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이스털린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스티븐스 공과대학,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박사, 전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과 교수,  ‘지적 행복론’ 저자 사진 리처드 이스털린
리처드 이스털린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스티븐스 공과대학,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박사, 전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과 교수, ‘지적 행복론’ 저자 사진 리처드 이스털린

최근에 인터뷰한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는 ‘할 일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기대할 것이 있는 상태’를 행복으로 정의했다. 그는 인생 후반부에 대기업 임원에서 교수로, 작가로 직업을 바꿀수록 즐거움은 커지는 대신 소득은 줄더라고 했다. 검소한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의 너무 많은 시간을 돈을 벌기 위해 쏟지 말라’고 충고했다.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고, 원치 않는 일을 계속하면, 영혼이 망가진다고. 

영국의 경영사상가에게 들은 인문학적 충고를 미국의 경제학 석학이 통계와 도표로 증명해 냈다. 97세의 행복경제학자인 리처드 이스털린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국내에 처음 출간한 ‘지적 행복론’은 ‘얼마나 부자가 되어야 행복할까?’에 대한 경제학적 해답이다. 경제학의 언어로 밝혀낸 행복의 맨얼굴은 충격적이다. 

“소득은 행복과 비례하지 않는다. 소득이 늘어도 더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는 ‘사회적 비교’ 때문이다.” 이른바 주류 경제학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우울하고 권위적이며 얌체 같고 복잡한 경제학 이미지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97세 할아버지의 ‘해박한 스토리텔링’은 애덤 스미스 시절 경제학의 공리적 명예까지 회복시켰다. ‘행복경제학’의 창시자인 리처드 이스털린을 최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리처드 이스털린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사진 리처드 이스털린
리처드 이스털린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사진 리처드 이스털린

경제학자로서 ‘행복의 가성비’를 측정하게 된 이유가 있나.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자가 되기를 꿈꿨다. 그래서 궁금증이 생겼다. 돈이 많으면 정말 더 행복해지는 걸까? 오랜 시간 공들여서 ‘삶의 만족도’를 묻는 체계화된 설문조사로 두 가지 데이터를 모았다. 한 국가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시계열 데이터’와 동시대의 국가들을 서로 비교하는 ‘횡단면 데이터’를 수집해서 분석했다. 결과는 ‘소득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였다.”

행복과 소득의 특이점은 구체적으로 어떤 추이를 보였나.
“이제까지 소득이 낮은 경우에는 소득이 늘면 행복도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국민총생산(GNP)이 낮은 저소득국가보다 선진국이 더 행복 수준이 높고, 한 국가 내에서도 소득이 낮은 과거보다 현재가 더 행복 수준이 높다는 일반론이었다. 하지만 횡단면 데이터와 시계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저소득 국가 또한 해당 국가의 정치 사회적 맥락과 결부돼 소득이 급격히 늘어난다해도 사회적 만족도는 그에 비례하지 않았다.

선진국의 경우에도 실제로 미국은 70년 동안 실질 소득이 3배 증가했지만, 행복 수준의 장기적 추세는 변동이 없거나 하락세다. 표면적으로 보면 ‘모두가 소득이 증가하면 더 풍족해지는 것은 맞지만, 평균적으로 아무도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는 모순을 만나게 된다.”

빈부 여하를 막론하고 더 많이 벌려고 아무리 아등바등 노력해도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인가.
“그렇다. 행복과 소득은 단기적으로는 함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결정적인 이유가 뭔가.
“사회적 비교 때문이다. 핵심은 ‘얼마나 버느냐’가 아니라 ‘남보다 많이 버느냐’다. 실제로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을 대상으로 졸업 후 연봉 선택 실험을 했다. 실험은 제자들에게 다음의 두 가지 상황을 주고 선택하도록 했다. A는 연간 10만달러(약 1억2740만원)를 벌고, 동기들은 연간 20만달러(약 2억5480만원)를 번다. B는 연간 5만달러(약 6370만원)를 벌고, 동기들은 연간 2만5000달러(약 3185만원)를 번다. 

