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누구나 외롭다. 김수환 추기경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다 의외의 장면에서 놀란 기억이 있다. 선종하기 전 병마와 싸우던 추기경이 남긴 말들을 들으면서였다. 죽음이나 공포를 모두 극복했을 거란 내 생각과 달리 추기경은 병이 깊어지자 극심한 고독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모두가 자신을 향해 기도해 주고 있지만 지금껏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깊은 고독, 혼자만 떨어져 나가는 듯한 절대적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이다. 

평생을 죽음과 대면해 온 인생에도 외로움은 찾아온다. 

인간이 외로움을 느낀다는 사실은 인간이 혼자 살지 않도록 구조화된 존재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인간은 독립된 존재로 잘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혼자로 충분하지 않다. 

진화학자들이 외로움을 일컬어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감정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외로움은 공동체를 필요로 하고 공동체 역시 자신의 존속을 위해 개인의 외로움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공동체가 붕괴해 가자 외로움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영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직을 신설했다. 외로움을 개인 차원에서 경험하는 사적인 감정으로 보지 않고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공적인 정서라고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되고 있다. 친구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단기 ‘친구 역할’ 을 해 주는 것이다. 같이 쇼핑도 하고 산책도 하면서, 우리는 지금 전대미문의 고립된 시대를 지나고 있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 것 같다. 이 시대의 이름은 외로움의 세기다. 

켄트 하루프의 소설 ‘밤에 우리 영혼은’을 읽었다. 외로운 두 영혼의 늦된 만남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서로의 건너편에 살고 있는 칠십대 남녀 주인공이 나누는 우정과 사랑 이야기다. 

남편이 죽고 자식들은 독립해 큰 집에 혼자 남은 애나는 어느 날 밤 맞은편 집 대문을 두드린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내가 죽은 이후 혼자 사는 루이스에게 할 말이 있어서다. 애나는 대뜸 이런 질문을, 아니 프러포즈를 한다. “가끔 나하고 자러 우리 집에 올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 무슨 말인지 의아해하는 루이스에게 애나는 다시 말한다. “우리 둘 다 혼자잖아요. 혼자된 지도 너무 오래됐어요. 벌써 몇 년째예요. 난 외로워요. 당신도 그렇지 않을까 싶고요. 그래서 밤에 나를 찾아와 함께 자줄 수 있을까 하는 거죠. 이야기도 하고요.”

두 사람은 동네 사람들과 각자의 자식들이 보내는 불신과 비난의 눈초리에도 굴하지 않고 ‘좋은 시간’을 보낸다. 이 시간이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당장 다음 만남이 가능하기나 할지,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므로 완벽한 행복을 느낀다. 루이스는 거듭해서 말한다. 자신에게 아직 무엇인가 남아 있다는 걸 알게 해 줘서 고맙다고. 아직 다 말라비틀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해 줘서 고맙다고. 그러니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돼서 다행이라고.

이 소설은 ‘끝’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시작한다. 더 이상 궁금한 사람도 없고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미래도 없다고 생각되는 시점에 이르러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설렘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여하한 이유로 더 이상의 만남이 불투명해진 두 사람이 전화로 대화하는 장면에서 소설은 끝난다. 애나가 루이스에게 묻는다. “당신, 지금 거기 추워요?” 나는 이 마지막 문장을, 그러니까 이 소설의 결론을 이렇게 번역해서 읽는다. “당신, 지금 외로워요?” ‘나’의 외로움에서 시작된 소설은 ‘당신’의 외로움을 확인하는 데서 끝난다. 


이 시대의 이름은 외로움의 세기 

외로움의 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외롭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노력은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내가 외롭지 않기 위해 상대방을 외롭지 않게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의 온기를 유지하려면 상대방이 있어야 하고, 상대방이 외롭지 않아야 나와 우정과 사랑을 나눌 수 있다. 

사회심리학자 한스 이저맨은 ‘따뜻한 인간의 탄생’에서 인간의 진화사를 체온 조절의 진화로 설명한다. 물리적 온도가 심리적 온도에 영향을 주고 심리적 온도가 물리적 온도를 변화시킨다는 숱한 증거들을 통해 저자는 인간은 온기를 높이기 위해 타인과 뒤엉켜 살아가도록 진화해 왔음을 증명한다. 외로움에 맞서기 위해 우리는 따뜻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 소설은 체온의 진화사를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증거가 아닐까.



▒ 박혜진
조선일보 신춘문예평론 당선,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젊은 평론가상

Plus Point

켄트 하루프(Kent Haruf)

아너 켄트 하루프(Honor Kent Haruf)
아너 켄트 하루프(Honor Kent Haruf)

1943년 미국 플로리다주 푸에블로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작가가 되기 전 콜로라도의 양계농장, 와이오밍의 건설 현장, 덴버와 피닉스의 병원, 아이오와의 도서관, 위스콘신의 대안학교에서 일했고 터키의 평화지원단과 네브래스카와 일리노이의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1984년 발표한 데뷔작 ‘결속의 끈(The Tie That Binds)’으로 와이팅 상을 받았고 ‘플레인송(1999)’이 미국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올랐다. 2013년 출간된 ‘축복’은 그의 다른 모든 소설처럼 가상의 마을 홀트를 배경으로 쓰였으며, 죽음을 앞둔 주인공과 주변인들이 나눠 갖는 삶의 의미를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플레인송’ ‘이븐타이드(Eventide)’와 함께 ‘홀트 3부작’으로 불리며 동시대 미국을 그린 걸작으로 평가받았다. 2014년 폐 질환으로 생을 마감했다. 사후에 ‘밤에 우리 영혼은’이 출간됐고,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