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어를 잃지 않는 경기 원칙에 충실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사진 로이터 뉴스1
스코어를 잃지 않는 경기 원칙에 충실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사진 로이터 뉴스1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7년간 싸움에 나가 한 번도 지지 않았다. 명량대첩에선 불과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을 상대로 승리했다. KBS에서 특별기획 ‘이순신, 23전 23승 불패의 조건’을 방영하자, 해군사관학교 제장명 교수는 이순신 장군이 기록한 ‘난중일기’ 등 사료를 바탕으로 43전 38승 5무로 정정한 적도 있다. 

이순신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잘 알려진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의 정신력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좀 더 구조적인 이야기를 한다. 먼저 이길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이길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이길 수 있는 타이밍을 선택해 싸웠다는 것이다. 이순신처럼 병법의 근본을 잘 이해하고 철두철미하게 실천한 장군은 세계 해군사에서도 찾아보기 드물다. 

미국의 전설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의 투자를 대하는 마음가짐도 ‘손자병법’의 철학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버핏이 투자 제1 원칙으로 꼽는 ‘돈을 잃지 말라!(never lose money!)’는 주장은 먼저 이기고 싸우라는 선승구전(先勝求戰)의 자세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사상 최고의 골퍼로 꼽히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대회를 준비하는 모습도 백 번을 싸워 백 번 모두 위태롭지 않은 손자병법의 ‘백전불태(百戰不殆)’ 정신과 맞닿아 있다. 우즈는 먼저 스코어를 잃지 않는 경기 운영 원칙에 충실했다. 그 상징이 미국 육군 휴대용 대공 미사일의 이름을 따 붙인 ‘스팅어샷’이었다. 맞바람 속에서도 2번 아이언으로 낮게 깔아 쳐 바람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이 샷은 북해에서 예측불허로 날아오는 바람과 무릎 높이의 러프, 키 높이로 아가리를 벌린 항아리 벙커와 싸워야 하는 디 오픈에서 먼저 스코어를 잃지 않기 위해 만든 샷이었다. 드라이버보다 비거리는 덜 나가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스팅어샷으로 티샷을 하면서 우즈는 디 오픈의 벙커를 피해 갔던 것이다. 

손자병법에서 생각하는 최상의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부득이 싸워야 한다면 미리 이기고 싸우는 것이다. 손자는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을 구해 놓은 다음에 전쟁을 하고(先勝求戰), 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전쟁을 일으킨 이후에 승리를 구한다(先戰求勝)”고 했다. 버핏은 돈을 잃지 않으려는 방법으로 ‘안전마진’을 꼽는다. 안전마진은 기업의 내재 가치보다 충분히 싼 가격에 주식을 사는 것이다. 기업의 주가가 시장의 변덕에 따라 하락하더라도 돈을 잃지 않을 만큼 싼 가격에 사라는 내용이다. 그는 “안전마진이 의미하는 것은 9800파운드 트럭을 몰고, 최대 부하 하중이 1만 파운드인 다리를 건너려고 하지 말고, 도로를 조금 더 내려가서 부하 하중이 1만5000파운드인 다리를 찾으라는 것이다”라고 했다. 

하루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에 몸이 단 사람은 어디선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그 기회에 도사린 위험을 살펴보지 않는다. 뭔가 거창한 돈 버는 비법을 구하는 이들에게는 안전마진 운운하는 소리가 소심하고 한심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버핏은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가 밝힌 비결을 그의 ‘돈을 잃지 않는’ 철학에 끌어들였다. 윌리엄스는 이렇게 말했다. “치기 쉬운 공(fat pitch)을 기다렸다가 때렸기 때문에 4할 타율이 가능했다. 만약 낮은 쪽 코너로 오는 공을 보고 방망이를 휘둘렀다면 내 타율은 0.230에 불과했을 것이다.”

버핏은 윌리엄스의 이야기를 이렇게 변주했다. 

