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겸 기술고문 하버드대 응용수학과 중퇴, 현 빌&멀린다게이츠재단 회장,전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 사진 John Keatley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겸 기술고문 하버드대 응용수학과 중퇴, 현 빌&멀린다게이츠재단 회장,전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 사진 John Keatley

세상은 부자인 동시에 현자인 사람을 의심한다. 2026년 화성 이주 계획을 세우고 57조원 트위터 인수 계약을 파기한 ‘악동’ 일론 머스크에 비해,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지루할 정도로 장기적인 안목과 올바른 눈으로 정교한 빅픽처(큰 그림)를 그리곤 했다. 혁신 기술 전문가인 한 억만장자가 꾸준하게 지구 생태계의 병든 구석구석을 탐지하고, 솔루션을 내는 이유가 뭘까? 예컨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라는 시련을 통과 중인 지구 공동체에서 영웅이 되고 싶다거나 혹은 그것을 기회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다거나.

그런 와중에 최근에 출간된 ‘빌 게이츠 넥스트 팬데믹을 대비하는 법’이라는 책을 읽고, 나는 동시대인으로서 그의 방대한 지식과 통찰에 호기심을 느꼈다. 게이츠는 재단 내 감염병 모니터링팀을 통해 코로나19를 일으키는 바이러스 ‘SARS-CoV-2’를 팬데믹 전부터 추적해왔다. 

다행히 그가 내가 제안한 이메일 인터뷰를 수락했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게 나는 공사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질문을 던졌다. 예컨대 백신에 칩을 심었다는 음모론을 들었을 때 화가 났는지, ‘뇌를 중앙처리장치(CPU)처럼 활용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지, 컴퓨터와 바이러스의 시대를 관통해서 격동의 빌 게이츠로 사는 건 어떤 기분인지⋯. 돌아온 그의 대답은 훨씬 포괄적이고 드라이했다. 빌 게이츠는 미래를 내다보는 현재적 과제를 중요시했고, 그런 이유로 사적 구설에 휘말리지 않는 중립적이고 효율적인 화법을 선호했다.


사진 John Keatley
사진 John Keatley

얼마 전에 당신은 재단에 200억달러(약 26조6600억원)를 추가 기부했다. 재단 자원의 상당 부분이 워런 버핏에게서 나왔다고 감사를 표하면서. 팬데믹 예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투자라고 여러 번 강조했는데, 어떤 부분에 투자해야 하나.

“투자가 필요한 네 개 분야가 있다. 첫째, 차세대 백신 치료법과 진단법을 개발하는 연구개발(R&D). 둘째, 새로운 병원체를 빠르게 탐지하게 해주는 질병 모니터링 시스템. 셋째,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지켜보고 아웃브레이크가 일어난 즉시 대응하는 팀(나는 이것을 GERM(Global Epidemic Response and Mobilization, 글로벌 감염병 대응·동원팀)이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부유한 국가들이 글로벌 펀드 같은 기관에 대한 기부나 해외 지원에 너그러운 태도를 보임으로써 전 세계 보건 시스템 강화에 투자를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간 10억달러(약 1조3330억원)가 투자돼야 하는 감염병 국제기구 GERM은 매우 합리적이고 절실한 대안이다. 하지만 리쇼어링 등 자국 중심의 ‘반세계화’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외교적 계산이 복잡한 지금 이 시점에서, 가능할까.

“코로나19는 엄청난 비극이다. 6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았고 수백만 명을 빈곤으로 밀어 넣었다. 세계 경제의 복구 비용은 14조달러(약 1경8662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지금 같은 복잡한 정세에서 당장 적절한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대안을 고려하는 세계 지도자들이 이런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는 데 꼭 필요한 초국가적 기구 GERM에 투자를 우선할 것이라 믿는다.”

그는 GERM은 팬데믹을 선언할 권한이 있어야 하며 각국 정부와 세계은행과 협력으로 자금을 빠르게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팬데믹 예방 실전 훈련으로 ‘세균 게임(germ game)’도 제안했다.

“세균 게임은 국가들이 따로, 또 같이, 또 다른 치명적 아웃브레이크가 발생할 경우 할 일을 연습하는 시뮬레이션 훈련이다. GERM이 훈련을 주도하고 그 결과를 각국 리더에게 권고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상황에 나는 희망을 품고 있다.”

빌 게이츠의 희망과 일반인의 희망은 같은 종류의 것일까.

“그렇게 생각한다. 팬데믹에 대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바이러스를 만났을 때, 우리는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세계의 대응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희망적인 면이 있었다. 

연구원들의 밤낮 없는 노력 덕분에 병원체를 확인하고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백신이 나왔다. 세계 보건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적이었다. 백신이 아니었다면 사망자가 두 배로 늘어났을 거다. 전 세계 의료인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환자를 돌보다 목숨을 잃은 사람이 11만 명이 넘는다. 우리는 이번 팬데믹을 배움을 얻을 마지막 기회로 삼아야 한다.”

코로나19 백신, 치료제, 진단 방법 개발을 끌어내는 데 당신과 그 팀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나.

