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굿 윌 헌팅’ 장면들. 사진 IMDB
영화 ‘굿 윌 헌팅’ 장면들. 사진 IMDB

불행은 누구의 책임일까? ‘잘되면 내 덕,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도 있지만, 행복은 내가 노력한 결과 얻어지는 것이면 좋겠고, 고통은 내 실수와 잘못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으면 싶다. 힘들 때 ‘내 불행은 네 탓이야, 사회 탓이야!’ 하고 원망을 터뜨리진 않더라도 누군가 어깨를 토닥여주며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하고 말해주길 사람들은 바란다. 그런데 정말 그래도 될까? 불행은 진짜 내 탓이 아닐까? 

솔기가 다 해진 옷을 입고 다니는 윌 헌팅은 고아다. 입양 가정을 전전하며 학대받았고 몇 번이나 파양당했다.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할 어린 시절, 함부로 내동댕이쳐진 경험과 기억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그의 가슴에 불신과 분노를 쌓았다. 왜 날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는 걸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나는 왜 태어난 거지? 나를 버렸으니 나도 세상을 거부하겠어! 그런 자학적 세계관이 그의 마음을 질긴 넝쿨처럼 뒤덮었다.

윌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그는 세계적인 수학자 중에서도 단 몇 명만 풀 수 있는 문제를 식은 죽 먹듯 풀어버리는 천재다. 하지만 부모도 알아주지 않는 재능, 날아오는 주먹 하나도 막아주지 못하는 능력, 쌀 한 톨 보태주지 못하는 재주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환하고 밝은 세상은 윌에겐 신기루일 뿐이다. 손에 잡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핏 속엔 반항심이 펄펄 끓어오른다. 말끝마다 욕설을 후렴처럼 붙이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이런저런 말썽을 일으킨 바람에 벌써 몇 번이나 경찰서를 들락거렸다. 

그래도 잠재력은 늘 꿈틀거린다. 살아 있기에 본능적으로 존재를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보호관찰관 소개로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윌은 대걸레를 끌고 수학과 강의실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교수가 학과생들에게 낸 문제가 복도 칠판에 게시된 걸 보고 윌은 가슴이 뛴다. 그는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칠판에 답을 적는다.

수학과 램보 교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는 답을 쓴 누군가가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는 걸 단번에 알아본다. 그 놀라운 주인공이 빈민가에서 양아치들과 어울려 다니는 고아라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마음이 급하다. 천재는 아인슈타인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 테러범이 될 수도 있다. 교수는 패싸움과 경관 폭행으로 구속된 윌을 찾아가 손을 내민다. 대신 그에게 원하는 건 두 가지. 자신과 함께 수학을 연구할 것. 정신과 치료를 꾸준히 받을 것. 윌에겐 램보 교수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천재가 아닌 교수의 수학은 시시하고 정신과 치료는 불편하다. 방금 만난 의사가 날 치료한다고? 내 인생에 대해 그들이 뭘 아는데? 윌은 과거를 돌아보는 것조차 고통스럽다. 조롱하고 희롱하며 의사들을 골려줄 뿐, 도무지 마음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다섯 명의 정신과 의사가 내던진 바통을 이어받은 건 램보 교수의 동창, 숀 맥과이어 박사다. 그는 비아냥거리며 일부러 자신의 화를 돋우는 윌의 내면을 읽어낸다. 한없이 잘난 척, 허세를 부리고 있지만 실은 상처받아 겁먹은 작고 여린 어린아이라는 것을. 

박사는 몇 번 만난 뒤 방귀 이야기로 윌의 경계심을 풀어버린다. 윌은 천재지만 덩치만 큰 어린아이니까. 아이들은 방귀쟁이 뿡뿡이를 좋아하니까. 키를 낮춰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 것이다. 윌은 정말 다섯 살 아이처럼 깔깔대며 배꼽을 잡고 웃는다. 이 어른은 허풍 떠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어쩌면 믿어도 되는 사람일지 몰라. 그 순간 살짝, 마음의 빗장이 풀린다. 

인간은 세월 따라 차근차근 성장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나이를 먹고 키도 자라지만 문득 성장이 중지되는 순간이 있다.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상처받아서 자라지 못한 아이가 숨어 있는 것이다. 대부분 모르고 살 뿐이다. 그래서 겉모습은 어른인데 속내는 꼬마에서 한 뼘도 크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진짜 어른이 되려면 그 아이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보아야 한다. 상처받고 성장하기를 포기한 아이를 안아주어야 한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미숙하고 불완전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스스로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많이 힘들었구나, 그 아이와 함께 울고 사랑한다, 애썼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웃을 수 있을 때, 멈추었던 성장이 다시 시작된다. 윌은 가슴을 활짝 열어 자기 존재를 인정해주는 맥과이어 박사를 통해 지금껏 아무도 가르쳐 준 적 없는 어른과 아이의 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을 배우고 경험한다. 아,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이렇게 즐거운 거구나! 윌은 처음으로 깨닫는다. 

이제 윌은 램보 교수의 바람대로 사회를 위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자친구에게도 한발씩 다가선다. 무시당할까 봐, 또 버려질까 봐, 다시 혼자 남겨질까 봐 두려웠던 마음을 이기고 조금씩 용기를 내어보는 것이다. 

맥과이어 박사는 마지막으로 윌의 가장 큰 슬픔의 벽을 허문다. 오래 고여있던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마음의 둑을 무너뜨릴 수 있게 한 열쇠가 바로 ‘그건 네 잘못이 아니었어’라는 한마디였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손찌검당해도, 버려져도 원망할 줄 모른다. 자기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자책한다. 그 죄책감이 평생의 목을 짓누른다. 윌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없는 것도, 학대받고 파양된 것도 어린 윌의 잘못은 아니었다. 

윌은 20년간 어깨를 짓누르던 짐을 내려놓는다. 앞으로도 인생이 만만할 리는 없겠지만 무서워서 도망가진 않을 것이다. 실수하면 바로잡으면 되고, 아프더라도 치유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구스 반 산트 감독의 1997년 작이다. 윌을 연기한 맷 데이먼과 의리 있는 친구, 처키 역의 벤 애플렉이 함께 시나리오를 썼다.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아이들의 상처는 모두 어른 탓이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의 고통과 상처는 ‘내 탓’이다. 어쨌든 자기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남 탓하지 않고, 세상 탓하지 않고 책임지는 어른으로 사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세상엔 어린이를 벗어나지 못한 ‘어른이’가 많다. 당신은 어른인가, 아이인가?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김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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