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가수 허송. 사진 민학수 기자
트로트 가수 허송. 사진 민학수 기자

TV조선 예능프로그램 ‘내일은 골프왕’의 한 장면. 가수 겸 배우 임창정의 아들인 중2 골프 지망생 임준성군이 “아빠 말로는 연예인 중에 아빠가 제일 골프를 잘 친다고 한다”고 하자, MC 김국진이 “아빠는 꿈이 날 이기는 거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낸 적이 있다. TV와 유튜브의 ‘골프 예능’에 나오는 연예인 중에는 주말골퍼 수준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대단한 고수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김국진, 최홍림, 임창정, 박학기, 허송, 변기수 등을 놓고 연예계 최고수가 누구인지 입씨름이 벌어진다고 한다. 이들은 체격 조건은 일반인과 비슷한 수준이다. 박찬호와 윤석민처럼 스포츠 스타 선수 출신들이 프로 골퍼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300야드 넘는 장타를 펑펑 날리는 것과는 다르다. 이들은 대개 240~260야드 정도의 비거리를 보낸다. 그래서 평범한 체격을 지닌 주말 골퍼들에게는 연예인들의 골프 비결을 참고하는 게 훈련과 체력 등 조건이 다른 프로 골퍼 따라 하기보다 실용적이라고 하는 이들이 많다.

가수는 스윙 리듬이 좋고, 개그맨은 순발력이 뛰어나고, 배우는 몰입력이 강하다고 한다. 연예인들은 어디에 가든 알아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 가까운 사람끼리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골프의 매력에 푹 빠진다고 한다.

연예인 중에서도 최고수라는 자부심을 지닌 이들의 골프에는 어떤 비결이 있는 걸까.

임창정(49)의 골프 실력은 2021년 경기도 안산의 아일랜드 컨트리클럽에서 열렸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엘크루-TV조선 프로 셀러브리티에서 증명된 적이 있다. 당시 KLPGA 투어 선수 108명이 출전해 1·2라운드를 치르고, 최종 라운드에 진출한 60명이 셀러브리티 30명과 팀을 이뤄 경기를 치르는 방식으로 열렸다. 개인전은 프로 선수들끼리 경쟁하고, 팀 경기는 세 명 중 가장 좋은 성적을 해당 홀 팀 점수로 삼는 ‘팀 베스트볼’ 방식으로 진행됐다.

임창정은 프로 골퍼 유해란·김지영과 짝을 이뤄 나갔는데 두 홀에서 팀 점수를 내는 활약을 하며 팀이 2위 그룹을 3타 차로 여유 있게 따돌리고 우승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당시 일반인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3.3m의 빠른 그린 스피드에 셀럽들은 3퍼트를 남발하고 티샷 OB를 여러 차례 내기도 했다. 당시 우승한 임창정은 “프로들과 같은 조건에서 경기해 본 그 대회는 내 골프의 자부심이다. 당시 하루 경험은 수만 번 연습보다 값지다”고 했다.

임창정은 베스트 스코어가 6언더파 66타이고 두 아들이 주니어 골퍼로 활약하고 있을 정도로 골프에 애정이 깊다. 키 168㎝, 몸무게 62㎏으로 큰 체격은 아니다. 임창정은 “무리하지 않고 리듬감 있게 부드러운 스윙을 하면서 공을 정확하게 맞히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그린 주변 어프로치와 퍼팅에서 섬세한 감각을 기르는 게 골프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개그맨 김국진. 사진 민학수 기자
개그맨 김국진. 사진 민학수 기자

김국진(57)은 더 호리호리한 171㎝, 58㎏의 체격이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김국진 TV-거침없는 골프’에서 안신애, 정재은, 안지현, 손새은 등 여자 프로 선수들과 대결하는 모습을 통해 가감 없는 실력을 보여준다. 얼마 전 올해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의 강자 임희정과 대결이 압권이다. 김국진은 4언더파를 쳐 2언더파를 기록한 임희정 프로에게 ‘역사에 남을’ 승리를 거두었다. 임희정은 “잘 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쇼트게임과 퍼팅 실력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고 칭찬했다.

