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미륵사지 5층 석탑 뒤로 해가 뜨고 있다. 사진 최갑수
새벽녘 미륵사지 5층 석탑 뒤로 해가 뜨고 있다. 사진 최갑수

전라북도 익산은 봄이 참 예쁜 도시다. 4월 중순이면 원불교중앙총부와 원광대, 왕궁리 일대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익산 시내에 자리한 원불교중앙총부는 봄 산책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이곳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 

“원불교중앙총부는 익산에서 아니, 한국에서 봄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곳이랍니다. 들어와서 마음껏 봄을 즐기다 가세요.” 박대성 원불교 교정원 문화사회부 차장(교무)의 말이다.

원불교는 소태산 대종사 박중빈이 1916년 깨달음을 얻고 문을 연 종교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여섯.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믿는다. 동그라미는 부처님의 마음을 상징하며 충만한 마음과 우주 만유의 본원을 뜻한다. 

많은 이가 원불교를 불교의 한 종파로 알고 있지만, 엄연히 다른 종교다. 원불교당에는 불상이 하나도 없다. 박 교무의 설명에 따르면, 원불교는 철저히 실리적이고 개혁적인 종교다. 배타적이지도 않다. 부처님과 예수님, 마호메트도 다 훌륭한 선각자라고 인정한다. 유일신을 믿지도 않는다. 설명을 듣다 보면 종교가 아니라 생활철학으로 다가온다.


원불교중앙총부 내부는 정원처럼 잘 꾸며져 있다. 사진 최갑수
원불교중앙총부 내부는 정원처럼 잘 꾸며져 있다. 사진 최갑수

원불교중앙총부는 1924년 만들어졌다. 1924년 9월 익산총부를 건설하면서 최초로 지어진 본원실을 비롯해 1927년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의 처소로 지어진 금강원 등 8개 건물이 초창기 모습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대종사의 거처로 지어진 금강원, 대종사뿐만 아니라 2대 정산 종사, 3대 대산 종사가 열반한 종법실, 집회소였던 공회당, 대종사의 집필 장소였던 송대 등이 모두 일본식주택건축 영향을 받은 목조 구조의 개량 한옥들이다. 

벚나무를 비롯해 다양한 수목이 어울려 있어 짧은 봄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기도 하다.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총부 이곳저곳을 거닐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특히 공회당 앞이 예쁜데, 커다란 벚나무 한 그루가 파란 지붕을 인 적산가옥과 어우러져 아주 멋스럽게 핀다. 

건너편은 원광대다. 교문을 지나면 ‘닭카페’가 있다. 건물 지붕에 봉황 조각이 있는데, 봉황이 아니라 닭처럼 보여 닭카페라고 부른다. 카페 주변에 벚나무가 많다.


미륵사지 석탑과 돌로 화강암을 깎아서 세운 당간지주의 모습. 사진 최갑수
미륵사지 석탑과 돌로 화강암을 깎아서 세운 당간지주의 모습. 사진 최갑수

왕궁리와 미륵사지에서 만나는 백제

익산은 경주와 공주, 부여와 함께 우리나라 4대 고도다. 특별법으로도 지정되어 있다. 왕궁, 왕릉, 사찰, 산성이라는 고도의 4대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는 뜻이다.

익산 왕궁리는 백제 궁궐터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장소다. 백제 무왕 때인 639년에 건립했다는 제석정사 터를 비롯해 그 안에 관궁사, 대궁사 등의 절터와 토성 터 등이 남아 있는데 이는 이곳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이 있는 유적이라는 학설을 뒷받침한다. 문헌은 ‘옛날 궁궐터’ ‘무왕이 별도를 세운 곳’ ‘마한의 궁성 터’라고 적고 있다.

익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여행지는 미륵사지다. 익산시 금마면 한가운데 솟은 미륵산 자락 아래에 자리한다. 폐사됐으니 엄밀히 말해 미륵사지다. 신라 땅으로 가 섬섬옥수 선화 공주를 데려왔던 사내 무왕이 나라가 기울어 가는 시점에 지은 절이다. 시인 신동엽은 시 ‘금강’에서 미륵사에 얽힌 이야기를 이렇게 들려준다.

“어느 날 선화는 미륵산 아래를 산책하다 미륵불을 캤다. 땅에서 머리만 내놓은 미륵 부처님의 돌, 마동왕의 손가락 이끌고 다시 가 보았다. 안개, 비단 무지개, 백성들이 모여 합장, 묵념. 그들은 35년의 세월 머리에 돌 이고 염불 외며 농한기 3만 평의 땅에 미륵사, 미륵탑 세웠다.”


