게 그 일을 말하고 술과 음식을 장만해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는 2년이 지났고 천 리나 멀리 떨어져 있으니 올 리가 없다고 말했다. 장소는 범식이 신의 있는 사람이므로 반드시 온다고 했다. 과연 때가 되니 범식이 찾아왔다. 둘은 닭고기와 기장밥에 취하도록 술을 마시면서 회포를 풀고 헤어졌다. ‘계서지교(鷄黍之交)’라는 고사다. 하찮게 보일 수 있는 이 일화가 정사에 기록된 것은 그만큼 세상에서 신의가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일 것이다.

말은 짧은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고, 자칫하면 원수가 되기도 한다. 높은 지위의 인사들이 말 한마디 잘못해서 궁지에 몰리거나 심지어 패가망신하기도 한다. 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화도 입에서 나온다(病從口入, 禍從口出). 한마디 말이 아홉 개의 가마솥처럼 무겁기도 하고(一言九鼎), 냇물이 흐르듯이 되는 대로 튀어나오기도 한다(信口開河). 잘못된 말을 뒤늦게라도 거두고 싶지만, 한번 뱉은 말은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쫓아가 잡으려 해도 이미 늦다(一言既出, 駟馬難追). 그러므로 말은 우뚝 솟은 산처럼 해야 하고(言出如山), 금쪽 같은 입으로 옥처럼 아름답게 다듬어 변하지 말아야 한다(金口玉言).

대선정국에 온갖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사탕발림의 선심 공약이 난무하고 유언비어와 비방, 선동이 횡행한다. 새삼스럽게 언급하기조차 민망할 지경이다. 대중은 ‘우매한 백성’이 되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지켜볼 일이다.


▒ 홍광훈
문화평론가, 국립대만대학 중문학 박사, 전 서울신문 기자, 전 서울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