김국진은 젊은 시절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테스트에 무려 15차례나 도전하면서 내공을 쌓았다. 그에게 깨달음을 준 경험이 있다. 잘 아는 선배 중 진짜 고수가 있었는데 골프는 클럽을 뻗어주는 힘(원심력)과 당기는 힘(구심력)을 함께 쓸 수 있어야 공에서 찰떡 치는 소리가 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김국진은 골프의 중심 이동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오른발 왼발을 떼면서 얼음판을 지치는 스케이팅을 떠올리며 오른발에서 백스윙하고, 왼발에서 다운스윙을 하라는 것이다. 그는 왼발을 가볍게 들었다 디디면서 임팩트를 하는 스텝 골프를 하는데도 드라이버부터 웨지까지 공의 스위트 스폿에 정확하게 공을 맞힌다. 김국진은 또 “그립에 100의 힘을 주면 실수할 확률이 100%, 10의 힘을 주면 실수할 확률이 10%”라고 했다. 결국 그립에 아무 힘도 주지 않고 골반이 회전하는 대로 클럽이 따라다니면 공은 대충 똑바로 멀리 날아가게 된다는 설명이다.

올해 11월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선발전을 최고령 기록을 세우며 통과한 트로트 가수 허송(60)도 연예인 고수 중 한 명이다. 그는 2011년 테제베 CC에서 10언더파 62타(버디 6·이글 2)를 기록한 적이 있다. 17세 이상이 참가하는 KPGA 프로선발전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처럼 어렵다고 할 정도로 전국의 프로골퍼 지망생들이 몰려든다. KPGA 프로 선발전은 1년에 세 차례 열린다. 최종 합격자에겐 KPGA 프로 자격과 2부 투어 예선전 참가 자격 등을 준다. 그다음 관문인 KPGA 투어 프로 선발전까지 통과하면 KPGA 1부 투어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훈련받고 300야드 장타를 날리는 10대와 20대의 프로 지망생들과 경쟁해 60세 나이에 프로 선발전을 통과한 것은 기적에 가깝다는 평가다. 그는 지난해부터 네 번 도전 만에 프로 자격증을 따냈다. 그것도 이전 KPGA 최고령 프로 선발전 통과 기록이었던 56세를 뛰어넘었다. 허송이 통과한 11월 선발전에는 1223명이 예선(2라운드)에 참가해 241명이 본선(2라운드)에 진출했고 50명만 최종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당시 몇몇 연예인이 함께 참가했지만 허송만 관문을 통과했다고 한다. 허송의 도전 이유가 재미있다. “연예인들은 각종 이벤트 행사에 초청받아 아마추어와 함께 라운드도 자주 한다. 그러면 늘 누가 연예계 최고수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래서 객관적인 실력을 평가받으려면 ‘KPGA 프로 선발전’에 나가서 겨뤄보면 알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그동안 많은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이 문을 두드렸으나 탤런트 류용진, 개그맨 최홍림, 가수 이훈성, 탤런트 홍요섭 등 몇 명만이 KPGA 프로 자격을 따냈다.

허송은 체격(162㎝, 64㎏)이 크지 않은 편이다. 게다가 마흔네 살에 주변의 권유로 뒤늦게 골프를 시작했다. 그는 지인들 부탁을 받아 골프 레슨을 할 때 쇼트게임을 철저히 습득할 것을 강조한다. 먼저 백스윙 크기에 따라 60m 이내 쇼트 게임을 1m 단위로 끊어서 정확하게 칠 수 있도록 연습한다. 그는 헤드업을 하지 않도록 공이 목표 지점에 떨어질 때쯤 고개를 돌리라고 했다.

그리고 퍼팅은 자신의 걸음 수대로 정확하게 보낼 수 있는 비결을 익혀야 한다. 그는 “그린 빠르기가 다 다른 만큼 골프 라운드가 있는 날에는 일찍 도착해 연습 그린에서 일정한 백 스트로크 크기에 따라 다섯 걸음이 나갈 수 있도록 조절하면 좋다”고 했다.

이렇게 기본기를 강조하는 것은 처음 골프에 입문했을 때 가르쳐 준 티칭 프로 덕분이다. “처음 골프를 배우러 가니 제대로 치고 싶으냐고 묻고는 3개월 동안 7번 아이언으로 빈 스윙만 하면서 제대로 움직임을 익혀야 한다고 했다. 빈 스윙만 하니 재미없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렇게 기본기를 다지고 빈틈없는 쇼트게임 체계를 갖추자 8개월 만에 70대 타수를 치고 2년이 지나니 언더파 점수를 적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정말 잘 치고 싶다면 하루에 30분 만이라도 꾸준히 기본기 연습을 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