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타비사 소렌의‘표면 장력’ 표지.2 화재 사진에 손자국이 뒤덮인 모습.3, 4 서로 대치 중인 경찰과 시위대의모습 등 사고나시위가 벌어지는 강렬한 장면이 주를 이룬다. 사진 김진영
1 타비사 소렌의‘표면 장력’ 표지.
2 화재 사진에 손자국이 뒤덮인 모습.
3, 4 서로 대치 중인 경찰과 시위대의모습 등 사고나시위가 벌어지는 강렬한 장면이 주를 이룬다. 사진 김진영
5, 6 손이 화면에 남긴 기름기 자국이나 지문 등 인간의 촉각 흔적이 담겨 있다. 사진 김진영
5, 6 손이 화면에 남긴 기름기 자국이나 지문 등 인간의 촉각 흔적이 담겨 있다. 사진 김진영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사진을 통해 볼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말이나 글자, 그림으로 멀리 떨어진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던 때가 있었다. 대량의 신문을 찍을 수 있는 인쇄기가 도입되고, 사진이 발명되고 나서도 사진이 신문에 실리기까지는 또다시 긴 시간이 걸렸다. 19세기 후반 망점 제판을 이용한 사진 인쇄가 가능해지고 나서야, 사진은 기하급수적인 양으로 복제되고 유통될 수 있었다. 사진은 엄청난 양의 사건을 우리의 경험 안으로 끌어들였고, 우리가 세계에 대한 기록으로서 현실을 인식하는 데 가장 중요한 매개체가 됐다. 사진을 통해 세계의 모든 것을 엄청나게 알고 있는 우리는 그 이전의 삶에 대해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진이 현실을 뒤덮는 속도 역시 가속화됐다. 디지털 기술 이전, 사진은 유리, 종이, 필름 등 물리적인 지지체(support)를 기반으로 복제되고 유통됐다. 오늘날 물리적인 한계의 사슬을 끊은 디지털 이미지는 우리 각자의 기기를 통해, 그리고 끝없이 갱신되는 피드(feed) 속에서 무한에 가깝도록 펼쳐진다. 기기를 손에 들고 손가락을 움직이며 이미지를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동시대의 즐거움과 편리함을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신체가 디지털 기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사슬로 묶여있다는 디스토피아적 생각을 하게 한다. 이미지가 자유로워진 것과 달리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시간을 화면과 함께하며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사진가 타비사 소렌(Tabitha Soren) 역시 어느 날 비행기에서 아이패드를 사용한 후, 머리 위 조명을 켰다. 아이패드 화면에는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손이 화면과 접촉해 남긴 수많은 흔적이 있었다. 늘 화면 위에 존재했지만 그제야 비로소 눈에 들어온 이 흔적들을 들여다보며, 그는 생각했다. 이 흔적들이야말로 동시대 인류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손끝은 화면 표면에 수많은 얼룩을 남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이러한 부분을 무시하고 화면을 보거나, 혹은 닦아내어 제거한다. 작가는 손의 흔적이 단순히 오물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자 삶을 사는 방식을 드러내고 있음에 주목했다. 하루에도 수백 번 디지털 기기에서 화면을 넘기고, 손끝 하나로 세상을 바라보며 웃고 울고 즐거워하고 분노하는 동시대 사람들 모습은 바로 각자가 들고 있는 화면 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이다.

타비사 소렌이 ‘표면 장력(Surface Ten-sion, 2021)’에서 보여주는 것은 바로 디지털 화면의 이미지와 손이 표면에 남긴 자국들을 결합한 사진들이다. 디지털 기기와 인간의 신체가 교차하는 지점을 그는 어떻게 시각화했을까?

우선 그는 웹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수집했다. 누군가가 핀터레스트,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혹은 언론사가 웹사이트에 올린 사진 등 우리가 이미지를 접하는 주요 방식을 이용했다. 책에 수록된 사진들이 평화로운 일상보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주로 보여준다는 점 역시 카메라가 주로 사건 사고를 담으며, 사람들은 그러한 사진들에 엄청난 호기심을 보이는 현실을 닮아 있다. 상점을 뒤덮은 불이나 서로 대치 중인 경찰과 시위대의 모습 등을 통해 사고·시위·화재 등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수집한 이미지를 아이패드 화면에 띄운 후, 기름기 많은 손의 얼룩과 지문을 드러내기 위해 측면 조명을 화면에 비췄다. 이러한 조건 속에 8×10 대형 뷰카메라로 화면을 찍자, 화면 위로 보이는 디지털 소스와 인간이 담긴 촉각적 흔적이 결합된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책은 납작하고 넓은 판형 그리고 고광택 종이로 디자인됐다. 이는 두 가지 측면으로 작동한다. 첫째, 책이지만 판형과 종이의 특성을 통해 기기 화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강렬한 색이 주를 이루는 이미지로 가득한 책 한 권을 다 보고 나면, 화면을 들여다보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한 후 우리의 머릿속에 일어나는 동요감 내지는 심리적 상태 같은 것을 경험하게 된다. 

둘째, 고광택 종이는 기름에 취약하기 때문에, 책을 넘기는 과정에서 독자 역시 책에 얼룩을 남기게 된다. 화면과 마찬가지로 이미지의 어두운 부분에 인간의 흔적이 두드러지게 남는다. 책은 이 같은 영리한 방식으로 독자의 흔적을 책의 일부가 되도록 상호작용한다. 

이처럼 이 책은 실제적인 접촉보다 화면과의 접촉을 통해 살아가는 삶, 다시 말해 디지털로 매개된 삶의 양식을 탐구한다. 실제 세계와 디지털 세계, ‘지금 여기’와 ‘과거 저기’를 끊임없이 뒤섞어 경험하는 가운데, 인간이 자신을 규정하는 방식과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 모종의 변화를 겪고 있진 않을까?

작가는 오늘날을 인간과 디지털 문화 사이에 있는 극도의 긴장 상태라 규정한다. 작가는 말한다. “역사에서 사람과 디지털 문화 사이에 이토록 긴장이 있던 적이 없었다. 우리는 털이 있고 기름지고 지저분한 인간이다. 반면 장치는 기름을 혐오하고 거부하며 매끄러운 표면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장치는 인간됨의 가장 좋은 점을 부정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들의 디자인이 보여주는 완벽함을 갈망하도록 만든다.” 

이 같은 작가의 관점은 기술에 반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디지털 기술을 동시대 삶의 조건으로 인정하고 그 기반 위에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매끄러운 표면 위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는지, 실제 현실보다 매개된 현실에 반응하느라 눈앞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능력이 쇠퇴해가고 있진 않은지 등을 되묻는 것이다. 

인류 최초의 이미지가 동굴 벽에 남은 손자국이었다면, 인류 마지막의 이미지는 화면에 남은 지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은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관심을 어딘가에 기울이고 세계를 확장해갈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익숙한 의식의 경로 위에 잠시 멈춰 서서 그 길이 어떠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