안전마진의 연금술사워런 버핏. 사진 AP연합
안전마진의 연금술사워런 버핏. 사진 AP연합

“나는 투자를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이라고 부른다. 배트를 휘둘러야 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타석에 서 있으면 투수가 제너럴모터스(GM)를 47달러에, US스틸을 39달러에 던지고, 스트라이크(아웃)를 외치는 사람은 없다. 기회를 잃는 것 말고는 어떤 불이익도 없다. 온종일 자신이 좋아하는 공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수비수들이 잠들었을 때, 기다리던 공을 치면 된다.” 

버핏은 이런 비유까지 들었다. “난 7피트(약 2.1m) 높이 허들을 점프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걸어서 넘을 수 있는 1피트(약 30㎝) 허들을 찾는다”고 했다. 

돈을 절대로 잃지 않으면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확실한 투자만 하겠다는 것이다. 

버핏의 삶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기인 ‘투자 준비기’는 컬럼비아대학 비즈니스스쿨에서 가치 투자의 창시자로 꼽히는 벤저민 그레이엄을 만나고 졸업 후 그레이엄이 설립한 그레이엄-뉴먼에서 일하던 시기다. 

버핏의 투자 인생 2기는 버핏투자조합을 설립해 1956년부터 1969년까지 운용한 시기다. 그리고 1970년부터 버크셔 해서웨이의 최대 주주이자 회장으로서 경영자의 면모에 더 가까운 3기다. 

버핏이 그레이엄의 은퇴와 함께 고향 오마하로 돌아가 자신과 가족 및 지인의 돈을 투자해 운용하기 시작한 버핏투자조합 시기는 개인 투자자들이 참고할 만한 투자 기법이 가장 많은 시기로 꼽힌다. 

책 ‘워런 버핏, 부의 기본 원칙(제레미 밀러 지음)’은 버핏이 버핏투자조합 시절에 주주들에게 보낸 서른세 통의 주주 서한을 다룬다. 이 시기 버핏은 스승 그레이엄이 밝혀 놓은 투자 원칙에 충실하면서 그의 투자 경력에서 가장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버핏은 스물여섯 살에 단돈 100달러로 투자 회사 ‘버핏투자조합’을 설립해 누적 수익률 2794.9%, 연평균 수익률 29.5%를 기록했다.

1956년부터 1969년까지 13년간 단 한 번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지 않았다. 이 기간 수수료를 공제하고도 24%의 연 복리 수익을 조합원들에게 돌려줬다. 

버핏의 투자 철학을 관통하는 생각을 1966년 조합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버핏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시장 상황이 어떻게 될지를 다른 사람이 전망하는 것에 근거해 주식을 사거나 매도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특정 기업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근거로 주식을 산다. 우리 판단이 옳았는지 결정하는 것은 주식 시장의 상황이 아니라 우리가 한 기업 분석이 얼마나 정확했는지에 달렸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언제(when)’ 그것이 발생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what)’이 발생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버핏은 투자의 첫걸음은 투자와 투기를 구별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의 스승인 그레이엄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투기는 불법도 아니고 비도덕적이지도 않지만, 돈을 벌게 해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레이엄은 ‘시장은 단기적으로는 비정상적이고 비이성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내재 가치에 수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버핏은 “주식 시장은 언젠가는 침체할 수밖에 없고 이 시기에는 초연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버핏은 확실한 분석 없이 시장의 대세에 편승하는 것을 경계했다. 투자자는 기업 가치를 사는 사람이고 투기꾼은 시장을 상대로 도박하는 사람이다. 

버핏의 투자 철학은 다음 편지에서도 생생하게 드러난다. 

“1967년 말에 주식 시장에서 버크셔 해서웨이 주가가 20달러였을 때 나는 실제 가치를 25달러로 평가했다. 1968년 말에 시장에서의 주가가 37달러였을 때는 31달러로 평가했다. 우리는 시장에서의 주가가 15달러 혹은 50달러였을 때도 그와 똑같은 가격으로 평가했을 것이다. ‘가격은 당신이 지급하는 것이고 가치는 당신이 얻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명심하길 바란다. 우리는 주식 시장에서 다양한 게임을 하면서 이익을 얻으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1969년 1월 22일 편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