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필시 계절은 봄인데 가끔은 동장군이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꼬리를 늘어뜨리며 아쉬워 시샘한다.
이럴 때일수록 겨울의 싸늘함을 치유하고 다가오는 봄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작은 은거지가 필요한 법이다.
서울 성북동 산자락 아래 고즈넉하게 위치한 고풍스런 옛 찻집 한 곳과 세검정 돌바위 위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향긋한 커피 향을 풍기는 멋진 에스프레소 전문점 한 곳을 소개한다.
 수연산방(壽硯山房) 상허의 추억이 솔향으로 살아나는 곳 



 날씨 쨍한 날,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해 삼선교에서 내려 성북동 골짜기로 방향을 돌리고 한참을 올라가다 보면 아직 찬 공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마엔 땀방울이 송송 맺힌다. 그렇게 수 연산방은 삼선교에서부터 걸어가는 맛이 적잖이 있는 전통 찻집이다.

 <화두>의 작가 최인훈 선생 역시 그의 소설에서 제자를 따라 한국 단편문학의 대가로 회자되는 상허 이태준의 고택 수연산방을 그렇게 걸어서 올랐다고 적고 있다. 예전의 풍경을 너끈히 즐기고 상상하면서 말이다.

 자, 그만 본론으로 들어가자. 삼선교에서 성북동 쪽으로 84번 버스 종점을 따라 한참 다리품을 팔아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 공터에 성북2동 사무소가 나오는데 그 오른쪽 빌라 골목으로 고풍스런 한옥 한 채가 들어서 있는 그곳이 바로 수연산방(02-764-1736)이다.

이 수연산방은 월북 작가 상허 이태준 선생이 생전에 왕십리 목수들을 고용해 기와며 기둥이며 자재를 일부러 이북에서 옮겨다가 지었을 만큼 많은 애착을 가졌다고 전해지는 글 쓰는 산방이었다. 하지만 이젠 성북동에서도 조용하고 운치 있는 몇 안 되는 전통 찻집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더 알려져 있다.

 하얀 석회 담벼락 중앙에 빗겨 내어진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조그만 뜰과 우물 터가 고스란히 남아 있고, 오른쪽으로는 사면이 창으로 되어 있는 문향루(聞香樓)라고 적힌 누각이 하나 흥미롭게 불쑥 나와 있다.

 해가 지는 어스름한 저녁 즈음 이 누각 안 푹신한 방석 위에 기대어 앉아 떨어지는 석양을 보며 상허 선생의 단편을 읽는다. 거기에 더할 확실한 사치로는 향이 좋은 송(솔잎)차가 역시 으뜸이다. 솔잎차를 입에 가져다 대면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아찔한 봄 아지랑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수연산방엔 여유가 있다. 바쁠 이유도 없다. 알맞게 둔덕이 올라선 마루와 햇빛을 온전히 받아내는 누각, 거기에 여닫이 창문으로 기어 들어오는 동네 견공의 애잔한 소리는 찻집에서 틀어 놓은 잔잔한 국악의 리듬과 맞물려 성북동만이 가지는 유일한 안락함을 더해준다. 아주 오래전 서울 성곽 바깥, 길도 없어 개천을 따라 힘들게 올라와야 했던 변두리 계곡에 가지런히 있었을 고택의 여유는 이제야 우리에게 숙변 같던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려주고도 남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봄을 기다릴 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군가를 데리고 한번쯤 가봐야 할 명소 중 하나이다.



 에스프레소(Espresso) 커피 한 잔이 부르는 봄 향기

 효자동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자하문 터널 위로 올라가면 이제는 인적조차 드문 청운아파트로 이어지는 을씨년스러운 언덕길이 하나 등장한다. 그 언덕길을 따라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돌다리 밑으로 다시 올라가다 보면 코가 막히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야릇하면서도 부드러운 커피 향이 은은하게 동네 곳곳에 퍼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자하문 꼭대기 암반 위에 단단하게 세워진 묵직한 3층짜리 건물 1층, 마은식 씨가 운영하고 있는 카페 에스프레소가 사실은 그 커피 향의 근원지이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직접 주인장이 로스팅(roasting)을 하는 날엔 어김없이 동네 곳곳에 커피 향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자욱하게 퍼지곤 한단다.

 사실 이곳은 찾기도 쉽지 않지만 찾아오기도 만만치 않은 곳이다. 홍대 입구나 압구정 그리고 이대 근처에도 커피 마니아들에게 유명한 커피 전문점들이 많다지만 이곳 역시 커피 맛에 관한 한 둘째라면 서러울 만큼의 신앙을 지닌 마니아들로 실속 있게 꽉 찬 곳이다. 찾는 단골들도 제각각이다. 말만 하면 누군지 금방 알아들을 거물급 CEO에서부터 소소한 연인들 그리고 커피 맛을 찾아 산길을 마다않는 외국인들까지…. 세검정 카페 에스페레소가 이렇게 전 방위적으로 많은 커피 마니아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실상 간단한 데 있다.

 카페 에스프레소는 11년 동안 대학로에서 에스프레소 전문점을 경영했던 주인장 마은식 씨가 브라질이나 에티오피아 혹은 예멘 산지에서 직접 재배된 상위 3% 이내의 스페셜 원두를 직접 고르고 수입해 100% 손수 로스팅을 하고 일주일이 넘지 않은 기간 동안만 소비하고 있기 때문에 그 맛과 향이 최상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커피 마니아들이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그가 대학로라는 잘 나가는 목을 버리고 4년 전 세검정 꼭대기로 올라온 이유는 시끌벅적하고 공기가 좋지 않은 시내보다 공기 좋고 커피 맛도 살아나는 도심 속 시골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을 알고 일부러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더욱 가치 있는 커피 맛을 전해 주기 위함이었단다.

 실내 인테리어부터 소품 하나 하나까지 직접 만들고 가꾼 살림꾼이기도 한 주인장은 커피 맛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질 좋은 커피 생두(Coffee bean)를 분별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당해 연도에 생산된 가장 좋은 재료는 3% 이내이기 때문에 그것을 잘 분별하고 확보하는 안목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주인장이 심혈을 기울여 골라 손수 로스팅한 커피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찾는 카페 에스프레소. 세검정 고즈넉한 창가에 앉아 따스한 햇볕을 맞으며 손과 입으로 느끼는 브라질 프리미엄(Brazil premium) 커피의 향은 다가오는 봄과도 바꾸기 싫을 정도로 아득하게 감싸안는다.

카페 에스프레소만의 대표 브랜드인 브라질 프리미엄 이외에 예멘 모카사나니(Yemen Mocha Sanani)와 콜롬비아 수프레모(Colombia Supremo), 그리고 에티오피아 커피 역시 독특한 맛과 향을 자랑한다고 하니 커피 마니아가 아니라도 한번쯤은 그 향에 취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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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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