근대문화 건축물 여행

익산에는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의 시대상을 살필 수 있는 근대 건축물이 여럿 남아 있는데, 답사의 가장 첫걸음을 놓아야 할 곳이 화산천주교회다. 나바위 성지 또는 나바위 성당으로 더 많이 알려진 곳이다. 나바위 성당은 건축 양식이 독특하다. 정면에서 보면 벽돌로 만들어진 영락없는 서양식 교회지만 건물 옆으로 돌아가 측면을 보면 팔작지붕에 한식 기와를 올렸다. 처마 아래로는 툇마루를 개조해 만든 회랑이 이어진다. 1906년 처음 지어질 당시, 나바위 성당은 흙벽과 마룻바닥, 기와지붕과 나무로 만든 종탑이 선 순 한옥 목조 건물이었다. 그러다 1916년까지 증축을 거듭하면서 한옥과 양옥의 형태가 뒤섞였다.

성당 안에도 초기 성당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내부에는 공간을 가르는 8개의 목조 기둥이 있는데, 이는 남녀유별의 관습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창도 이채롭다. 스테인드글라스 대신 한지의 수묵 그림을 댔다. 성당 분위기가 한층 그윽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나바위 성당에서 멀지 않은 성당면 두동리에는 1929년에 세워진 두동교회가 있다. 한옥으로 지어진 ‘ㄱ 자’ 형 교회로 김제의 금산교회와 더불어 국내에 두 곳밖에 남아 있지 않다. 이렇게 지은 이유는 남녀 신도가 따로 앉아서 설교자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앞마당에는 나무로 쌓아 올린 종탑의 모습도 그대로 간직돼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익산을 상징하는 건물이 익산 구 익옥수리조합 건물이다. 1930년 지어진 이 건물은 익산과 옥구군의 농장 지주들이 농지를 관리하고 쌀 생산량을 늘리고자 창설한 익옥수리조합의 사무소였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은 원형이 잘 남아있는데 창문과 창문 사이에 벽돌로 치장 쌓기를 한 것이라든지, 테두리 보의 벽면을 붉은 벽돌로 쌓은 것 등은 현재 건축 기법과 다르다고 한다.

익산 시내에서 나와 만경강을 따라가면 춘포라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닿는데 이곳에 1914년에 세워진 춘포역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이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의 이름은 ‘대장역’이었다. 일본식 지명인 ‘대장촌리’에서 유래한 것인데 1996년 익산시의 일제 잔재 청산 명목으로 마을이 조선 시대 이름인 ‘춘포리’라는 이름을 되찾으면서 역명도 춘포역으로 바뀌었다. 소규모 철도 역사의 건축 양식과 슬레이트를 얹은 맞배지붕형식의 목조건물 양식이 그대로 남아있다.



▒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여행수첩

먹거리 황등면의 황등비빔밥은 익산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한때 우시장까지 있었다던 황등시장은 위세를 잃었지만, 비빔밥집은 성업 중이다. 황등비빔밥은 밥을 살짝 비벼 고깃국물에 토렴한 뒤 그릇을 데워 육회를 얹어 내는 게 특징이다. 시장비빔밥을 비롯해 한일식당, 진미식당 등이 맛집으로 꼽힌다. 선짓국을 곁들인다. 일해옥 멸치 육수를 진하게 우려내 만든 콩나물국밥을 맛볼 수 있다. 동서네낙지는 소 곱창과 낙지를 함께 볶아주는 곱창낙지볶음이 맛있다. 

원불교 아라미 문화축제 원불교는 올해로 107주년을 맞는 대각개교절을 기념해 4월 한 달간 ‘원불교 아라미 문화축제’를 연다. 온라인 이벤트로는 4월 28일 대각개교절을 앞두고 ‘일상 속의 원(圓) 찾기’ ‘원불교 아라미 초성퀴즈’ 등 푸짐한 경품 행사와 함께 원불교에 대한 재미있고 다양한 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 원불교 공식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참여를 통해 원불교 일원을 상징하는 동그라미 모양 다이슨 헤어드라이어, 액세서리, 던킨 도넛 등 알찬 상품도 챙길 수 있다. 4월 22~24일에는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 원불교 중앙총부 일대에서 아라미 문화축제가 열린다.

옥룡천이 얼어붙으면 만난다는 두 석불 왕궁리 유적 인근에 고도리 석조여래입상이 있다.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와 서고도리의 경계에 옥룡천을 사이에 두고 두 기의 불상이 마주 보고 선 석불이다. 약 200m 거리를 두고 서 있는데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불상이라고 한다. 불상은 각각 남자와 여자라고 전해진다. 가장 큰 특징은 머리에 쓴 관과 극도로 생략된 신체 표현이다. 뒤에서 보면 그저 돌기둥처럼 보일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