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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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즈별로 다른 와인 병. 사진 김상미
사이즈별로 다른 와인 병. 사진 김상미
지역별로 다른 와인 병. 사진 김상미
지역별로 다른 와인 병. 사진 김상미
투명한 병에 담긴 크리스털 샴페인. 사진 김상미
투명한 병에 담긴 크리스털 샴페인. 사진 김상미

와인 병은 왜 용량이 750mL일까. 색깔은 왜 불투명할까. 모양도 여러 가진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걸까? 와인을 즐기다 보면 자주 드는 의문들이다. 와인 병이 지금의 생김새를 갖추게 된 것은 19세기부터였다. 그렇다면 이전에는 어떤 형태였을까? 와인의 발전과 함께해온 와인 병의 변천사, 그 속에는 우리의 호기심에 대한 해답도 들어있다. 

19세기 이전에는 와인 병을 일일이 입으로 불어서 만들어야 했다. 따라서 모양이 일률적이지는 않았지만 용량은 대략 750mL였다. 숙련된 기술자가 한 번에 불어 만들 수 있는 크기가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굳어져 표준 용량이 됐다는 설도 있지만, 다른 주장도 있다. 당시 보르도 와인의 최대 수입국은 영국이었다. 그런데 프랑스는 리터를, 영국은 갤런을 쓰는 것이 문제였다. 관세 부과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배럴 한 개의 용량(225L)을 750mL씩 300병으로 나누는 것이었다.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와인이 오늘날에도 통상적으로 6병(4.5L=1갤런) 또는 12병(9L=2갤런)들이 상자로 유통되는 것을 보면 폐활량보다는 세금 때문에 750mL가 표준이 된 것이지 싶다.

19세기에 들어서며 병을 틀에 찍어 만들 수 있게 되자 와인 병은 지역별로 형태가 고정되기 시작했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이 그 방면에서는 선두 주자였는데, 그들이 채택한 디자인은 어깨가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스타일이었다. 부르고뉴는 예나 지금이나 세계 최고의 피노누아와 샤르도네 생산지다. 그래서 지금도 세계 어디서든지 피노누아로 만든 레드 와인과 샤르도네로 만든 화이트 와인은 모두 부르고뉴 병에 담아 출시되고 있다.

보르도는 부르고뉴보다 조금 늦게 병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각진 어깨가 높이 솟은 모양새가 선택됐다. 경쟁 관계였던 부르고뉴와의 차별성을 살리기 위해 병 모양을 달리했다고도 하고, 와인을 따를 때 찌꺼기가 잘 걸리도록 어깨를 각지게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실제로 보르도 레드 와인의 주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는 색이 진하고 타닌이 많아 찌꺼기가 잘 생기는 편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와인은 모두 보르도 스타일 병에 담겨 판매되고 있다.

한편 독일의 와인 병은 길고 날씬하다. 이런 모양을 택한 것은 유통 때문이었다. 바닷길로 와인을 수출하던 프랑스와 달리 독일은 라인강을 이용해 와인을 운반했는데, 바다배에 비해 강배가 폭이 좁다 보니 선적하기 좋도록 병이 가늘고 길어진 것이다. 리슬링(Riesling)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을 비롯해 독일산 와인은 지금도 이런 형태의 병에 담겨 출시되고 있으며, 독일의 영향을 많이 받은 프랑스의 알자스 지방도 같은 모양의 병을 사용하고 있다.

빈 병을 분리 배출하다 보면 스파클링 와인 병이 유독 무겁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유가 뭘까? 이는 와인 속 기포의 압력을 견디도록 병을 일부러 두껍게 만들기 때문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스파클링 와인의 압력은 타이어의 세 배나 된다. 스파클링 와인 병에 꽂는 코르크도 원래 버섯 모양이 아니라 병 입구보다 면적이 세 배나 큰 원통형이다. 그것을 억지로 욱여넣고 다시 철사로 칭칭 동여매는 것은 압력 때문에 혹시라도 코르크가 튀어나오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와인 병은 모양뿐만 아니라 크기도 다양하다. 750mL 스탠더드(Standard) 외에도 1.5L 매그넘(magnum), 375mL 하프 보틀(half-bottle), 187mL 피콜로(piccolo)가 있다. 피콜로는 딱 한 잔이 들어가는 용량이어서 기내 와인 서빙용으로 자주 이용된다. 하프 보틀은 두 사람이 한 잔씩 나눠 마시기 좋은 양이므로 한 끼 식사와 함께 남김없이 마시고 싶을 때 선택할 만하다. 또는 스탠더드를 사기에 와인값이 너무 비싼 경우 가격 부담을 덜고 구입할 수 있는 좋은 옵션이기도 하다. 하지만 와인 병의 크기가 작을수록 그 안에 담긴 와인의 숙성이 빨라진다는 점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작은 용기에 담긴 김치가 더 빨리 익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반대로 큰 병에 담긴 와인은 천천히 더 맛있게 숙성되므로 결혼한 해나 자녀의 생년 등 기념할 만한 빈티지의 와인을 오래 간직했다 훗날 열 계획이라면 매그넘 사이즈가 좋은 선택이다. 

모양과 크기를 막론하고 와인 병은 대개 불투명하다. 와인처럼 색이 예쁜 술도 드문데 왜 진한 녹색이나 갈색 병에 담는 걸까? 이는 와인이 직사광선에 약하기 때문이다. 햇빛이나 환한 불빛은 와인의 숙성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와인의 산화를 유발한다. 따라서 와인셀러가 없다면 창고나 지하실 등 집안에서 가장 어둡고 서늘한 곳에 와인을 보관해야 한다. 화이트 와인이나 로제 와인 중에는 투명한 병에 담긴 것들도 있는데, 그런 와인들은 대부분 숙성시키지 않고 빨리 마시는 용도다. 출시되자마자 소비될 와인이라면 굳이 색을 넣은 병에 담을 필요도 없고, 와인의 고운 색이 판매에도 도움이 되니 말이다.

그렇다고 투명한 병에 담긴 와인이 모두 숙성이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다. 다양한 예외들이 있는데, 고가의 샴페인 중에 크리스털이 좋은 예다. 크리스털은 ‘루이 로드레(Louis Roederer)’라는 샴페인 하우스의 아이콘급 와인이다. 이 샴페인이 투명한 병에 담기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는 샴페인을 무척 좋아했다. 늘 암살 위협에 시달리던 그는 루이 로드레에 특별 주문을 냈다. 샴페인에 독이 들었는지 검사하기 좋도록 병을 투명하게 만들고 병 바닥도 평평하게 만들어 움푹 들어간 곳에 폭탄을 숨길 수 없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만전을 기했음에도 황제는 결국 암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를 위해 만든 샴페인은 지금도 크리스털이라는 이름이 적힌 금빛 레이블을 두르고 바닥이 평평한 투명한 병에 담겨 판매되고 있다. 오랜 병 숙성을 거친 크리스털의 아로마는 환상적이다. 달콤한 꿀 향과 견과류 및 비스킷의 고소한 풍미가 와인 애호가의 입맛을 황홀하게 사로잡는다.


▒ 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