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고 당시 벤 호건의 찌그러진 자동차. 사진 텔레그래프2. 벤 호건. 사진 파인허스트 리조트
1. 사고 당시 벤 호건의 찌그러진 자동차. 사진 텔레그래프
2. 벤 호건. 사진 파인허스트 리조트

명언 제조기 ‘골프계의 셰익스피어’

골프는 꿈같은 이야기가 끝도 없이 펼쳐지는 무대다. 대자연의 18홀을 돌면서 지름 108㎜의 홀에 마지막 공을 넣을 때까지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의 일곱 가지 감정이 밀려왔다 밀려간다. 그래서 골프는 인생에 가장 닮은 스포츠라고 한다. 수많은 사람의 가슴에 살아 숨 쉬는 세계의 골프 영웅들은 셰익스피어 작품의 등장인물들만큼 파란만장하고 때론 더 극적인 인생을 살면서 발자취를 남겼다. 지금도 큰 울림을 주는 그들의 삶과 그들의 골프를 좇아가 본다.

미국 골퍼 벤 호건(1912~97)은 41년간의 선수 생활 동안 메이저 9승(마스터스 2회, US오픈 4회, PGA 챔피언십 2회, 디오픈 1회)을 포함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64승을 거둔 전설이다. 근대 스윙을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가 쓴 ‘벤 호건의 다섯 가지 레슨(BEN HOGAN’S FIVE LESSONS)’은 지금도 전 세계 골퍼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극적인 골프 인생을 살았던 그는 골프계의 셰익스피어였다. 가슴 때리는 감동을 주고 게으른 정신을 번쩍 깨우는 죽비 같은 명언들을 남겼다.

“남보다 잘할 수 없다면 남보다 더 연습하라(If you can’t outplay them, outwork them).” “골프는 실수의 게임이다. 더 좋은 실수(다음 샷을 하기 좋은)를 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This is a game of misses. The guy who misses the best is going to win).”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샷은 다음 샷이다(The most important shot in golf is the next one).” “인생의 페어웨이를 걸으면서 장미 향기도 맡아야 한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인 라운드이기 때문이다(As you walk down the fairway of life you must smell the roses, for you only get to play one round).”

1949년 2월 2일. 피닉스 오픈 연장전에서 아쉽게 우승을 놓친 벤 호건은 아내 발레리와 함께 차를 몰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짙은 안개속에 좁은 다리를 건너던 그의 차는 맞은 편에서 추월하기 위해 중앙선을 침범해 달리던 관광버스(그레이하운드)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는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주저 없이 핸들을 놓고 조수석 쪽으로 몸을 던졌다. 덕분에 아내는 큰 부상이 없었다. 그도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핸들은 운전석 시트를 뚫어버렸다. 당시 서른일곱의 나이에 프로골퍼로서 전성기를 달리던 호건은 대퇴부와 쇄골, 발목, 갈비뼈 등 11개의 뼈가 부러지고 심각한 내출혈 등 끔찍한 상처를 입었다. 벤 호건은 수술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의사는 “다시 걷지 못할 확률이 높다”고 했다.

하지만 59일 뒤 병원을 떠나 집으로 돌아온 호건은 7개월 뒤 연습을 시작했다. 고통스러운 재활을 거듭한 그는 이듬해 1월 사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출전한 LA오픈에서 연장전 끝에 샘 스니드에게 졌다. 다리 쪽으로 피가 몰릴까 봐 고무밴드로 발목부터 허벅지까지 단단하게 감고 나선 경기였다. 골프장의 모든 팬이 대회 내내 불사조 같은 호건을 따라다니며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1950년 US오픈 마지막 라운드 18번 홀에서 1번 아이언으로 두 번째 샷을 하는 벤 호건. 사진 USGA 뮤지엄
1950년 US오픈 마지막 라운드 18번 홀에서 1번 아이언으로 두 번째 샷을 하는 벤 호건. 사진 USGA 뮤지엄

호건은 그해 열린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서 우승하여 골프 역사에 길이 남은 기적 같은 복귀 스토리를 썼다.

