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트 하인리히버몬트대 생물학부 명예교수 메인주립대 동물학 석사,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UCLA) 동물학 박사, 전 캘리포니아대버클리(UC버클리) 교수 사진 베른트 하인리히
베른트 하인리히버몬트대 생물학부 명예교수 메인주립대 동물학 석사,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UCLA) 동물학 박사, 전 캘리포니아대버클리(UC버클리) 교수 사진 베른트 하인리히

남녀노소 불문하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도심과 트랙을 달리고 있다. 족저근막염이나 슬개골 마모로 통증을 호소하다가도, 나을 만하면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두 발을 동력 삼아 심장 박동 수를 올리는 러너들을 나는 심심찮게 보았다. 꾸준한 달리기로 삶과 일의 루틴(routine)을 쌓고 자신감을 충전하는 사람들, 함께 달린다는 이유로 동지애를 느끼는 사람들.

왜 누군가는 어느 순간 달리기를 멈추고, 누군가는 팔십이 넘어도 숨이 찰 때까지 달릴 수 있는 걸까. 달리면 정말 더 건강해지고 행복해질까? 달린다고 더 오래 살 수 있을까?

여기 달리기만으로 지구를 네 바퀴 돈 80세 생물학자가 있다. 베른트 하인리히. 깊은 숲 오두막에 살며 뛰고 관찰하고 강의하고, 최고 수준의 논문까지 척척 써내는 그를 사람들은 ‘우리 시대의 소로’ 혹은 ‘달리는 찰스 다윈’이라고 부른다.

41세에 1.6㎞당 평균 6분 38초의 속도로 80㎞를 달려 장년부 신기록을 보유한 세계적인 달리기 선수. 서른여덟의 젊은 나이에 캘리포니아 주립대 정교수가 되었는데, 3년 만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향에 통나무집을 지어 자연으로 돌아간 사람.

숲속의 현자이자 80년 관록의 러너인 베른트 하인리히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뼛속까지 러너인 그는 최근 생물학과 달리기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책 ‘뛰는 사람’을 펴냈다. 현재 버몬트대 생물학부 명예교수로, 숲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베른트 하인리히 버몬트대 생물학부 명예교수. 사진 베른트 하인리히
베른트 하인리히 버몬트대 생물학부 명예교수. 사진 베른트 하인리히

러너로서 어떤 길을 달렸나.
“여태껏 나는 지구를 네 바퀴는 돌았다. 말벌에게 쏘였고 모기에게 산 채로 뜯어먹혔고, 아프리카에서는 체체파리에게 물렸다.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웨스트밸리⋯, 수많은 길을 달렸다. 100마일을 12시간 27분 2초에 달렸고,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252.2㎞를 달리기도 했다.”

24시간 달리기 경주가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더라. 달리는 동안 몸은 어떤 변화를 겪나.
“하루 낮과 밤을 꼬박 뛰려면, 일단 대회 전 이틀은 공복으로 뛰어 탄수화물을 고갈시키고, 이틀은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방식으로 달리기 직전 마지막 대변이 나오도록 조절해야 한다. 간간이 즐거운 일을 떠올리고, 대부분 시간은 몸을 기계처럼 움직여 머리를 비운다. 시간과 싸움이다. 몸이 자동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동작이 매끄럽게 통제되고 경제적으로 움직인다. 그런 상태가 되면 꿈을 꿀 수도 있다.”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전략은 ‘도망치기’라는 속담도 있다. 달리기는 실제로 진화에 유용한 선택인가.
“그렇다. 식량을 구하고 포식자에게서 도망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달리기는 암컷과 수컷 모두에게 유익하다. 인간은 땀 흘리는 능력이 있어서 더위에 지친 맹수가 없는 틈을 타 먹이를 구할 수 있었다. 뛰어다닌 만큼 자손들을 먹여 살렸던 거다.”

인간의 달리기와 꿀벌의 비행 사이에도 비슷한 점이 발견된다고.
“그렇다. 나는 UC 버클리 비교생리학 강의에서 학생들과 벌의 체온 조절 생리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인 잭 펄츠가 역사상 가장 더운 날에 열린 1976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물병의 물을 머리에 반복적으로 쏟으며 달렸기 때문이었다. 그 후 나는 벌도 비행할 때 같은 방식을 사용해 열을 식힌다는 것을 발견했다. 보통 꽃꿀의 90%는 물이다. 꿀이 되려면 수분을 증발시켜야 하는데, 벌은 이 잉여의 물을 비행 중 몸을 식히는 데 사용하는 거다.”

운동은 수명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나.
“나는 젊은 선수 시절에 근육에 통증을 달고 살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통증이 거의 없다. 가벼운 상처가 자극되어 몸을 전보다 더 높은 단계로 만드는 ‘역노화 과정’이 일어나는 듯싶다. 운동은 회춘보다 보수에 도움이 되는 자극이다. 그런 식으로 달리기가 내 삶의 질을 높여주긴 했어도, 궁극적으로 노화를 막지는 못했다.”

음식은 어떤가.
“잉여 칼로리를 섭취한다는 건 더 빨리 자라 더 빨리 성숙해지는 바람에 수명이 짧아진다는 뜻이다. 일례로 먹이 섭취를 제한한 생쥐와 생물이 더 오래 살았다.”

오래 살려면 덜 먹어야 한다는 결론에 마음이 뜨끔했다.

