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쟁력지수(GCI) 최상위 국가 그룹에서 늘 1~2위를 다투는 핀란드. 인구 500만 명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잠재력은 실로 놀랍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나 남녀평등이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실현된 나라이자 사회복지 제도가 가장 잘된 나라로 부러움의 눈길을 한 몸에 받는 핀란드. 그들의 잘 살게 된 비결을 알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벗어야 한다. 머릿속에 담겨 있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들이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우나를 함께 하기 위해 옷도 벗어야 한다. 그러면 핀란드가 더 잘 보인다.
 혹시 핀란드의 국기를 본적이 있는지. 하양 바탕에 파란 십자가가 그려진 모습을 보고 단번에 북구의 설원과 핀란드의 수많은 호수를 떠올렸다. 그래서 현지인에 물어보니 정답이란다. 정말 핀란드는 한참 북쪽에 올라붙어 있는 나라이기에 겨울이 길고, 눈 또한 푸지게 내리는 나라이다. 매년 겨울이면 의견이 분분하지만 산타의 고향이라며 북극권이 통과하는 로바니에미(Rovaniemi)라는 도시에 버젓이 산타 마을과 산타 공원까지 마련해 놓고 있으니 겨울 하면 절로 떠오르는 나라가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호수는 어떠한가? 전 국토의 80퍼센트가 숲과 호수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이 나라에 무려 19만 개의 호수가 있다니 ‘호수의 나라’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이러한 자연적인 환경은 하늘이 점지해 주고 조상 탓이라 말할 수 있지만 2004년도 스위스의 경제은행이 발표한 국가 경쟁력 1위 그리고 매년 조사되는 국가 투명도 1위, 1인당 국민소득 2만3000달러 등과 같은 여러 통계를 접하면 이 나라 사람들의 삶이 여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 사람들과 국가 투명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말들이 걸작이다. 인구가 고작 500만 명이니 세무당국이 조사를 하면 아무리 숨기려 해도 들통 나기 십상이란다. 더구나 일반인들도 공직자들의 재산 내역을 자기 통장 잔금 확인하듯이 마음만 먹으면 확인할 수 있고, 노점 상인들도 신용카드를 받고 영수증을 발급한다니 이 나라에서는 돈에 대해서만큼은 숨기고 할 게 없다. 여기에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들이 그럴 수 있는 것이 종교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듯하다. 국민의 90퍼센트 이상이 루터교이니 근면과 절제는 기본 덕목일지니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성격도 한몫했을 것이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잇달아 3년간 국제 투명성 기구에서 선정한 국제 투명지수(CPI) 세계 1위라는 말이 이쯤 되면 하나도 놀랍지 않다.

 

 시벨리우스, 시수 그리고 사우나
 

 핀란드 사람들은 자신들의 민족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외국인들에게 3S를 강조한다. 시벨리우스, 시수 그리고 사우나가 공교롭게도 모두 S자로 시작해서 편의상 3S로 부른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 음악 시간에 한두 번은 들었을 법한 시벨리우스(Sibelius)는 세계적인 작곡가로 핀란드의 국민 영웅이다. 그의 대표적인 교향곡인 ‘핀란디아’(Finlandia)는 우리에게도 익숙할 정도니 그에 대한 국민적 사랑은 극진할 정도다. 그렇다면 시수(Sisu)는 무엇인가. 핀란드어로 시수는 은근과 끈기를 뜻하는 말로 핀란드 사람들의 특징을 단적으로 설명하는 단어이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700여 년간 스웨덴과 러시아의 지배를 번갈아 받아야만 했던 고난의 역사 속에 그들이 가졌을 국민적 정서는 분명 은근과 끈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여기에 혹독한 추위를 몰고 오는 길고 긴 겨울을 잘 버티려면 끈기는 필수적인 덕목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 S항목을 차지하는 사우나(Sauna)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이러한 자연 환경에서 출발한다. 사우나라는 말이 영어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영어 사전에 실린 유일한 핀란드 단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만큼 사우나는 핀란드의 대표적이면서도 세계적으로 통하는 문화 코드인 셈이다. 핀란드를 방문하는 사람은 대부분 사우나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현지의 사우나를 찾는다. 그리고는 곧 실망을 한다. 우리의 고급 사우나 시설과 비교하면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아니 이 정도 가지고 그토록 요란하게 떠들까 하는 의구심을 느끼지만 그것은 실상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목욕 문화가 있는 곳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이나 터키, 그리고 유럽 일부 지역의 온천욕 등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는 아주 고급스러운 스파의 개념이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목욕 문화를 주기적이면서도 열광적으로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국과 핀란드가 최고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커다란 욕실에서 몸을 담그고 때를 밀고 나와야 개운하다고 느끼기에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일명 ‘때밀이 관광’을 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을 찾는다고 하지 않는가. 이처럼 독특한 한국의 목욕 문화처럼 핀란드의 사우나는 생활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대중적인 문화인 것이다.



