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래된 개항 도시 나가사키는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도시다. 일본 내의 여느 도시와 비교해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배어 나는 이 도시를 거닐다 보면 오랜 세월의 흔적들이 살아나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다. 가슴 아픈 사랑을 노래한 오페라 <나비부인>의 배경지로 알려진 나가사키이기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지 모를 일이다.

 나가사키를 찾은 것은 아직 찬바람이 가시지 않은 겨울의 일이었다. 나가사키의 겨울은 매섭지 않기에 여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턱이 없지만 <나비부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벚꽃 가득한 봄날에 찾아오고 싶었다. 가련한 한 여인의 기구한 삶과 죽음을 그린 <나비부인>을 알지 못했다면 이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을 터이지만 스산한 바람이 코트를 비집을 때면 봄꽃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곤 했다.

 “쵸쵸상! 배가 들어와요.”

 이 말을 그녀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간절히 기다리고 또 기다렸을 것이다. 나가사키 항구가 잘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집 주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 남편인 미국 해군 중위 핑커톤은 그렇게 돌아왔다. 그 사이 결혼한 미국인 아내와 함께 온 것을 모르는 쵸쵸상은 어린 아이를 부여안고 얼마나 기뻐했을까. 집안의 몰락으로 15세의 꽃다운 나이에 게이샤가 되어 핑커톤과 만나 모든 것을 내어준 그녀가 맛봐야 했던 좌절은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차가운 비수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그녀의 애끓는 심정이 나가사키에 와보니 더욱 현실처럼 손에 잡힐 듯하다. 



 400년 넘게 열려 있는 항구 

 예로부터 배를 타고 떠난 임을 그리워하는 여인네의 한숨이 끊이질 않는 곳이 항구이기에 세상 어느 항구에 이런 사연이 없겠는가마는 <나비부인>의 애절한 사연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만한 내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은 아니었을까. 쇄국정책을 펴던 당시에도 일본은 세계를 향해 항구 하나만은 문을 열어두었는데 그것이 바로 나가사키였기 때문이다. 1542년 다네가시마(種ヶ島)섬에 표류하던 포르투갈 배가 정박하면서 생긴 인연을 시작으로 1571년에 개항을 하게 된 것이니 참으로 오래전의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배경이 된 곳이자 나가사키만의 이국적인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 그라바엔(Glover Garden) 일대다. 오랫동안 외국인들의 거주지였던 이곳은 지금 잘 조성된 정원과 19세기 중반의 건축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나가사키를 찾는 사람이라면 모두 방문하는 관광 명소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주된 목적은 1863년에 세워져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네잎 클로버 형태의 목조 양옥을 방문해 오페라 <나비부인>의 한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이 집 앞마당에서 나가사키항을 내다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나친 단정일 수 있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것이 중요한 동기였다.

 만일 <겨울연가>가 없었다면 일본 관광객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춘천의 작은 집을 방문했을까? 이것이 바로 평범을 비범으로 탈바꿈시키고 무의미를 의미 있게 만드는 문화의 힘일 것이다. 일본의 개항을 통해 빚어낸 옛 양옥들이 새삼 더 관심 있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옛것으로 치부하지 않게 만든 오페라의 위력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정원 사이에 자리한 타스칸 양식의 고택이 건축가들에는 관심의 대상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나비부인을 형상화한 오페라 가수 미우라 다마키 동상이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따끈한 짬뽕 국물에 추위를 날리다 

 천천히 산보를 하듯 구라바엔을 벗어나 골목길 아래로 내려서면 작고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는 나가사키가 자랑하는 카스텔라가 예쁘게 포장되어 진열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어린 시절 입에서 스르륵 녹아버리던 그 맛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얼마 만에 먹어본 것인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진열대 앞에 호객용으로 잘게 썰어 놓은 카스텔라 한 조각을 먹으며 옛 추억을 떠올리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옆에 몇 대째 카스텔라를 만들고 있다는 안내문과 나이 지긋한 노인이 열심히 포장하는 모습은 일본의 놀라운 장인 정신의 한 단면을 새삼 재발견한 기분이 들자 은근히 질투심마저 든다. 집요한 그들의 제 것 지키기. 세계 일류를 외치며 미친 듯이 질주해 나가는 동안 옛것이 사라져 간다는 것이 알게 모르게 두려웠는데 이들은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질투가 나는가 보다.

 카스텔라만큼 아니 카스텔라보다 더 유명한 것이 나가사키 짬뽕이다. 이것이 본래 나가사키 고유의 것은 아니었다고 하니 한국에서 넘어갔거나 중국 어디쯤에서 넘어왔을 터다. 그런데 나가사키에는 오는 사람치고 짬뽕을 먹지 않고 가는 사람은 이야기가 나올 만큼 그들은 자기 것으로 만들어 푸지고 넉넉한 대표 음식으로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카스텔라도 따지고 보면 제 것이 아니었고 짬뽕도 제 것이 아닌데 나가사키는 이제 그것이 자랑이 되었고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찬 기운에 볼이 빨갛게 상기되었던 얼굴이 쫄깃한 면발 위에 자리한 해물과 매콤한 국물을 즐기는 동안 어느새 제빛을 찾아가고 창밖에 보이는 항구의 전경이 나가사키의 추억으로 자리한다.

