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저출산 등으로 인구가 줄고 국가가 소멸할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사진 셔터스톡
지금 우리는 저출산 등으로 인구가 줄고 국가가 소멸할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사진 셔터스톡

올해 우리 나이로 90세인 내 아버지는 3남 2녀 중 넷째이고, 남자 형제 중에서는 막내였다. 그중에서 아버지의 큰형님인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부부는 슬하에 9남매를 두셨다. 유산이나 사산 혹은 어린 시절 질병이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들까지 포함하면 자녀는 모두 13명이었다고 한다. 

큰어머니가 13남매를 낳아 기르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1955년부터 1964년 사이,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막 베이비붐이 일어나기 시작한 때다. 당시 한국전쟁이 끝나고 출산율이 급격히 높아지자, 식량을 비롯한 각종 자원이 부족했던 정부에서는 대대적인 출산 제한 즉 산아 제한(産兒制限)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그때 정부에서 내세운 구호들은 거칠고 노골적이었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1960년대).’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1970년대).’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1980년대).’ 당시 정부는 출산을 조절하기 위해 피임약을 대대적으로 공급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낙태를 권장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0.81명이다. 합계출산율이란 임신 가능한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로, 그 나라의 출산력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그러니까 0.81명이란 수치는 가임여성 1명이 1명의 아이도 낳지 않는다는 소리가 된다. 

출산율이 인구 유지에 필요한 수치 아래로 떨어지는 현상을 ‘저출산’이라고 한다. 합계출산율이 2.1명 아래이면 저출산, 1.3명 미만이면 ‘초저출산’이라고 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대한민국은 가장 대표적인 초저출산 국가인 셈이다. 우리나라가 어쩌다가 이렇게 인구를 유지하기도 힘든, 그러니까 나라의 존립을 위협받는 초저출산 국가가 된 것일까? 정부가 내세우는 ‘아이 좋아, 둘이 좋아!’라는 출산 장려 구호가 허황하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저출산을 어떻게 볼까? 진화심리학의 양대 키워드는 ‘생존’과 ‘번식’이다. 사람들은 최소한의 생존이 보장되면 번식, 그러니까 후손의 재생산을 위해 노력한다. 생존과 번식은 본능에 가깝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후손을 남기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들은 왜 자살을 하는가?’ ‘사람들은 왜 동성애를 할까?’ ‘요즘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으려 하지 않는가?’ 뭐 이런 종류의 질문을 받으면 진화심리학자들은 상당히 곤혹스럽다. 생존과 번식이 본능이라면서, 왜 이에 반하는 일들이 벌어지는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이 저출산에 관한 질문을 자주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이 보장되면 곧장 번식을 위한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외부 환경이 생존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경쟁에 내몰려 자녀 양육보다 ‘생존’에 올인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의 대답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구학자이니만큼 그는 인구 변동에 관한 데이터를 가지고 최근의 저출산 문제에 대해 접근한다.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초저출산의 원인을 ‘인간 본성’에서도 찾아보려고 한다. 

조 교수의 저서 ‘인구 미래 공존’에 나오는 ‘인간 본성에서 찾아본 초저출산의 원인’을 보면 사람들은 생존에 너무 바빠 출산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경쟁에 내몰린 인간은 자녀 양육보다 생존에 올인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을 여러 인구학자의 논문과 데이터가 뒷받침한다. 

인구학자 볼프강 루츠가 2006년 145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들은 합계출산율이 낮았다. 2017년 올리버 승 박사의 연구도 같은 논지다. 인구 밀도가 높을수록 미래지향적인 성향이 짙고, 그럴수록 출산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높은 인구 밀도가 사람의 경쟁을 촉발하고, 그것이 사람을 생존에 급급하게 만들어 출산과 양육을 가로막는다는 말이다. 

생물학 이론에 생활사 전략(Life History Strategy)이라는 게 있다. 이 이론도 생존과 번식이라는 개념이 바탕이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대략 3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첫 번째 단계가 생존과 관련된 체세포적 노력(somatic effort) 단계다. 이 시기는 통상 10대 사춘기 이전까지다. 사람들은 이 시기에 자기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데 에너지를 사용한다. 두 번째, 세 번째 단계는 번식과 관련된 단계다. 

두 번째 짝짓기 노력(mating effort) 단계는 통상 사춘기부터 결혼 전까지다. 이 단계에서는 짝을 유혹하고 교제하기 위해 경쟁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 세 번째 단계는 결혼 이후 육아 노력(parenting effort)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자기 자손이 기본적인 생존 능력을 갖출 때까지 에너지를 쏟는다. 

문제는 최근 우리나라 같은 초저출산 국가는 말할 것도 없이 세계 많은 나라에서 위에서 말한 생활사 전략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두 번째에서 세 번째 단계로의 이행이 순조롭지 못하다. 이것은 사춘기를 지나 이미 성인에 이르렀는데도 불구하고, 경쟁이 두려워 첫 번째 체세포적 노력 단계에 자발적으로 정체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특히 두 번째 단계에서의 짝짓기 노력을 통해, 출산하고 그에 대한 양육을 하는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데, 첫 번째 단계에서부터 발목이 잡히더니 짝짓기 노력 단계에서는 각종 편법, 부작용이 생겨난다. 프리섹스 풍조나 짝짓기가 결혼과 양육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 결혼 후에도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이 가능한 것은 피임약의 사용, 낙태의 허용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런 풍조의 이면에는 공동체를 벗어나서는 일체의 생존이 불가능했던 근대 이전과는 달리 현대 사회는 돈만 있다면 얼마든지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개인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 여성의 경우 양성 평등, 페미니즘 풍조 등이 더욱 이런 개인주의를 고조시킨다.

한편 회사 내에서의 승진 등 각종 경력을 관리하기 위해 결혼을 늦추는 만혼(晩婚)도 노산(老産) 등 건강상의 문제로 이어져 출산에 악영향을 미친다. 아예 결혼하지 않는 비혼(非婚)의 경우 출산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두말하면 잔소리다. 

내가 진화심리학 이론이나 인구학자들의 데이터를 함께 인용하며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은 저출산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간파하자는 뜻이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야 할 주체인 정책 당국이 문제의 본질을 놓치고 엉뚱한 곳에서 해법을 찾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출산의 주인공들은 경쟁의 한복판에 내몰려 생존에 허덕이면서 체세포적 단계에 머물고 있다. 그들은 육아 노력은커녕, 짝짓기 노력조차 힘에 겨워한다. 그럼에도 이런 근본적인 문제점을 보지 못하고, 결혼 장려금이나 양육비 지원 등 비본질적인 문제에 매달리는 현실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지금 우리는 인구가 줄고 국가가 소멸할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가 불과 한 세대 전의 일이건만 아득한 옛날의 일 같다.


▒ 김진국
문화평론가, 고려대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