호건은 목숨을 잃을 뻔한 교통사고 이후 1년에 열 차례가 되지 않는 PGA투어에 나가면서 11승을 더 거뒀다. 그중 6차례가 보통 대회보다 10배는 더 어렵다는 메이저 대회 우승이었다. 그는 부상 1년 뒤인 1950년 US오픈에서 우승했고, 1951년 마스터스 첫 우승과 US오픈 세 번째 우승을 일궜고, 1953년에는 마스터스, US오픈, 디오픈 등 3대 메이저대회를 석권했다. 모두 선수 생명이 끝났다고 한 가장 어두운 순간, 위대한 호건의 전설이 시작된 것이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목숨을 잃을 뻔한 교통사고를 당하고 나서 이 같은 호건의 길을 걷고 싶어 한다. 집에서 가까운 곳을 중심으로 선택적으로 대회에 출전하다 메이저 대회에 나서는 방식이다.

호건은 1953년엔 마스터스와 US오픈, 디오픈 등 3개 메이저 대회를 휩쓸었다. 당시 PGA챔피언십은 디오픈과 일정이 겹치기 때문에 이 해 호건이 기록한 메이저 3승은 사실상 한 해 메이저 대회를 모두 휩쓴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트리플 크라운’이라 불렸다. 호건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간 디오픈에서 우승하고 미국으로 돌아오자 15만 명의 뉴욕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색종이 카퍼레이드가 벌어졌다. 뉴욕시의 색종이 카퍼레이드는 세계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린드버그나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아이젠하워 같은 국가 영웅들에게 이뤄지는 축하 행사였다. 골퍼 중에는 한 해에 4대 메이저 우승을 이뤘던 바비 존스와 벤 호건만 이런 경험을 했다.

호건은 1912년 미국 텍사스주 더블린 근교에서 태어났다. 대장장이였던 아버지는 호건이 아홉 살 때 집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아버지가 자살하는 모습을 어린 호건이 직접 목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평생 지독하게 노력하고 내성적이고 차가울 정도로 냉정함을 잃지 않는 성격이 된 것도 그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한다.


‘벤 호건의 다섯 가지 레슨’. 사진 아마존
‘벤 호건의 다섯 가지 레슨’. 사진 아마존

어머니의 삯바느질로 가계를 꾸려갈 수밖에 없게 되자 호건의 형은 학교를 중퇴했고 호건은 기차역 근처에서 신문팔이를 했다. 열한 살 때 호건은 동네 친구 귀띔으로 골프장에 일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캐디였다. 열일곱 살에 프로로 전향할 때까지 그는 어깨너머로 골프를 익혔다. 함께 캐디를 하던 동갑 친구 중 한 명이 PGA투어 11연속 우승 기록을 지닌 바이런 넬슨이었다. 그는 20대 중반까지 넬슨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가 첫 우승을 한 것은 프로 데뷔 10년 만인 스물여섯 살 때였다. 키 172㎝ 65㎏인 그는 신체 조건의 열세를 극복하고 장타를 치기 위해 심한 스트롱 그립(왼손을 오른쪽으로 많이 돌려 쥐는 것)을 쥐었다. 엄청난 훅(공이 왼쪽으로 크게 휘는 것)으로 고생했다. 독학 골퍼였던 그는 자신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언제나 완벽한 샷을 할 수 있는 비법을 연구하고 나섰다. 그가 1957년 펴낸 ‘벤 호건의 다섯 가지 레슨’은 골프의 기본인 그립과 스탠스, 포스처, 스윙을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간명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1940년 3개 대회 연속 우승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호건의 전성기는 첫 우승을 거둔 1938년부터 마지막 우승을 장식한 1959년까지다. 그중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3월부터 1945년 6월까지 2년 넘게 미군 조종사로 활동했다. 황금기에 두 차례나 골프 경력이 단절됐지만, 그는 오뚝이처럼 돌아왔다. 그 힘은 완벽을 추구하는 지독한 노력이었다.

호건은 워낙 연습하기를 좋아해 “연습을 발명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다. 누구나 좋은 골프 스윙을 구사할 수 있지만 “진흙 속에 묻혀 있는(in the dust)” 것을 캐내기 위해서는 연습과 반복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너무나 연습을 하고 싶어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기다릴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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