실험 결과 제자 중 3분의 2가 B를 선택했다. 절대적인 금액이 적더라도 내 소득이 친구의 소득보다 더 많은 상황을 선호했다. 상황을 판단할 때 마음으로 정하는 준거 기준은 대부분 사회적 비교, 타인의 상황을 관찰하면서 설정된다. 내 소득이 증가할 때 내 준거 기준 즉 타인의 소득도 증가하기 때문에 소득 증가가 행복에 미치는 순효과는 미미해지는 거다.”

‘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처방으로 소득 증가는 제로섬 게임이다’라는 이스털린의 역설은 보통 사람에게 굿뉴스인가. 배드뉴스인가.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하기 위해 돈을 좇는 무의미한 경쟁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니까.”

그는 좋은 삶의 구성에서 ‘가지고 있는 것과 가지고 싶은 것’의 대비에 주목하라고 했다.
“소득이 증가할수록 이미 갖고 있는 것만큼 갖고 싶은 것의 목록도 계속 증가한다. 주택, 고가의 가구, 자동차, 여행 등등. 랠프 월도 에머슨이 그랬다. ‘욕구는 자라나는 거인 같아서 그가 입은 외투가 자신을 덮을 만큼 컸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가지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그리고 가지고 싶은 것이 적을수록 행복의 수준은 높아진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덜 갖고 싶어 하는 것’이로군.
“정확하다! 많은 사람이 필요 이상의 큰 집과 자동차를 사고 큰 빚에 시달린다. 노후에는 필요한 것들도 줄어들고 물질적 욕구도 감소한다. 대출금과 그 밖의 빚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면 행복 수준도 올라간다. 교훈은 뭘까? 주변을 따라가지 말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 불필요한 빚을 만들지 않으면, 행복감이 올라간다. 언젠가 나도 축구 코치의 집에 놀러 가서는 저택의 웅장함에 놀라 돌아오는 길에 의기소침해졌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축구 코치의 집이 아니라 좋아하는 축구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비교 상황에 놓여도 ‘부럽지 않은 상태’는 거의 공중 부양의 경지다. 자족과 자제력은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행복을 결정하는 또 다른 요소는 무엇인가.
“조사 결과, 어른의 행복은 대체로 경제 상황, 가정생활, 건강이라는 세 가지 조건에 달려 있다. 행복 수준을 높이는 좀 더 확실한 방법은 돈 대신 시간을 활용하는 거다. 시간은 한정된 자원이다. 돈 버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 건강이나 가정생활에 시간을 쓰면 행복 증진 효과가 매우 뚜렷하다. 많은 사람이 경제 상황은 서로를 비교하지만, 건강과 가정생활은 그 자신의 히스토리 안에서 과거와 비교하기 때문이다.”

건강은 자랑할수록 서로의 행복에 도움 되나. 
“그렇다. 건강은 비교로 선순환이 일어나는 구조다. 소득이 제로섬 게임이라면, 건강은 윈윈 패턴이다. 모두가 소득에 올인하면 아무도 예전보다 더 행복해지지 않지만, 모두가 건강에 힘쓰면 다 함께 더 행복해진다. 건강의 준거 기준은 타인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좋았거나 나빴던 시절)이다. 타인의 건강 정보는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노화라는 변수가 있지만, 그건 매우 느리고 대체로 공평하게 진행된다. 당장 산책을 시작하고 건강하게 먹고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는다면, 우리는 어제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

결혼과 자녀는 행복에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치나. 
“데이터를 보면 함께 사는 파트너가 생기면 더 행복해진다. 결혼 그 자체가 부가적인 효과를 내지는 않는다. 결혼 후 2년이 지나면 행복은 결혼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간다. 또한 자녀가 있다고 부모가 인생 전반에 더 행복해졌는지는 불확실하다. 남녀에 따라 다르고 가치관이나 재정 변화에 따라 행복 수준이 오르락내리락 변화했다.”

