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골퍼에게 영감을 준 벤 호건. 사진 아마존
수많은 골퍼에게 영감을 준 벤 호건. 사진 아마존

‘불굴의 승부사’ 벤 호건은 평생에 걸쳐 완벽한 스윙을 갈구했으면서도 ‘골프는 실수의 게임(Golf is a game of misses)’이란 명언을 남겼다. 그는 한 경기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결과의 샷이 나오는 경우는 대여섯 번 미만이라고 했다. 이런 골프 경기에서 우승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원하는 결과와 다른 샷이 나올 경우에도 최대한 ‘좋은 실수(good miss)’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좋은 실수’란 말은 동그란 세모처럼 형용 모순 아닐까. 그렇지 않다. 골프는 대자연 속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 속에서 공이 어디에 떨어져 어떤 라이에 멈출지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는 스포츠다. 다만 원하는 곳에 가깝게 공을 갖다 놓으려 노력할 뿐이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좋은 실수는 실수(mistake)와는 다른 개념이다. 

100% 원하는 거리와 방향의 샷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다음 샷으로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얻도록 계획하는 것이다. 벤 호건은 이처럼 골프라는 게임의 본질이 완벽한 스윙에 있지 않고 실수하더라도 다음 샷을 통해 만회가 가능한 범위 안에 두려는 노력이라고 본 것이다. 

호건이 말한 골프 게임의 본질은 벤저민 그레이엄이 설파한 ‘안전마진’의 속성과 닮았다. 그레이엄은 시장에 형성된 주식의 가격은 이미 모든 정보가 반영된 적정한 가격이므로 투자자가 계속해서 시장을 능가하는 초과수익을 얻을 수 없다는 ‘효율적 시장이론(Efficient Market Theory)’을 부정했다. 그레이엄이 간파한 주식 시장의 작동 원리는 ‘미스터 마켓’이라는 가상의 조울증 환자에 가까웠다. 주식 시장에 비관주의가 팽배할 때는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낙관적일 때는 턱없이 높은 가격에도 거래가 이뤄졌다. 그렇다면 조울증 환자가 비관적일 때 주식을 사서, 낙관적일 때 팔면 초과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스터 마켓이 언제 기분이 좋아지고 언제 기분이 나빠질지는 예측할 수 없다. 미래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기업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내재가치보다 훨씬 싼 가격에 주식을 구매하는 ‘안전마진’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그레이엄은 “투자는 아이큐와 통찰력 혹은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과 태도의 문제다”라며 “투자란 철저한 분석을 통해 원금을 안전하게 지키면서도 만족스러운 수익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투기다”라고 분명히 구별했다. 그는 또 행운이 초래할 수 있는 더 큰 불행을 경계했다. “강세장에서 최대의 도박으로 최대의 이익을 얻은 사람들은 거의 항상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약세장에서 가장 큰 손실을 보는 사람들이다”라는 것이다. 결국 “현명한 투자자는 비관주의자에게서 주식을 사서 낙관주의자에게 판다”고 했다. 

그레이엄은 가치 투자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증권 분석(데이비드 도드와 공저)’과 ‘현명한 투자자’를 통해 예측할 수 없고 변덕스러우며 위험한 금융 시장에서 투자자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소중한 지도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주에 이어 그레이엄이 설파한 가치 투자의 핵심 내용들을 국내의 대표적인 가치 투자자인 박성진 이언투자자문 대표와 함께 살펴본다.


1│그레이엄이 과학적 증권 분석에 눈을 뜬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그의 저서들이 영원한 생명력을 얻게 된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레이엄이 월 스트리트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주식은 거의 예외 없이 투기 수단으로 여겨졌다. 회사의 영업 실적이나 재무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이런 정보는 대부분 쓰레기 취급을 당했고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정보는 내부자 정보였고, 기업들의 재무 정보를 연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던 시절이었다(벤저민 그레이엄, 굿모닝북스). 하지만 천동설이 지동설로 서서히 바뀐 것처럼 기업의 내재가치를 계산하고 투자의 이점을 찾아내는 작업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구시대의 왜곡된 전통에 영향을 받지 않았던 그레이엄은 금융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동인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스스로 탐구하고 생각하며 비판하는 능력을 갖춘 그레이엄은 월 스트리트라는 곳이 증권의 가치에 대한 진실되고도 예리한 분석의 잣대로 검증해야 할 개척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레이엄의 저서가 세상에 나오고 워런 버핏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레이엄의 가치 투자는 대공황 이후 1940년대의 침체기와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 침체를 동반한 물가 상승) 시기, 2000년대의 닷컴버블 붕괴, 2008년 금융위기, 2020년의 코로나19 폭락 시기를 모두 견뎌내며 여전히 작동 중이다. 9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투자자들의 성공담이 이어지고 있으며,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인간의 본성이 바뀌지 않는 한 그레이엄의 가르침은 앞으로도 계속 작동할 것이라 생각한다.”


2│알 수 없는 미래에 대비해 내재가치보다 훨씬 싼 주식을 찾아다니는 투자를 두고 ‘담배꽁초 주식’ ‘공짜 흡연’이란 거친 표현도 등장한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그레이엄의 안전마진은 싸게 사는 것, 즉 가격을 강조한다. 주가가 올라 가치와 차이가 줄어들면, 다시 말해 안전마진이 줄어들면 팔아야 하는 것이다. 워런 버핏도 초기에는 이런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여 투자했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버핏의 운용 금액이 계속 커지면서 이런 투자는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별 볼 일 없는 기업을 싼 가격에 사는 것은 단기적 투자 대상으로는 매력적일 수 있지만, 그런 기업들은 기반이 취약해 꾸준히 큰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버핏은 이를 데이트 상대가 아니라 결혼 상대를 고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비유했다. 결혼 상대는 데이트 상대를 고를 때보다 더 많은 조건을 따져야 한다. 버핏의 운용 자금이 커지면서 버핏은 결혼 상대를 고르기 시작했고 이전의 투자를 담배꽁초 투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버핏은 담배꽁초 투자가 나쁘다고 얘기하지는 않았다. 본인이 적은 금액을 운용하는 동안에는 매우 잘 들어맞았던 투자 방식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일부 자금은 담배꽁초 투자를 병행하고 있다. 버핏은 2000년대 중반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한국의 대한제분, 현대제철, POSCO 같은 주식을 사서 수익을 보고 2010년대에 대부분 처분했다.”


3│그레이엄이 말한 이런 주식을 골라내는 공식이 있는지. 지금도 통용되나. 

“그레이엄은 방어적 투자자들의 주식 투자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종목 선정 기준을 제시했다. PER(주가수익비율) 15배 이하, PBR(주가순자산비율) 1.5배 이하이면서 재무 상태가 우량하고 규모가 큰 기업이 그런 기준이다. 하지만 그 기준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실제로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만 보더라도 시간이 흐르고 투자 환경이 바뀌면서 1판부터 4판까지 기존의 기준이 수정되거나 새로운 기준이 만들어졌다. 

‘현명한 투자자’의 첫 부분에서 강조했듯이 그레이엄이 책을 쓴 이유는 투자의 원칙과 태도를 알려주려고 한 것이지 투자의 마법 공식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원칙과 태도는 시간이 흘러도 바뀌지 않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어야 한다. 그레이엄의 가장 뛰어난 제자였던 버핏이 그레이엄의 담배꽁초 투자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투자 기준을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