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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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에서 데리고 온 물고기는 모두 여섯 마리였다. 처음 한 마리가 죽던 날 밤, 꼬박 세 시간 동안 어항 앞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왔다 갔다 서성인 것까지 하면 못해도 대여섯 시간은 될 것이다. 활발하게 헤엄치던 물고기가 서서히 움직임을 잃다 결국은 물살을 이기지 못한 채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보는 동안엔 모든 게 다 후회스러웠다. 별다른 준비 없이 물고기를 키우겠다고 마음먹은 것. 수족관에 가서 물고기를 사 버린 것, 그것도 여섯 마리나. 이 순간 이토록 겁에 질려 우두커니 어항 앞에 못 박혀 있는 것…. 물고기를 기르는 일과 관련해 내가 한 생각과 행동 모두. 

며칠 상간으로 세 마리가 죽었다. 내 생애 가장 짧은 시간을 함께한 생명들이었다.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러 주었다. 그러는 사이 마음속엔 두려움의 조각들이 번져 나갔다. 나는 뭔가를 키울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과장된 실망감은 왜곡된 자괴감으로 발전했다. 물고기는 언감생심, 나는 겨우 수초나 키울 수 있는 사람인가 봐. 비관의 연쇄를 거듭하고 있을 때 남은 세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정신이 들었다. 이러다 남은 세 마리도 지키지 못하면 생명을 기르는 일에 관해 돌이킬 수 없이 위축될 것 같았다. 나는 좀 더 자신감을 갖기로 했다. 그러자면 박력 있는 사령관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흉내를 냈다. 박력 있는 척하니 진짜 사령관이 된 것 같기도 했다.

집중력을 끌어모아 여과 사이클에 대한 지식을 정리하고 수조 환수에 대한 이론과 실전을 섭렵했다. 물고기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수초도 주문했다. 수초를 넣어 보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것이다. 수초도 신경 써 주는 만큼 잘 자란다는 걸. 이제 내 작은 어항에는 바뀐 환경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세 마리의 물고기와 네 종류의 수초가 함께 자라고 있다. 요즘 내 사진첩에는 남들 눈엔 구분되지도 않는 물고기 사진들로 가득하다. 나는 이 작은 어항을 생동감 넘치는 아마존으로 만들 생각에 부풀어 있다. 

물고기를 기르겠다고 마음먹은 건, 개나 고양이에 비해 물고기는 인간적이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물속에서 살아가는 그들과 공기 중에서 살아가는 나는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각자의 존재들이니까. 그러나 물고기와 함께하며 나는 ‘함께’하는 조금 다른 방식에 대해 눈떠 가고 있다. 잊고 있던 책 한 권을 다시 들었다. 동물과 함께하는 방식에 관한 한 교과서와도 같은 책. 헬렌 맥도널드의 ‘메이블 이야기’였다. 

“참매와 사는 것은 빙하나 1월 한파에 얼어붙은 큰 바위를 숭배하는 것과 같다. 빙하 조각이 천천히 눈 속에서 퍼진다. 나는 메이블을 사랑하지만 둘 사이에서 오가는 것은 인간적인 게 아니다.” 

‘메이블 이야기’는 극진하게 사랑했던 아버지를 잃은 후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있던 여성이 참매를 길들이며 스스로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담았다. 참매는 야생 매다. 어린 시절부터 맹금류에 푹 빠져 있던 저자 헬렌 맥도널드는 매, 그중에서도 참매를 기르기로 한다. 어린 참매를 데려와 자신과 함께하는 방식 안에서의 비행을 연습시키는 과정은 녹록지 않다. 매는 사물과 사람을 견뎌야 하고, 사람은 매라는 불확실성을 이겨내야 한다.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저자에게 이 과정은 매와 자신의 이상한 일체감을 느끼게 해 주는 아름다운 경험이 된다. 상실감에 허덕이는 커다란 슬픔 덩어리 같은 자신과 길들지 않은 야생의 새가 뒤섞여 만들어 내는 희한한 하나의 상태. 끈 없이 매를 날리는 그 순간을 위해 둘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함께’를 훈련한다. 이 연습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야생 매를 길들인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언제나 자신을 떠날 수 있고, 떠난 다음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 있음을 받아들인 채, 그를 날려 보낼 수 있는 한순간을 위해서가 아닐까. 그들이 함께하는 매 순간에 상실의 가능성이 있다.

참매와 함께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알쏭달쏭한 비유로 가득 차 있다. “환한 지평선 너머로 하늘이 물처럼 헤엄쳤다.” 땅과 하늘과 물이 하나가 되는 순간에 대한 비유일 것이다. 참매를 길들이는 어느 한 사람이 겪은 내면의 성장에 관해 말하고 있는 ‘메이블 이야기’는 인간과 비인간이 조우하는 문학적인 방식을 통해 땅과 하늘과 물이 하나 되는 순간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그 순간에 이르러서야 맥도널드는 아버지를 마음속에서 놓아 줄 수 있게 된다. 산 자를 존중하고 죽은 자를 기릴 수 있는 ‘자연스러운’ 마음을 갖게 된 순간. 땅과 하늘과 물이 하나 되는 마음이 바로 그런 순간일 것이다.

하늘을 날 듯, 우주 공간을 유영하듯, 유유하고 날렵하게 물살을 가르는 내 물고기들을 바라본다. 내가 그들과 나누는 것 역시 인간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차라리 비나 구름의 심정으로 그들의 환경을, 그들의 삶과 죽음을 염려한다. 나와 물고기들이 결합해서 만들어 내는 이상한 ‘함께’를 기대하며 다시 올 봄을 기다린다.



▒ 박혜진
조선일보 신춘문예평론 당선,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젊은 평론가상

Plus Point

헬렌 맥도널드(Helen Macdonald)

사진 헬렌 맥도널드
사진 헬렌 맥도널드

작가이자 시인, 일러스트레이터, 역사학자, 동물학자. 케임브리지대 지저스칼리지에서 연구교수로 일했으며, 현재는 케임브리지대 역사학부와 철학부에서 학부생과 석사 과정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전문적인 매 조련사로 유라시아 전역에서 펼쳐진 맹금류 연구와 보존 활동에 참여했고, ‘매’ ‘세일러의 물고기’ 등의 책을 썼다. 야생 참매 메이블을 길들이며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견뎌 나가는 과정을 담은 ‘메이블 이야기’로 2014년 논픽션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새뮤얼존슨상과 그해 최고의 책에 주어지는 영국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코스타상까지 석권했다. 

이 책은 또 ‘가디언’과 ‘이코노미스트’에서 ‘올해의 책’으로 뽑히며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등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헬렌 맥도널드는 문학, 역사, 철학을 기반으로 인간과 자연을 섬세한 문체로 그려 내는 최고의 저자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