중국, 소련, 동독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화하던 1990년대, 행복 수준이 오히려 떨어졌다는 통계가 흥미롭다. 국내총생산(GDP)은 급격히 증가했는데도 삶의 만족도는 왜 낮아졌나.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과 고용 안정성이 무너지고,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음주, 흡연, 자살률이 올라가고 가정 폭력과 이혼 가정이 늘면서 평범한 삶의 기반이 무너졌다. 사회주의 체제로 잘나가던 시절보다 복지 정책이 대거 후퇴했다. 일례로 사회주의 시절에 중국은 GDP가 미국의 10% 이하였지만, 중국인은 일과 가정의 복지 수준에 상당히 만족하며 지냈다. 1990년대 민영화로 GDP는 고속 성장했지만, 실업자가 속출했다. 나아가 대도시 중심으로 사회적 비교인 ‘왕서방 따라잡기’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물욕이 솟구쳤다. 소득의 준거 기준이 변한 거다.”

고용 안정성은 개인의 행복에 매우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미국인의 72%가 로봇으로 인한 실직을 걱정하는 반면 스웨덴 국민의 80%가 AI의 등장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통계는 의미심장했다. “우리는 일자리를 보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호하는 것은 노동자입니다”라고 말한 스웨덴 고용부 장관의 발언이 신선했다.
“일자리의 추세는 개인이 막을 수도, 완벽하게 대비할 수도 없다. 그래서 국가 정책 방향이 중요하다. 스웨덴 국민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로봇으로 자동화되는 걸 걱정하지 않는다. 노동자는 생활비를 지원받으면서 새로운 일을 얻기 위해 재교육받을 수 있어서다.”

연구해보니 행복을 장기적인 추세에서 관찰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짧은 기간 행복을 관찰하면 대체로 경제 상황에 따라 오르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행복의 추세를 증거로 ‘고정해서’ 파악하려면 30년 정도의 장기 관찰이 필수였다.”

긴 시간 관찰해보면 몇 살 때 삶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가.
“보통은 50세까지 하락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계속 상승하는 U 자형 곡선을 그린다고 알고 있지만, 아니다. 행복에 관한 생애 주기는 파도 모양이다. 10대까지 상승하다 20대 초·중반에 바닥을 친다. 이후 30대 중·후반까지 서서히 상승한다. 그러다 하락세로 접어들고 50대가 되면 다시 바닥을 친다. 마지막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타면서 70대에 최고조에 달한다. 그런 다음 세 번째로 하락세를 보인다. 정리하면 평균적으로 10대, 30대 후반, 70대에 최고조를 보이지만, 20대, 50대, 80대 이후에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 패턴에는 경제 상황, 가정, 건강이라는 행복의 세 가지 요소가 잘 녹아있다. 20대 하락은 직장 때문에 생긴다. 20대에서 중년까지는 주로 가정생활이 행복을 좌우한다. 60대에 이르면 은퇴로 행복 수준이 올라가고 노년의 황금기가 지나면 배우자 사망과 건강 악화로 다시 바닥을 친다.”

당신은 어느 시기에 어떤 이유로 가장 행복했나.
“행복이 바닥을 친다는 50대에 재혼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를 맞았다.”


이 책의 헤드 카피는 ‘97세 경제학 교수가 물질의 시대에 던지는 질문’이다. 마지막으로 “얼마나 부자가 되어야 행복할까?” 이 물음에 현답을 부탁한다.

“여러분보다 더 많이 살아온 노교수의 말을 믿어도 좋다. 97세가 될 때까지 나는 수많은 데이터와 증거를 들이밀며 입증했다. 부자가 된다고 더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부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시간을 줄이고, 가정생활과 건강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라. 진심으로 ‘행복의 가성비’를 생각한다면, 돈 버는 데는 관심을 덜 가지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