 항구를 따라 줄지어 서 있는 가로등이 켜질 무렵, 나가사키는 낯선 곳이건만 밑도 끝도 없는 정체 모를 향수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저 혼자이면 외롭다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되새기게 만든다. 그것이 슬픈 인연이든 아름다운 인연이든, 항구는 막연히 로맨스를 꿈꾸게 한다. 낮은 톤으로 울리는 뱃고동 소리와 날개를 퍼덕이며 정박한 뱃전을 느리게 활공하는 갈매기의 모습도 여행객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나가사키 관광지 베스트 6



1. 헤이와 공원

원자 폭탄의 폭심지 일대에 조성된 헤이와코엔(공원)에는 세계 평화를 기원하여 만든 평화 기념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기념상은 평화도시 나가사키의 상징으로, 나가사키현 출신의 조각가인 키타무라 세이보에 의해 조각되었다. 높이 9.7미터, 좌대 높이 3.9미터, 무게 약 30톤에 달하는 이 기념상은 사람의 모습으로, 하늘을 향하고 있는 오른손은 원폭의 위협, 수평으로 올려진 왼손은 평화, 살며시 감긴 눈은 희생자의 명복을 기원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공원에는 이외에도 다수의 조각상들과 분수들이 자리하고 있고 매년 다양한 행사들이 열린다.

2.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

나가사키 원폭과 관련된 모든 자료들이 전시된 곳으로, 전쟁의 아픔과 그 처절한 피해가 고스란히 사실적으로 전시된 공간이다. 1996년에 새로 개관, 원폭에 의한 피해의 참사를 전하기 위해 원폭 투하의 경위, 피해 자료와 핵무기에 대해 사진과 모형 등 원폭 투하 직후의 거리 모습을 재현하거나 여러 가지의 피폭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개관 시간은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입장료는 대인 200엔, 소인 100엔이다. 문의 095-844-1231

3. 오우라 성당

그라바엔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26성인의 혼백을 기리기 위해 1864년에 지어졌다. 1597년 2월 5일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스페인 선교사를 포함한 6명의 수도자와 20명의 일본인 신자가 처형되었기 때문. 목조 고딕식 교회로 1953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팔각형의 첨탑과 성당 내 유리 장식이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4. 차이나타운

신치 중화거리로도 불리는 이곳은 나가사키에 사는 많은 화교들에 의해 생긴 곳이다. 거리 중심에는 중화요리며 중국 잡화를 파는 상점이 늘어서 있다. 요코하마의 차이나타운과 비교해 규모는 작지만, 일본의 3대 차이나타운 가운데 하나로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 산책하며 구경하기에 좋은 곳이다.

5. 데지마

데지마는 1636년 시에 살고 있는 포르투갈인을 이주시키기 위해 항구의 갑(岬)에서 돌출한 곳에 만들어진 부채 모양의 인공 섬이다. 1641년부터 1859년까지 이 섬에는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있어서 유일하게 유럽을 향해 열려진 창으로 서양문화를 받아들이는 곳이었다. 지금 이곳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 데지마 극장이 있다. 극장은 1865년에 지어진 석재 창고를 1976년에 복원한 것이다. 데지마의 생성 경위와 당시의 모습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여러 상점들이 자리하고 있어 쇼핑을 하기에도 적합한 곳이다.

6. 이나사산 전망대

나가사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이나사산(山)은 나가사키 시내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다. 화분 모양의 지형을 한 나가사키이기에 전망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333미터로 높지는 않지만 로프웨이로 연결되어 있어 걸어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야경이 아름다워 저녁에 방문하는 사람도 많다. 



Plus tip 추천숙소

 실속 있는 비즈니스 호텔, ‘나가사키 뷰 호텔’ & ‘호텔 쉽 빅토리아’ 최근 일본의 호텔 체인 업체인 솔라레그룹이 나가사키에서 인수한 두 개의 호텔은 그런 점에서 볼 때 가격과 시설 면에서 높은 만족도를 제공하는 호텔이다. 일단 새롭게 단장을 하여 객실의 시설이 말끔하다.

나가사키 뷰 호텔(095-823-8761)은 중심가에 위치하여 도보로 그라바엔이나 차이나타운, 항구 지역 등을 두루 둘러볼 수 있다는 장점도 함께 갖고 있다. 여성 전용 객실을 운영하는 세심한 배려도 눈여겨볼 만하다.

 호텔 쉽 빅토리아(095-822-8888)는 독특한 호텔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제로 일본 내에서 운항하던 연락선을 개조하여 호텔로 만든 것으로 안락한 실내에서의 생활도 만족스럽지만 항구에 정박한 호텔이기에 아름다운 전망이 인상적이다. 나가사키 내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연회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Plus
IMFORMATION


가는 방법 나가사키는 현재 대한항공에서 직항으로 주 3회(월·목·토) 운항 중이다. 소요 시간은 50분 정도. 그 외에도 주변 도시에서 연계하여 관광을 희망하는 경우에는 부산에서 후쿠오카까지 고속정을 이용한 후(2시간 55분 소요) 버스를 이용하여(2시간 소요) 나가사키를 방문할 수 있다.

현지교통 나가사키 시내를 관광하는 방법으로 정기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1일 10편 정도가 운행을 하며 나가사키시 관광안내소 앞에서 출발한다. 요금은 2150엔부터. 별도의 예약은 필요하지 않다. 또 하나의 방법은 노면전차를 이용하는 것으로 1일 승차권을 구입하면 하루에도 여러 번 승차할 수 있다. 요금은 500엔이며, 나가사키현 관광안내소에서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문의 095-826-9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