“인플루엔자와 유사한 낯선 질병이 퍼지고 팬데믹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를 받은 건 2020년 1월이었다. 모니터링팀의 요청에 따라 당장 코로나19 연구 1차 자금을 위해 500만달러(약 66억원)를 승인했다. 그 뒤 2월 중순 남아프리카에서 돌아온 후 전 세계 바이러스 전문가들과 재단팀 10여 명을 초대해 저녁 식사를 했다. 똑똑한 사람 10여 명과 가감 없이 질문과 답을 듣는 이 ‘실무 만찬’을 나는 오랫동안 신뢰해왔다. 이를 토대로 팬데믹 예방에 20억달러(약 2조6660억원) 이상을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14억 도즈(1회 접종량) 이상 만들게 하는 프로젝트 등에 자금을 지원했고, 개발도상국의 저비용 검사 및 유전체 분석에 자금을 대서 변종에 대응한 것도 중요한 역할이었다.”

빌 게이츠는 자신이 감염병에 집착한다고 고백했다. 심지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웹사이트는 전 세계의 질병과 보건 문제를 추적하는 데이터를 모아둔 ‘세계질병부담’이라는 이름의 사이트다. 

이 웹사이트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사는지, 무엇 때문에 아픈지, 시간에 따라 이 데이터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등의 자료를 살피며 몇 시간씩 보낸다.

영웅심과 이익 추구가 아니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의미 있는 일에 인생의 후반부를 던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한다. 그리고 일부 대중은 여전히 음모론에 마음을 빼앗긴다. 나는 이참에 그가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을 좀 더 강하게 던져보았다.

음모론에 더 효과적으로 대처할 생각은 없나.

“공개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당연히 부작용도 따른다. 빌&멀린다게이츠재단(이하 게이츠재단)이 보통 정부가 도맡는 일, 소아마비와 싸움이나 세계보건기구(WHO) 같은 조직에 대한 지원 등 큰 계획이나 기관에 자금을 대는 압도적인 위치에 있다는 비판의 말은 옳다. 그러나 이 재단의 자금 지원이 줄어든다면, 누구보다 기뻐할 사람은 나다.”

그럼에도 그는 “혁신을 주도하는 민간 부문의 힘을 굳게 믿는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가진 자원의 대부분을 더 공정한 사회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몇 년 전 약속을 지키는 것”뿐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백신 연구에 대한 게이츠재단의 지원과 그 결과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다.

통상 5년 이상 소요될 백신 개발이 12개월 만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건 정말 기적이다. 앞으로 나타날 새로운 호흡기 질병에 대해서 백신의 대응과 보급은 이보다 더 빨라질 수 있을까.

“게이츠재단이 설립을 도운 CEPI(감염병 유행 대비 혁신 연합)는 병원체를 확인하고 100일 이내에 백신을 전달한다는 목표로 전 세계 과학자, 정부, 의료 기관과 협력하고 있다. mRNA(전령 RNA) 플랫폼을 기반으로, 비강 분무로 접종하는 백신, 여러 병원체에 효과 있는 통합 백신 등이 하루빨리 나와줄 것으로 기대한다.”

국립감염병연구소 소장인 앤서니 파우치 박사와 협업은 계속 이어지나.

“파우치 박사는 반세기 이상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말라리아, 에볼라 등의 질병과 싸워 왔다. 팬데믹 기간에 우린 더 자주 접촉하면서 서로의 정보를 비교하고 배움을 얻었다. 혁신적인 치료제, 거리 두기와 마스크 사용 등에 관한 대외 인터뷰에서도 같은 톤을 유지했다. 그와의 협력 관계는 우리 재단이 이 분야에서 하는 일에 대단히 유용하고, 파트너십은 계속될 것이다.”

빌 게이츠는 누가 팬데믹에 관한 의제를 주도하는지, 성공적인 아이디어를 누가 매뉴얼화하고 빨리 대량 제품화하는지, 명확히 해야 한다고 했다. 계획이 마련돼 있지 않으면 정부는 너무 늦은 반응적 조치에 머물게 될 거라고.

현재 바이러스가 엔데믹으로 수용되는 과정에서 한국은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고, 극장과 공연장, 도로와 공항은 인파로 터져나간다. 일상 회복은 감사한 일이지만, 인플레이션이 시작됐고, 변이가 증폭되는 가운데 원숭이두창 1만4000여 건 발생 소식 등 새로운 감염병의 출현도 두렵다. ‘넥스트 팬데믹을 대비하는 법’과 연관 지어 앞으로 10년간 펼쳐질 이 세계에 대한 당신의 선견지명을 부탁한다.

“원숭이두창은 지금으로서는 팬데믹에 준하는 위협으로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것이 무엇을 시사하는가다. 국경은 더 이상 감염 질환을 막는 기능을 하지 못한다. 각 나라는 이제 세계적인 규모의 아웃브레이크 가능성에 준비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나 집단의 이익을 최적화하는 문제에 대해서 논란이 있을 거다. 건전한 대화로 정부와 시민이 적절한 균형을 찾아갈 것이라고, 나는 낙관한다.

지난 몇 년간 세계는 대단히 큰 시련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세상은 더 나아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기 동안에도 우리는 믿기 힘든 혁신을 목격했다. 향후 10년 안에 우리는 제조가 쉽고, 여러 종류의 호흡기 병원체 감염을 장기적으로 막아 주는 차세대 백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발달한 유전체 기술로 많은 사람을 검사해서 바이러스를 빠르게 감지하고 즉시 억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의료, 기후 등 여러 영역에서 놀랄 만한 혁신이 있을 것이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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