베른트 하인리히 버몬트대 생물학부 명예교수. 사진 베른트 하인리히
베른트 하인리히 버몬트대 생물학부 명예교수. 사진 베른트 하인리히

자신을 실험체 삼아 연구한 운동과 수명의 연결고리를 알기 쉽게 정리해달라.
“비유하자면 몸은 집과 같다. 모든 집은 결국 닳아서 기본적인 ‘뼈대’를 제외하면 사라진다. 바람이나 날씨, 벌레, 번개 같은 것이 영향을 준다. 집을 사용하다 보면 망가지는 부분이 생기고, 수리를 하지 않나. 새는 곳을 막고 창유리를 교체하는 등. 따라서 집을 더 많이 사용할수록 집은 원래 상태를 더 잘 유지하게 된다.

노화라는 건 사소하거나 심각한 문제가 천천히 쌓여가는 과정이다. 여느 운동과 마찬가지로 달리기는 가벼운 상처를 통해 몸의 수리 메커니즘에 경고하는 자극이다. 여러분은 내가 유전적으로 달리기 능력을 ‘타고났다’고 생각하겠지만, 비슷한 유전자를 공유한 내 누이는 평생 한 발짝도 뛰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최근에 무릎 수술을 받았다.

살면서 ‘이젠 정말 달리기는 끝이야’라고 확신한 순간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기적처럼’ 회복했다. 그게 모두 달리기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정말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분명 회복했고 그건 매번 마법 같은 선물이었다.”

60세에 “더 달리면 환자분 슬개골을 벗겨다가 쓰레기통에 버리겠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도 경기에 나가 기록을 세웠다고. 수영하라는 의사의 충고를 왜 듣지 않았나.
“정확히 기억난다. 하지만 그 후 ‘어르신 심장은 열여섯 살짜리 운동선수 심장 같네요’라는 말도 들었다. 무릎 상태도 괜찮았다. 평생 뛰어본 적이라고는 없는 내 또래 친구들은 진작 무릎과 고관절 수술을 받았는데 말이다.

요새는 수영을 한다. 오두막 근처에 개울이 있다. 당시에는 가까이 개울이 없었다. 수영장도 농구장도 테니스장도 없었다. 당시에 할 수 있는 건 달리기뿐이었다.”

내가 아는 100세 가까운 현역 패션 디자이너는 젊은이들에게도 “야망이 있으면 일을 그르치니 에너지의 80%만 쓰고 비축하라”고 충고하더라. 실제로 지구력과 에너지의 특별한 상관관계가 있나.
“야망과 열정이 같은 것은 아니다. 야망은 역경에 맞서 애써 위로 올라가려는 것이다. 반대로 열정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눈사태처럼 자신을 붙들고 가속도를 내서 그리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든가. 실제로 자연 선택은 무작정 속도를 폭발시키는 대신 에너지를 아껴 써서 지구력을 증진하는 일을 해왔다. 타오르는 열정을 식히는 것 자체가 노화의 일반적인 과정 아닐까.”

종종 나는 시간이 주인공인 세계에서 미끄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선생도 시간과 레이스에서 낭패감을 느낄 때가 있는가.
“당연하다. 나도 환갑이라는 나이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찾아와 충격을 받았다.”

모든 생물에게 생체 시계가 있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일까. ‘전도서’의 구절 “모든 것은 때가 있나니”와 함께 그 챕터를 읽으니 더욱 오묘하더군.
“시간이야말로 우리 삶의 근본을 이루는 요소다. 사소한 사건이 꾸준히 쌓여 마침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자연의 운영 방식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시간과 타이밍은 생명체에 굉장히 중요하다. 길 찾기와 짝짓기를 포함해 시간에 좌우되는 활동이 많다.

양봉가였던 카를 폰 프리수의 꿀벌 관찰을 시작으로 생물학자들은 동식물의 시간 추적 능력을 알게 됐다. 우리 모두 삶의 속도와 노화, 수명을 관장하는 각자의 생체 시계를 장착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성경 인용구에는 분명 진리가 담겨 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

그런데 선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도 대학을 졸업할 때도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인생에서 어떤 계획을 세우기에도 막막하고, 계획을 세워도 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보다 분명한 달리기의 세계에 매료되었던 건 아닌가.
“맞다. 나는 달리기의 단순 명료함을 좋아한다. 하지만 실제로 아무 계획이 없었다. 그저 그때그때 관심 있는 것을 좇았을 뿐이다. ‘지금’ 달릴 수 있으니 달리고, ‘지금’ 뒤영벌 애벌레가 내 앞에 있으니 놀고 연구하는 것이었다. 어릴 때나 늙을 때나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여전히 ‘지금’ 재미있는 걸 한다.

너무 앞서서 일일이 계획하다 보면 오히려 막다른 길에 도달하거나 좌절하기 쉽다. 오히려 끌리는 일을 하면 하나 다음에 다른 하나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건 결과가 아닌 새로운 행로의 시작이 되곤 한다. 돌아보면 생물학과 달리기의 인연은 정말이지 신기하다. 내가 그 길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은 건, 그저 그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80년을 달린 후 도달한 결론은 무엇인가.
“여든 살이 돼서도 달릴 수는 있지만 더 이상의 경주는 무리다(웃음). 달리기로 한창 꽃을 피우던 시절은 오래전에 지나갔다. 시간은 흘러간다. 그러나 꽃이 꺾이고 시들었을지라도 그 씨앗은 싹을 틔울 수 있다. 그게 모든 생물을 위해 생체 시계가 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인생에서 어떤 자세로 얼마만큼 어떤 기분으로 뛰는 것이 가장 좋은가.
“모든 것은 다 상대적이다. 나는 항상 한 번에 한 걸음씩 나아가라고 조언한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중요하다. 목표를 지나치게 높이 잡는 것은 좋지 못하다. 분명 크게 실망할 테니까. 

가끔은 내가 해낸 일 중 시도하기 전에 과연 할 수 있을지 의심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러다 나중에 더 안 좋은 시나리오를 깨닫게 된다. 할 수 있는 것인데 시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