 인구 3명당 1개의 사우나를 가진 나라

 현재 핀란드 내에 자리한 사우나의 공식 집계는 대략 160만 개. 입이 벌어질 만한 숫자다. 우리로 치면 개인 목욕탕을 한 집에 하나씩은 가진 셈이다. 단순 욕실이라면 우리나 미국이나 다른 곳과 뭐가 다르겠는가마는 이것은 사우나 시설을 가진 곳이 이 정도인 것이니 그들의 사우나 사랑은 놀랄 만하다.

 집을 지을 때면 가장 먼저 사우나를 어디에 만들 것인지 고민한다는 핀란드 사람들의 사우나 사랑은 끝이 없다. 길고 추운 겨울 동안, 그리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이 어두운 밤이 지속되는 핀란드의 자연 환경 때문에 사우나는 2000년 전부터 이곳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전쟁을 할 때도 조립식 사우나를 가지고 다녔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헬싱키의 전쟁박물관에는 그 당시 사우나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손님이 찾아오면 여독을 풀게 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사우나의 불을 지피고 안내하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손님 접대이다.

 그렇다면 이곳 사람들이 사우나를 즐기는 방법은 남다른지 궁금해진다. 전통적인 사우나는 목조 건물로 된 경우가 많다. 환기를 제일 중요한 요소로 꼽는데 일단 바닥 부근에 신선한 공기가 들어올 수 있도록 공기구멍을 만들고 지붕에 환기구를 설치해 놓았다. 그리고 욕실 중앙에 돌을 달구기 위해 불을 피우고 그 열기가 실내에 가득 차게 만드는데, 열기가 줄어들 때면 달구어진 돌에 물을 부어 더운 증기를 계속 만들어낸다. 그리고 핀란드의 대표적인 나무인 자작나무 가지를 묶어 온몸을 구석구석 두들긴다. 어느 정도 땀이 나고 증기로 인해 견디기 힘들다 싶으면 이곳 사우나의 백미인 호수의 얼음구덩이 안으로 입수를 하게 된다. 머리털까지 곤두서게 하는 냉수욕도 인상적이지만 알몸으로 눈밭을 구르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하니 정말 외국인에게는 이색적인 체험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하며 잘 구워진 옥수수나 소시지와 곁들여 시원한 맥주 한잔을 들이키면 하루의 피곤이 절로 사라진다. 

  남녀노소가 함께 즐기는 사우나이기에 가족끼리 사우나를 즐기는 것은 생활이고, 친구들끼리 함께 사우나를 하는 일은 가장 평범한 모임 회동이다. 회사에서도 동료와 사우나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커다란 파티나 행사를 아예 사우나에서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하니 핀란드에서 사람을 사귀거나 비즈니스를 하려거든 사우나를 피해 갈 일이겠는가. 사우나에서 태어나고 사우나에 죽는다는 그들의 이야기가 결코 농은 아닌 듯싶다. 생각해 보면 영하 30도 언저리를 맴도는 혹한의 기후에서 알몸 사우나를 함께한 사람과 어찌 각별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옷과 함께 가식과 체면치레를 벗어던지고 나누는 진솔한 대화. 핀란드 사람들을 이해하는 첫걸음은 분명 여기에서 출발하리라.

오상훈 특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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